한국 전통무용계의 중진으로 위치하며 서울시립무용단 단장을 지냈고 온화한 미소와 뛰어난 기량으로 사랑을 받았던 임이조 선생이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선운(仙雲)이라는 뜻처럼 구름을 탄 신선처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그를 기리는 5주기 추모공연이 12월 8일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선운학천>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이 공연은 대규모 출연진과 화려한 연출이라는 겉모습 외에도 내적으로 제자들의 애정이 충만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공연 시작 전에 선생의 과거 공연영상으로 그의 일대기를 훑었고 이후 임이조류 춤의 향연이라는 명칭으로 다채로운 춤을 볼 수 있었는데, 임이조 선생의 처제인 권영심이 연출을 맡아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공간을 가득 메웠다. 더불어 하나의 레파토리화 된 선생의 춤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어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더욱 뜻 깊은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첫 번째 <교방살풀이춤>은 섬세하고 정교한 발디딤으로 교태미를 극대화한 임이조류의 살풀이춤이다. 정제미가 특징인 살풀이에 교방이라는 장소적 환경이 더해지면서 교태미가 부가되었는데, 1978년 초연된 임이조류 교방살풀이는 한손에는 흰 수건을 감싸 쥐고 정교하게 맺고 푸는 춤사위가 핵심을 이뤘다. 박자와 박자 사이를 넘나들며 최소한의 공간에서 효율성을 살려 잘게 내딛는 디딤새는 남성무용수 1명과 10명의 여성무용수들의 춤을 통해 한의 정서가 아니라 새로운 춤으로 완성되었다.
<연정>은 임이조 선생과 진유림 선생이 같이 추던 춤으로 남녀의 조화가 중점을 이룬다. 판소리 ‘사랑가’ 대목에 맞춰 소리와 장고가 라이브로 진행되면서 부채를 든 선비와 고운 자태의 여성이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앞서 언급했듯이 30여 년간 임이조 선생과 진유림 선생이 보여주던 연륜과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임현종과 엄선민의 듀엣은 풋풋함으로 또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한량무>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선비들의 기상과 풍류를 오롯이 보여주는 춤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임이조류 한량무를 선보였는데,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마당극 형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한량의 춤만을 최초로 재구성한 것이라 한다. 이 춤은 1978년 국립극장 무형문화재 발표회에서 발표된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입춤>은 전통춤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춤으로 임이조 선생이 춤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시 했던 춤이라 한다. 1978년 이후로 임이조류 춤을 배우는데 있어 반복학습을 통해 근간을 이뤘다. 흥풀이춤의 일종인 이 춤은 12명의 무용수들이 추었던 춤과 오케스트라 피트에 위치한 악사들의 연주가 현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진중하게 이뤄졌다. 전체의 호흡이 일사분란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여기에 연출을 더해 선생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어린 무용수들이 꽃송이를 들고 관객석 사이에서 등장해 무대로 올라온 뒤 임이조 선생이 직접 춤사위를 가르치는 영상을 바라보며 실제 공연연습을 하듯 진행되었다.
이어진 <화선무> 역시 1978년 임이조 선생이 초연하였으며 여인이 소지하는 소품 중 가장 기본적인 부채를 활용한 것에 화려함을 더해 꽃부채(목단, 연꽃)를 의미하는 화선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허튼 가락 장단에 맞춰 전통적 춤사위와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끌었다.
<신향발무>는 양손에 작은 향발을 들고 흥겹고 역동적으로 추는 춤이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군자 병풍이 걸려 있고 소리꾼의 소리와 더불어 작은 제금이 들려주는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청각적 자극과 8명의 무용수들이 다양한 구성과 소리에 맞춰 활발히 움직이는 시각적 자극이 두 가지 감각의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임이조 선생의 탁월한 무대구성과 춤사위가 돋보이는 신향발무는 마치 무당춤처럼 부채를 들고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면서도 힘있게 다가왔다.
많은 출연진들이 참여한 <태평성대>는 엔딩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선운 임이조류의 태평무를 태평성대라 지칭한다. 임이조 선생의 뒤를 이어 한국춤을 전공하는 아들 임현종과 딸 임현지가 모두 출연해 그 의미를 더했고, 양손에 한삼을 끼고 당당하면서도 우아하게 내딛는 발디딤이 묘미이다. 다양하게 구성된 경기 무속 장단이 주를 이루며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이 춤으로 표현되는 과정이었다.
전반적인 진행을 통해서 <선운학천>은 전통춤의 맥을 충실히 이어가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보였던 임이조 선생의 춤이 권영심 이하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수용, 재창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회였고, 그 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앞으로도 선생의 외길 인생을 따를 후학들이 기본기와 창조성을 겸비해 청출어람(靑出於藍)하기를 바라는 바램이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임이조춤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