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공연에서 여성은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리 관심을 받는 주제가 아니었다. 군위안부처럼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호출되거나 어머니나 누이로, 또는 줄거리가 있는 무용극에서나 역할이 주어져 안무가의 여성관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여성 그 자체는 진지한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을 진지한 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기에 굳이 다룰 필요가 없다는 인식, 즉 작품의 주제로 채택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과 닿아 있다.
ⒸBAKi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이에 대한 예술계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는데, 안무가 최진한의 신작
그는 인간의 본능처럼 여겨지는 섹스가 단순한 성기 결합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지배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공격하고 뚫고 들어가고 먹는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이와 반대의 사회를 가정해 이 사회가 여성지배사회였다면 남성이 여성에게 집어삼켜지게 된다는 인식하에 그에 대한 두려움이나 굴욕감이 생겨났으리라는 상상을 펼친다. 또한 남성지배사회에서의 섹스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라면 여성지배사회에서는 여성의 질이 남성의 성기를 먹어치우는 의미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 속에서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되묻는다.
ⒸBAKi
작품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로 치라 하시고”라는 성경의 문구를 인용하되, 이 문구를 여자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면서 “여자는 간통한 죄로 여기 서 있는데 이 여자와 간통한 남자는 어디 갔느냐”라며 성경이 생략한 준엄한 질문을 덧붙인다. 성경에서 예수의 발화가 좌중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지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결백한 자가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적인 것이었다면 작품 속 배우 김현아의 목소리는 숨겨진 존재, 즉 여자 뒤에 숨어 아예 처벌의 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은 간통한 남자를 드러내며 이 처벌이 대상에 따라 얼마나 편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부당함을 고발한다.
ⒸBAKi
성경에서는 신이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작품에서 이러한 인간의 형상을 빚는 것이 여성 설치작가인 신민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그녀는 산고를 겪지 않은 채 시종일관 무심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어낸다. 두 명의 여자 배우가 강건한 모습으로 작품 속 ‘여성’에 대해 기성의 이미지들, 고통받거나 상처 입고, 울거나 괴로워하고, 그러다 끝내 무너지고 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패배하고 파멸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는 동안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최진한은 두 여자 사이에 끼인 듯이 괴로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듯이 움직인다.
시각적 압권을 이루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성경에 묘사된 형벌(간통을 저지른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성반전으로 재현하듯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 최진한을 향해 무대 양 옆에서 날아오는 콘돔이다. 물이 채워져 매듭지어진 콘돔은 물풍선처럼 날아오다 바닥에 떨어져 터지며 객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징벌의 현장은 시각적으로는 성반전으로 형벌을 받는 남성의 모습을 재현하면서도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남성이 섹스 시 착용하는 콘돔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남성을 징벌자의 위치에 두고 있는 한편, 임신을 막아주고 그로 인해 더욱 자유로운 섹스를 가능케 해주는 콘돔이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두 겹의 의미를 지닌다.
최진한은 안무노트에 인간의 몸에 대해 ‘잠시 동안에만 유기 물질일 뿐 별 볼 일 없이 연약한 인간 몸뚱이는 수분함량 60~70% 포함한 육질 살코기 덩어리’라고 쓰고 있는데, 여성과 남성의 ‘다름’에 집중하고 그 ‘다름’에 의해 파생되는 차별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건재하는 한, 이 ‘살코기 덩어리’에 불과한 몸의 문제는 전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향한 돌 던지기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