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무렵에 무용기록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유학파 출신들의 소장학자들이 한국무용기록학회(현재 무용역사기록학회로 통합)를 설립하였다. 이 학회는 설립 이후에 여러 차례의 특강, 국내외 심포지엄, 학술지 등을 통해 고전 텍스트와 무보(舞譜)의 해석, 과거의 춤기록물을 활용한 재현과 창작의 문제를 쟁점화하여 한국무용계에 무용기록의 중요성을 전도하는데 일조했던 학술단체이다. 특히 설립 이듬해에 있었던 이 학회의 국제심포지엄에서 하와이대 주디 반 자일 교수가 서양무보인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으로 기록한 궁중무용 <처용무>의 무보와 그녀의 제자들이 이 무보를 읽고 재현한 공연은 한국무용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이 학회는 2007년과 2008년의 국내외 심포지엄에서 춤자료를 전문적으로 수집, 분류, 집적하는 무용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주창하여 무용계를 넘어 공연예술계, 기록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무용기록학회가 보여준 지난 행보는 무용계의 현실보다 빨라서 무용가들이 바로 따라잡기에는 벅찼던 것 같다.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무용가들이 무용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무용의 기록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춤으로…
그 출발은 작년에 있었던 국립현대무용단의 <우회공간>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렉처-퍼포먼스, 전시, 창작 등 아카이브형 시리즈로 20세기 한국 실험무용의 근원지로 각광받던 공간사랑을 다루었다. 이어 홍은예술창작센터의 입주예술가 홍혜전이 <춤의 아카이브는 가능한가>를 통해 춤의 기록과 아카이브를 탐구형 창작물로 다루었다. 그리고 무용가 김현진이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를 통해 춤의 기록, 원작, 해석을 탐구하는 <원본의 재구성>이라는 콘서트 및 전시회(대학로 예술가의집, 2월 11일~15일)를 가졌다.
<원본의 재구성>은 김현진이 참여한 ‘공연예술스타트업: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의 결과물의 일종이다.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는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28명의 예술가를 선발하여 ‘공연예술스타트업’을 개최하였다. ‘공연예술스타트업’은 예술가들의 네트워킹, 리서치, 협업, 쇼케이스를 지원하는 랩(LAB)성격의 프로젝트로, 공연예술센터는 창작플랫폼의 역할만 하고 예술가들이 직접 주도하고 자유롭게 교류하고 협업하도록 했다.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는 공연예술스타트업을 통해 발현된 18개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이핑(시범제작형태)이며 쇼케이스였다. 이 프로젝트의 최대 장점은 광범위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리서치하고 창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동료들로부터 수많은 영감을 받고 여러 개념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하거나 시각을 확장해가며, 자신의 관심과 에너지를 새롭게 형성하였다.
무용가 김현진은 춤을 전시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세미나 2개실을 빌려 전시한 <원본의 재구성>에는 안무가의 개념의식, 탐구과정, 실험 결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안무가는 1993년에 방한하였던 미국 필로볼로스무용단(Pilobolus Dance Theatre)이 한국의 무용가들에게 레퍼토리를 전수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물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하고, 이 기록물을 해석하고, 재현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춤에 있어서의 기록, 원본, 해석을 의미론적으로 짚어보았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의미가 공유될 때 가치가 발현된다. 예술적 의미라는 것은 창작자 개인의 의도와 의지이기도 하며, 사회 전체의 신념체계이기도 하다. 창작 혹은 작품의 의미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거나 전달되지 않았을 때 기록의 재현, 원본의 의미 혹은 본질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예술에서 기록과 아카이브의 의미는 원작을 창작자의 의도를 절대적이지는 못하나 최대한 살려서 기록하고, 보존하며 후대에서 활용할 때 살아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진의 시도는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아카이브를 굳이 “먼지 쌓인 지하 문서보관실”로, 기록물을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에 타자로 적혀있는 동작을 묘사한 영어 문장과 그림 기호, 그리고 몇 장의 현장 사진”으로 표현한 김현진의 글은 무용아카이브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낯설게 느껴졌다. 또한, 자신의 워크숍과 재현과정을 기록한 종이, 사진, 영상물을 전시공간에 “나열”한 김현진의 의도는 컨템포러리댄스의 이색적인 제스처로만 읽혀져서 유감이었다.
글_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공연예술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