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를 전유한 작품-논설 퍼포먼스-전통 기반의 창작춤 1-이슈 퍼포먼스-전통 기반의 창작춤 2-뉴스 퍼포먼스-저작권 등록 퍼포먼스. 이세승의 <삼고무>(3월 29일, 남산아트센터)는 이슈를 내세운 퍼포먼스와 전통에 기반을 둔 한국창작춤이 교호적으로 얽힌 공연이었다. <삼고무>라는 타이틀이 도발적으로 다가오는데,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언론에서 주목받은 이매방류 삼고무의 저작권 문제가 공연을 통해 재공론화될 것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에서 해설자, 학자로, 뉴스 진행자로 등장하는 이세승은 삼고무 이슈와 저작권에 집중한다. 그는 삼고무 이슈에 대한 뉴스 영상과 삼고무가 등장하는 대중음악 영상을 보여주며 논란을 재점화시키고, PPT를 통해 저작권에 대한 개념과 춤 저작물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자료의 분량이나 프레젠테이션 방식에서 이세승의 탐구력과 진지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1시간 동안 촘촘히 전개된 장면들은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모호했다. 퍼포먼스의 사이사이에 배치된 김혜지와 이예지의 창작춤은 전통춤을 전유하고 전복하려는 시도였으나 기존 한국창작춤의 안무방식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었다. 공연의 후반부로 갈수록 영감을 받기 원했던 뇌의 작동은 더디어졌고, 깊은 울림을 기대했던 가슴은 답답해졌다. 무대 위의 위축된 사고와 몸으로부터 전이해 오는 것은 공허감이었다. 관행적 무용공연이라는 외연은 탈피했으나 혁신과 도전의식이 부족하여 내연이 그대로인 무용공연이라면 맞는 표현일까? 관객은 연출자가 배열한 시간을 따라 움직임을 관찰할 뿐 감성이나 이성의 동조, 개입, 반발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무대였다. 연출자가 설계했던 구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최초로 세웠던 주제의식이 구현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했거나 기성의 질서와 관습을 넘지 못해 좌초된 것일까?
이세승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공개토론을 연장된 공연으로 끌어들인 시도는 매우 흥미로웠다. 관객들이 던지는 다양한 층위의 질문과 질문의 방식, 이에 대해 연출자와 안무자들이 답변하고 답변하는 방식은 공연을 볼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이 갔다.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토론의 장에서 관객들은 또 다른 공연자들이었다. 어떤 질문은 객석을 술렁이게 하였고, 또 어떤 질문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맨 뒷좌석에 자리했던 관객 한 명은 토론의 열기에 휩쓸려 앞자리로 이동해 오며 마치 대사를 읊조리듯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던지는 예기치 못한 질문은 극장 안의 엔트로피(entropy)를 무한대로 증대시켰다. 이렇게 객석에서는 극적인 순간이 시시때때로 펼쳐졌지만, 긴장을 놓지 못하던 연출자와 안무가들은 이 분위기에 올라 타지 못했다. 토론에도 기획과 연출이 필요했건만, 이에 대한 준비는 없었던 것 같다.
시종일관 모범 답변을 내놓는 이세승의 태도는 소극적으로 비추어졌다. “원초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것 같은데, 구청에서나 다룰 사회적 이슈를 왜 극장에서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거죠? 내가 뭘 모르는가요?” 공연 애호가인듯한 중년 여성이 불만인 듯 큰소리로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이세승의 답변은 매우 중요했다. 그가 컨템포러리댄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또 ‘서치라이트’ 무대에서 조명받기 원한 주제가 무엇인지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 무대에 어떻게 갖고 올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다”라는 대답은 그가 하는 컨템포러리댄스 공연을 대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서치라이트에 참여하는 다른 연출자 한 명이 객석에서 “서치라이트는 남산아트센터의 리서치 프로그램이다. 창작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의문과 고민을 제기하는데 극장공연 그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치라이트는 미완성의 쇼케이스 공연이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라고 동조 발언을 해주었지만 이세승 본인의 목소리가 아쉬웠다. <삼고무> 공연이 왜 그 중년 여성에게는 저작권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토론으로만 보였으며, 극장공연의 일탈 행위로만 보였을까?
컨템포러리댄스의 요체는 질문하는 데 있다. 컨템포러리댄스의 안무자는 지금/여기의 사회, 자신을 처한 환경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리서처(researcher)는 자신의 시각으로,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리서치(research)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은 ‘해결할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컨템포러리댄스의 안무가는 리서처로서 자신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리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승은 <삼고무>에서 어떤 질문을 했을까? 이매방류 삼고무의 이슈로부터 전통과 창작의 문제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질문이었을까? 그것은 무용가, 안무가, 창작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에 불과하다. 삼고무 저작권의 근저에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컨템포러리댄스의 안무자라면 남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의 근원에 천착하고, 이를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도출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세승의 <삼고무>는 창작을 위한 질문이 선명하지 않았기에 컨템포러리댄스와 리서치의 근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하는 공연이었다.
글_ 최해리(무용인류학자, 댄스포스트코리아 발행인)
사진제공_ 남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