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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발레축제① 국립발레단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보여준 무대, 〈마타하리〉 & 〈지젤〉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아홉 번째 축제 무대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축제는 지난 6월 18일부터 30일까지, 총 13개 단체가 참여해 14편의 작품을 관객들 앞에 선보였다.

  올해는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와의 공동주최로 매년 여름 진행되던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갈라’ 공연이 시기를 앞당겨 축제 프로그램에 편입되었고, 공동기획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 허용순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협업 작품이, 기획공연으로는 와이즈발레단, 보스턴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의 트리플 빌이 CJ토월극장에서 올려졌다. 오페라극장에서는 국립발레단의 <마타하리>와 <지젤>이 초청공연으로 올려졌고, 자유소극장에서는 공모공연으로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 윤전일댄스이모션,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 김용걸댄스시어터, 신현지B프로젝트, 유회웅리버티홀, 이렇게 6개 단체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2016년 이후 프로그램에서 사라졌던 야외무대 공연도 되살아났다.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는 일반 관객들이 참여하는 라인댄스 이벤트와 취미발레인들의 무대인 발레메이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계원예술고등학교,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와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학생들의 청소년 발레 갈라가 올려지며 축제의 흥을 한껏 돋우었다.

* 섹션별로 다른 성격의 공연이 올려지고 공연의 수도 너무 많아 축제 리뷰는 각각의 섹션별로 총 5편으로 나누되, 2회에 걸쳐 연재하는 방식으로 올린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발레축제①
〈마타하리〉와 〈지젤〉, 국립발레단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보여준 무대 

  올해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초연작 〈마타하리〉와 지난해 시즌 오프닝 작품이었던 〈지젤〉 두 작품으로 발레축제에 참가했다. 2017년에도 국립발레단은 갈라 프로그램과 〈스파르타쿠스〉로 두 개의 공연을 올린 바 있다. 당시에는 두 공연이 일주일여의 시차를 두고 올려진 반면 올해는 한 주 동안 두 작품이 다 올려졌을 뿐 아니라 두 작품 모두 전막이라 단원들의 공연 역량을 시험하는 무대가 됐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국립발레단 최장기 근속단원으로 한국 발레 르네상스기를 이끌었던 김지영의 퇴단이라는 이슈와 겹치며 간판스타의 고별 무대로 뜨거운 주목을 받았는데, 김지영은 〈마타하리〉와 〈지젤〉에 모두 출연하며 마지막 전막 무대에 강렬한 마침표를 찍었다.


국립발레단 〈마타하리〉 Photo by Phaethon film ⓒKorean National Ballet


  나는 〈마타하리〉는 신승원 출연 회차로, 〈지젤〉은 심현희와 김지영의 출연 회차로 관람했는데, 의도치 않게 국립발레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확인한 셈이 됐다. 

  재연으로 올려진 〈마타하리〉는 무용수들이 작품에 익숙해졌는지 지난해보다 한결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케빈 로즈가 지휘를 맡은 음악은 지난해 초연에 비해 훨씬 매끄러운 선율을 들려주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받쳐주었다. 〈마타하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과 10번을 편곡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다소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춤을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닌 이 음악과 레나토 자넬라의 안무가 덜그럭거리며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무용수들은 그 덜그럭거리며 생기는 균열을 메우며 이야기가 많은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신승원은 대표작으로 꼽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희극 연기보다 〈수월경화〉에 이어 드라마틱한 비극에 더 재능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테크닉은 충분히 검증된 무용수이니 향후 깊은 감정선을 드러내는 드라마 발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국립발레단 〈마타하리〉 Photo by Phaethon film ⓒKorean National Ballet



  반대로 정치용이 지휘한 〈지젤〉의 음악은 다소 산만했다. 바르 버전의 <지젤>은 1막에서 무용수들의 섬세한 연기의 합이 매우 중요한 작품인데 내가 관람한 두 번의 공연 모두 무용수들은 1막 내내 오케스트라의 템포에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템포가 균일하게 빨라서도 아니고 템포의 강약 조절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와는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심지어 김지영이 주역을 맡은 마지막 공연에서, 공작 역의 이수희는 귀족 일행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젤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음악에 쫓겨 지젤의 얼굴을 확인하는 마임을 생략해야 했다. 바르는 1막의 드라마에 지젤이 공작의 사생아라는 설정을 추가해 공작이 젊은 날 자신에게 버림받은 지젤의 엄마를 알아보고 얼굴도 몰랐던 딸의 존재를 확인하게끔 하고 있는데, 관객들 입장에선 드라마의 일부를 박탈당한 셈이다. 무용수들의 안정적인 춤과 달리 연기는 1막 내내 산만하고 쫓기는 듯했고, 이 산만함은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2막으로 넘어가서야 해소되었다.


국립발레단 〈지젤〉 Photo by BAKi ⓒKorean_National_Ballet


  한나래의 부상으로 교체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심현희는 발레단의 내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깔끔한 테크닉과 연기로 준비된 주역임을 증명했다. 국립발레단 입단 후 아직 <호두까기인형> 외에는 주역 경험이 없긴 하지만 김지영의 퇴단 이후 김리회가 복귀하며 김리회, 박슬기, 신승원이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고 박예은과 한나래가 주역으로서의 자기 증명을 해내고 있는 시점에 새로운 주역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될지 앞으로의 무대가 더욱 기대된다.

  한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무용수답게 김지영은 마지막 무대에서도 명불허전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다소 산만하게 전개된 1막에서도, 몰입도 높은 2막에서도 흔들림 없이 무대를 장악했는데, 2막에서 알브레히트와의 파드되를 하며 부레부레로 뒷걸음질쳐 퇴장하는 장면에서 잠시 주춤거린 것이 옥의 티였을 뿐 말 그대로 관객들을 감정을 쥐락펴락하며 한순간도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언제나 국립발레단의 현재였던 그가 이제 과거가 되었다는 것이 아직은 낯선 현실이지만, 은퇴 공연에 걸맞은 품위를 보여준 아름다운 무대였다.


국립발레단 〈지젤〉 Photo by BAKi ⓒKorean_National_Ballet


  주역들 외에 눈에 띄는 것은 미르타 역의 정은영이었다. 주말 이틀간 3회 공연에서 미르타를 원캐스트로 소화한 그는 아름다운 신체라인과 정확한 테크닉, 우아한 움직임으로 미르타가 윌리들의 여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미르타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위엄으로 윌리들을 지배하는 역할이지만 정은영은 자신의 호흡으로 음악을 장악해 날카로움 속에 부드러움을 심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미르타의 카리스마와 위엄이 단지 큰 키와 화려한 테크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국립발레단은 드라마와 컨템포러리로 레퍼토리를 확장해가고 있지만 클래식 작품에서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무용수였다.


글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