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즈발레단의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7월 6일(토)-7일(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는 지난 2012년 영등포아트홀에서 ‘W. Propose’라는 제목으로 남성 안무가 3인이 ‘프러포즈’라는 공통 주제로 안무한 3편의 작품을 트리플 빌 형식으로 올리며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이후 2013년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와 중국 광저우 아트페스티벌에 초청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우수작으로 또 마포문화재단과의 공동기획으로 예술의전당과 마포아트센터에서 각각 올려졌으며 2015년에는 발레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대학로예술극장에서, 2016년에는 마포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사회공헌사업인 ‘춤추는 우리 학교’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또 초청공연으로 울주문화예술회관과 아산시여성회관에서, 2018년에는 교류공연으로 평송청소년문화센터에서 공연되며 발레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잡아왔다.
제목에 ‘발레리노’가 들어가긴 하지만 이 작품은 발레 공연이 아니라 넌버벌 댄스컬을 지향하는데,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지구 바깥 행성계의 어느 별, 이 별에서 특이한 점은 소통의 수단이 말이 아니라 춤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이 별 출신인 네 명의 남성이 지구로 날아온다. 이유인즉슨, 같은 별 여성들이 갑자기 결혼을 거부하기 시작해 위기에 처한 남성들이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지구까지의 멀고 먼 여정에 나서게 된 거란다.
춤을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별의 남성들은 지구의 여성들에게 구애하기 위해 발레, 탭댄스, 팝핀, 비보잉 등 각자 자신 있는 몸의 언어로 승부수를 띄운다. 외계에서 온 남성들이 지구 여성들을 만나는 장소는 한 레스토랑, ‘외계토랑’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는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세 명의 직원들이 있고 객석에서 즉석으로 선택된 여성은 무대에 올라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외계 남성들이 펼치는 구애의 춤을 차례로 감상한다. 네 명의 남성은 각자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펼쳐 보이지만 이들 가운데 여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뿐이다. 여성은 고민 끝에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남성을 선택하고 둘이 커플이 된 것을 축하해주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공연에는 2000년대 유행한 대중 코미디의 코드가 고루 녹아 있다.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레스토랑이란 장소나 레스토랑의 직원이 처음 만나는 남녀 사이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때마다 등장해 객석에 웃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등은 지금은 폐지된 프로그램인 MBC <개그야>의 ‘명품남녀’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포맷이며 여성이 자신에게 구애하는 여러 남성들의 춤을 감상한 다음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은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이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짝짓기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포맷이다.
짝짓기 버라이어티는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시절을 지나며 2005년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2008년 SBS <골드미스가 간다>, 2011년 SBS의 <짝>, 2012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 등으로 이어지며 점차 ‘관찰 연애 예능’으로 방향을 선회해 TV조선의 <연애의 맛>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10년대 초반까지 위세를 떨쳤던 공개 코미디는 MBC의 <개그야>와 <하땅사>, SBS의 <웃찾사> 등이 모두 폐지되고 KBS의 <개그콘서트>와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이러한 짝짓기 버라이어티가 맹위를 떨치며 사회적으로도 연애에 대한 관심은 매우 비상해져 2000년대 중반부터 ‘솔로부대’라는 이름으로 연애 못 하는 남녀를 묶어 연애 상태가 아닌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연애 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의도에서 ‘솔로대첩’이라는 플래시몹 행사가 진행되며 정점에 이르렀다.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가 초연된 2012년에 ‘솔로대첩’ 행사가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방송의 영향뿐만 아니라 연애에 과몰입한 사회 분위기가 일정 정도 반영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중 코미디의 흐름이 변화하고 2015년 무렵을 기점으로 대중 페미니즘이 부상하며 대중매체가 고민 없이 전파하고 있는 로맨스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또한 거세졌으나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는 2012년 초연에서부터 ‘솔로로 남을 위기에 처한 남성의 구애의 모험담’이라는 기본 구조를 변화 없이 유지한 채 거의 매년 공연되며 드디어 2019년의 관객들을 만나는 데 이르고 있다. 작품 바깥 현실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는 이 작품을 태동하게 만든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어디쯤에 해당할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구현하는 ‘시간’이 언제나 동시대적인 것만은 아닌데, 이는 대중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이 각자의 시간대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케이팝의 탄탄한 소비자들인 10대와 20대 아이돌 팬과 KBS 일일드라마를 즐겨 보는 60대 시청자는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어쩌다 보니 같은 시대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각자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 현대의 창작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출사표인 “동시대와 호흡하겠다”라는 선언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창작자가 소구하고자 하는 시대가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누구의 것인 그 시대가 정확히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각기 다른 케이팝과 KBS 일일드라마가 동시대적인 창작물일 수 있는 이유는 창작자가 주 소비자의 시간을 정확히 이해하고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가 2000년대 초반에 위세를 떨친 공개 코미디와 짝짓기 버라이어티의 포맷을 유지한 채 2019년에 공연되는 것이 의미가 있기 위해선 작품이 소구하는 관객층이 누구인지, 타깃으로 삼은 이들의 어떤 시간대를 무대 위로 옮겨놓은 것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이 작품을 포지셔닝한다면 이 작품은 과거의 시간대를 현재로 불러낸 복고풍 공연이 아니라 창작자가 과거의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대착오적 공연이 될 뿐이다.
그러나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의 진짜 문제는 과거의 시간대를 현재의 무대에 올렸다는 시간적 어긋남이 아니다. 줄거리에서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의 핵심은 ‘짝을 잃은 남성들’이 지구라는 미지의 행성으로 떠나는 모험을 해서라도 기어이 ‘새로운 짝을 구하는 데 성공’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현대 대한민국의 농촌 총각들이 농촌으로 시집오려는 여성들이 없어 동남아시아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타국으로 신붓감을 찾아 떠나는 현실에 대한 풍자 코미디인가? (풍자는 아니지만 농촌 총각의 신부 찾기를 로맨틱 코미디로 그려낸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 역시 2000년대 중반에 제작되었다는 점인데, 작품이 뿌리를 두고 있는 2000년대 초중반 코미디와 시간대를 공유한다.)
작품은 풍자가 들어갈 자리에 혐오를 끼워 넣어 코미디를 완성한다. 같은 별의 여성들이 왜 결혼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생략한 채 작품은 바로 코미디로 이행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미디는 그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는 사회적 맥락보다 즉물적으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슬랩스틱에 보다 집중한다. 공연 초반 세 명의 외계토랑 직원들이 등장해 선보이는 율동이 대표적인 장면인데, 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으로 웃음을 유도하고 이들이 구사하는 움직임에는 개그맨 박명수의 시그니처 동작이기도 한 한쪽 팔을 높이 들어 금방이라도 때릴 것처럼 위협하는 동작이 포함되어 있다.
공개 코미디가 시작되기 전에 현장 사회자가 객석 분위기를 끌어올리듯이 외계토랑의 직원들이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으로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퇴장하고 나면 외계에서 온 남성들이 구애를 하기 위해 대상을 고르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여성은 ‘신상’ 화장품 같은 데 몰입하는 쇼퍼홀릭이라서, 또 어떤 여성은 성형수술을 받은 인공미인이라서, 또 어떤 여성은 기혼여성이라서, 구애의 대상에서 탈락한다. 무대 위 스크린에는 성형수술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인 ‘돌려깎기’나 성형 비용 등을 제시하거나 기혼여성의 머릿속 생각에 집안일을 집어넣는 식으로 스테레오타입이 된 여성혐오와 성 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재생산한다.
여성들의 과소비를 조롱하는 단어인 ‘된장녀’의 등장이나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을 ‘강남미인’ 등으로 범주화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부터임을 상기하는 것은 이 작품이 과거에 있었던 현상들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현재에 다시 불러낸 것인지, 아니면 여성을 대하는 창작자의 관점이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에 대한 유력한 힌트가 된다.
와이즈발레단은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발레단이나 통일그룹이라는 모 기업을 두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과는 입장이 다르다. 민간에서 생존을 위해 이들이 채택한 전략은 ‘발레 대중화’다. 무용 전공자 또는 관계자들이 아닌 ‘대중 관객’에게 소구해 단체의 앞날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무용계에서 변화를 위한 절대적인 슬로건처럼 내세우고 있는 ‘대중화’라는 표현 안에 들어 있는 정치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일단 차치하고, 이들이 생존 전략으로 말하고 있는 ‘대중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며, 이때의 ‘대중화’는 ‘대중추수주의’와 동의어가 된다.
콘텐츠 생산자가 대중을 추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대중추수를 위해 가장 손쉽게 동원되는 전략이 바로 ‘혐오’다. 공개 코미디의 최후의 보루가 된 <개그콘서트>의 인기를 지탱해온 강력한 동력 역시 ‘혐오’였다. <개그콘서트>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을 통해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혐오’를 대중화했고 이러한 ‘혐오’를 통해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19년이 된 현재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1980년대에 KBS의 <쇼 비디오 자키>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시커먼스’라는 코너가 있다. 이봉원과 장두석 두 개그맨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말투를 선보였던 이 코너가 사라진 것은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혐오 콘텐츠를 송출해 외부의 비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올림픽이라는 국가 행사가 아니었다면 보다 장수하며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무용계에서, 그리고 와이즈발레단에서 ‘대중화’를 외치며 소구하고자 하는 ‘대중’이란 타깃은 매우 모호하다. 한국은 여전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을 차별하는 데 무감각한 사회지만 그런 사회 일각에서 ‘혐오’에 대한 각성은 매우 빠르고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대중을 추수하기 위해 ‘혐오’라는 손쉬운 장기 말 위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각성하고 있는 대중보다 뒤처져 ‘혐오’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인가. 이를 진퇴양난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것이다.
글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와이즈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