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다페나 대한민국발레축제처럼 방역 기준에 따라 객석 거리두기 등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공연 활동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내와 달리 코로나 상황이 나날이 악화 일로에 있는 해외 공연계는 극장 가동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공연단체들은 언제쯤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기고 있다.
마린스키발레단, 볼쇼이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 로열발레단, 영국국립발레단, 빈국립발레단,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함부르크발레단, 뉴욕시티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등 평소에 공연실황 영상 제작에 인색했던 단체들까지 온라인 상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상영작들을 살펴보면 컨템포러리 작품보다는 잘 알려진 클래식 발레나 서사가 있는 드라마 발레의 비중이 높다. 아무래도 온라인 상영에서는 실제 공연장보다 집중력이나 몰입도가 떨어지기에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으로 보는 공연은 공연장에 직접 방문해서 보는 것보다 관람 경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국경은 물론 관람료라는 비용의 허들마저 사라진 온라인 세상에서는 공연 영상의 질이 관람 경험을 좌우하게 된다. 영상에 따라 경험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국내 상영작의 경우 코로나 시국에 맞춰 대개 국공립단체에서 시민들에게 베푸는 공공 영역의 서비스 성격의 영상들로, 예술의전당에서 극장 상영용으로 제작한 SAC ON SCREEN 정도를 제외하면 단체의 기록용 공연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이기에 결코 영상의 질이 높다고는 볼 수 없다. 반면 실황 영상을 DVD나 공연 전문 유료 채널 등의 2차 시장에 공급해온 경험을 꾸준히 쌓아온 해외 발레단의 공연은 영화 못지않은 영상미를 자랑하는 수준 높은 영상들이 많다.
영상 초반 공연장이 위치한 번화가와 로비, 객석 등을 훑으며 공연장에 함께 입장하는 듯한 인상을 부여하거나 드라마 타이틀처럼 본 공연에 앞서 주요 인물들을 미리 소개하는 등의 편집은 영상물 시청 경험이 많은 관객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방식이다. 코로나 시국에 공개된 영상들은 예술감독의 코멘터리를 덧붙이거나 막과 막 사이에 후원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넣는 등 현 시점에서 공연예술의 가치를 환기시키고 무용수들의 연습 장면이나 인터뷰 영상을 함께 올려 공연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자 한다. 영상으로 현장감을 옮길 수 없는 대신 영상을 통해 온라인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지를 고민한 결과물들이다.
무대 위 미디어믹스, 러시아제국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
로열발레단은 온라인 상영에 가장 적극적인 단체 중 하나다. 유튜브에서는 <피터와 늑대>, <변신>, <아나스타샤>, <첼리스트>, <고집쟁이 딸>, <울프 웍스> 등의 공연이 이미 상영되었거나 현재 상영 중이며, 이 외에도 공연예술 전문 채널인 메디치TV와 마키(Marquee)TV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호두까기 인형>,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겨울이야기> 등 대표 레퍼토리들이 올라와 있다. 유료 채널이지만 회원 가입 후 한 달 동안은 무료 체험이 가능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뜻밖의 선물이라 할 이러한 온라인 중계는 로열발레단이 2005년 이후 내한 소식이 없는 단체이기에 관객들로서는 해외로 나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공연들을 안방에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Tristram Kenton
상영작 중 5월 15일부터 28일까지 유튜브에서 선보인 <아나스타샤>는 케네스 맥밀런이 1967년 도이체오페라발레단에서 단막으로 안무했다가 로열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뒤인 1971년 전막으로 재안무한 작품이다. 상영작은 2016년 10월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실황으로, DVD로도 출시되어 있는 이 실황은 2004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재공연까지의 기간이 짐작케 하듯 맥밀런의 다른 작품에 비해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닌데,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드라마 발레로 명성을 얻은 그답지 않게 주인공의 심리는 다소 모호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은 그리 유기적이지 않다.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황가의 마지막 황녀인 아나스타샤는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직후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생존설은 꾸준히 전파되며 관심을 끌었는데, 1920년 독일에서 자신이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주장하는 안나 앤더슨이라는 여성이 등장한 것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안나 앤더슨은 가족들이 살해당하는 현장에서 기절했다가 어떤 군인에게 구조되었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고, 아나스타샤와 닮은 그의 외모와 황실 사람들만이 알고 있던 지식은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처형 당시 여성들은 드레스와 코르셋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보석들이 방탄 효과를 발휘해 총격으로도 쉽사리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이에 군인들은 총검으로 수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아나스타샤의 생존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가 코르셋 덕분에 목숨을 보전해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되며 인기를 끌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율 브리너가 주연을 맡은 1956년작 <아나스타샤>다. 로셀리니와의 작업을 위해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떠나 있던 버그만은 이 작품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안나 앤더슨은 아나스타샤의 할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를 만나 황실의 일원임을 인정받지만 황녀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결말을 맞는다. 반면 현실의 안나 앤더슨은 러시아 황실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장기 소송을 진행했다 결국 패소했다. 지지자들은 그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 지원은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1991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인근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유골이 아나스타샤의 부모인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임이 확인되고 나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안나 앤더슨은 로마노프 황가와는 아무런 유전적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나스타샤 혹은 안나 앤더슨,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
맥밀런은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를 기억을 잃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재구성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 작품 이후 만들게 되는 <마이얼링>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로열발레단에서 1978년 초연한 <마이얼링>은 아름답고 비극적인 멜로드라마로 각색된 테렌스 영의 동명 영화와 달리 로맨티시즘을 거세한 채 황태자라는 지고한 위치에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심리극으로 재탄생되었다.)
안나 앤더슨의 존재는 1920년 베를린에서 자살 시도를 해 병원에 실려갔다 깨어난 뒤 자신이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주장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맥밀런은 다른 창작자들처럼 그의 주장에 어떤 타당한 근거가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따라가는 대신 그의 혼란스러운 기억에 주목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정신병원에 입원한 안나 앤더슨(나탈리아 오시포바)은 아나스타샤 황녀의 일상이 담긴 흑백 영상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단편적으로 끊어진 그의 기억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맥밀런은 머리를 짧게 깎고 환자복을 입은 정신병원의 안나에게 당신의 정체를 말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과거의 장면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Tristram Kenton
1막에서 아나스타샤와 가족들은 황실 소유 요트인 스탠더드 호에서 즐거운 휴가를 보내던 중 1차 대전 발발 소식을 듣게 된다. 2막은 러시아 혁명으로 겨울궁전이 폐쇄되고 황실 가족들은 모두 예카테린부르크에 유폐된 다음이다. 황실에서는 앞날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사교계에 진출할 나이가 된 아나스타샤의 데뷔탕트 무도회를 열기로 한다. 이 무도회에는 미래에 그의 남편이 될 귀족 청년도 참석한다. 3막에 등장하는 것은 아나스타샤가 아닌 베를린 정신병원의 안나다. 요트에서의 휴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던 군인들과 자신을 구해준 또 다른 군인들, 남편의 죽음과 아이의 실종, 자살 기도 등 기억과 환상이 마구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맥밀런은 동명 영화에서 스토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로맨스를 따라가지는 않지만 영화 속 안나 앤더슨과 아나스타샤가 동일 인물이라는 가설을 긍정하고 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점은 안나 앤더슨이 로마노프 황가와 유전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임이 밝혀지기 훨씬 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무용수 에드워드 왓슨이 2막에서는 무도회 파트너를, 3막에서는 안나 앤더슨의 남편을 연기하는데, 그가 3막 안나의 기억 속에서 처형당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데뷔탕트 후 아나스타샤가 그와 결혼했고 황실 가족 처형 때 다른 가족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음을 암시한다.)
©Tristram Kenton
그러나 과거 기억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셈이 된 1막과 2막은 3막과 썩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는다. 특히 클래식 발레의 형식을 취한 2막 데뷔탕트 무도회에서는 니콜라이 2세의 전 연인이었던 황실발레단 발레리나 마틸다 크셰신스카(마리아넬라 누네즈)가 파트너와 함께 등장해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아나스타샤 혹은 안나 앤더슨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 하는 본 줄거리에서 이 내용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2막의 무게중심을 아나스타샤에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크셰신스카의 삼각관계로 이동시켜 오히려 작품의 맥을 끊어놓는다.
불균질한 작품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은 오시포바의 관록이다. 1막의 활기찬 소녀와 2막의 위엄 있는 황녀를 지나 3막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려 하는 한 여성에 이르자 오시포바는 내면의 불안을 터트리며 폭주한다. 그가 떠오르는 기억들을 밀어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도망치려 애를 쓸수록 기억들에 둘러싸이게 된다. 1막과 2막에서 황실 가족들에게 닥쳐올 불행을 예고하는 듯 시종일관 음산한 기운을 내뿜던 라스푸틴(티아고 소아레스)은 3막에서 안나에게 계속해서 끔찍한 기억들을 상기시키는 한편 그가 가족들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마주하는 것을 방해한다.
괴로워하던 안나는 마침내 자신의 기억을 조종하려는 라스푸틴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의 응시는 혼란스러운 기억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기억들과 단절하기 위함이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안나는 자신이 누구이든 과거의 기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맥밀런은 안나 앤더슨이 생존한 아나스타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지지하면서도 그가 굳이 부활한 황녀가 될 필요는 없다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실존 인물의 생애를 각색한 작품들은 대개 가상의 로맨스를 뒤섞거나 그의 꿈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자의적인 의미부여를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맥밀런은 이러한 인위적인 의미부여 대신 안나 앤더슨이 기억과 싸우는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 침대에 실려 퇴장하는 안나의 모습은 관객이 흔히 결말에 기대하는, 새로운 세계로 희망에 차서 떠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설득력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을 극화하면서 창작자가 잊기 쉬운 예의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로열오페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