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파브르의 <눈물의 역사> 내한공연(2006)에 출연하여 ‘뚱뚱한 남자 무용수’로 화제가 된 올리비에 뒤부아는 그 후 자신이 연출한 작품들을 한국에서 공연했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논란을 불렀다. 자신이 출연한 공연뿐 아니라 자신이 안무한 작품에서도 그는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을 깨버렸다. 그의 공연은 현대 무용의 몸에 대한 다각적인 시도들 가운데서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된 또 다른 영역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표현 방식에 있어 신선하다는 호평은 받았으나 매번 혹독한 관극의 기억을 남기고 있다.
이번에 공연된 <비극>(4월 1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은 90분 동안 18명의 무용수가 나체로 등장한다. 빈 무대에 의상도 없고 음악이 주된 극적 효과로 작용했다. 초반부 40여 분 동안은 벌거벗은 무용수들의 행진만이 계속되었다. 그가 제시한 무용수들의 다양한 신체는 각자의 신체에 각인된 시간과 경험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깡마르거나 뚱뚱하거나 뱃살이 늘어진 일상의 몸들이다. 뒤부아는 독특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선호한다. 그가 무용수 각자의 삶의 흔적을 몸을 통해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하는 작업 동향을 볼 때 추상화된 그의 무대 작업의 바탕에는 시의성과 고발 의지로 점철된 다큐멘터리적 특질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 <비극>은 작품의 철학과 구성 형식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근대인의 시각으로 고대를 성찰한 이 책에서 뒤부아가 취했을 법한 근대적 이상과 고대의 아름다움은 무대 위에 현대적 표현으로 옮겨지면서 보편적 진리를 아주 힘겹게 읽어내도록 만들었다.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간성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적 비극입니다.”라는 뒤부아의 말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비극’인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여기에 인간이 신과 결별하면서부터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는 테제를 연결시킬 수 있겠다. 인간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고, 제우스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은 인간의 고통과 노력의 대가로 얻는 인간의 성숙으로 이어졌다. 이 공연은 인간이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한 원초적 발버둥을 보여주는 셈이다.
공연의 구성은 그 흐름이 그리스 비극의 플롯과 유사했다. 발단에서 절정을 거쳐 카타르시스에 도달케 하는 구도는 이 공연의 관객에게 3단계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충격 – 지루함 – 감동’이다. 첫 단계 40여 분은 각자의 몸들을 소개했다. 마치 새벽녘에 동이 트듯 아주 서서히 밝아지는 무대에 알몸의 무용수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무용수들의 대거 등장에 관객은 당황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이들의 줄기찬 반복 동작에 지루해지고, 그 지루함 뒤에 이어지는 격렬한 움직임들이 처절하게 느껴지더니 이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묘한 체험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모든 관객이 이러한 수순을 밟지는 않는다. 극장 안에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은 힘겨울 수밖에 없고, 이 공연을 불쾌해 하거나 불편해하는 관객을 나무랄 수 없다. 휴머니티의 회복이라는 숭엄한 주제를 지니고 있음에도 나체의 연기와 특히 성행위를 묘사하는 동작은 여전히 매스컴의 야릇한 관심을 받았다.
뒤부아의 이렇듯 과감한 작업은 무용수의 몸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무엇보다 표현 방식에 관한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공연 외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더라도, 나체만으로 등장하다 보니 안무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기술과 기교를 섬세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용수들의 신체는 서로 긴밀하게 교감하지 못하는 전시적인 효과에 머물렀다. 이것 또한 안무가의 설정일 수는 있으나 색다른 표현이라는 승부수는 역설적으로 표현의 한계에 부닥쳤다.
다양한 신체들이 수집된 무대, 음악과 몸이 어우러지면서 휴머니티에 대한 근대적 이상에서부터 현대 사회의 관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강하게 표출하고자 했다. 작품의 깊이가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실제 공연장에서는 작품이 지닌 아름다운 해석을 그대로 느끼기 어렵다. 나라마다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을 유도할 수 있다. 그것이 이 공연의 매력이자 흥미진진한 점이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성남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