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마세요(Forget Me Not)>
필립 장띠 무용단은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단체는 아니다. 순수한 무용작품이라기 보다는 인형극과 연극, 마임과 퍼포먼스 등이 혼재된 특이한 공연형식 때문일 것이다. 무용의 시각에서 볼 때 형식상의 애매함이 그를 주류 무용의 변방에서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원과 융합이 이 시대 컨템퍼러리 예술의 화두가 되어서일까. 이 단체가 ‘SIDANCE 2014’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토월극장에서 두 차례의 공연(9.27~28)을 가졌다. 제목은 <나를 잊지 마세요>다. 2004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아왔던 이후 두 번째 한국공연이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필립 장띠와 메리 언더우드가 예술감독과 안무감독을 맡았고 음악은 르네 오브리가 담당했다.
무대 가장 먼 곳에 언덕을 넘어오는 인형들과 마차의 행렬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설원을 넘어 도착한 그들이 무대를 펼친다. 커다란 공기주머니로 빙벽과 설산을 만들어놓은 무대에서 여인의 귀에 익은 노래 소리가 울려온다. 얼굴을 돌리니 흉측한 탈을 쓴 모습이다. 검은 옷의 남녀들이 쌍쌍으로 등장한다. 자세히 보니 사람크기의 인형을 하나씩 안고 있는 모양새다. 매직처럼 부풀었다 작아 졌다 반복하는 공기주머니, 늘어놓은 의자들, 설원을 달리는 스키 족, 미끄러운 빙판과 썰매,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무대를 누비는 천사…. 없는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장치와 소도구들이 무대를 장식한다. 그러나 어지러울 법한데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보라색과 녹색, 청색으로 색조를 바꾸는 수채화 같은 가변형의 전원풍경이 영상으로 떠 있다. 계절은 겨울이고 배경은 설원이며 장띠의 주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을 닮은 인형들과의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일 것이다. 이러한 그리움을 춤과 마임과 인형극과 마술 같은 조명, 그리고 스토리를 갖는 연극 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나를 잊지 말라고…. 고요함 가운데 움직임이 쉬지 않는 정중동(停中動)이라 할까. 요란하고 시끌벅적할 것 같은데 의외로 분위기는 차분하고 서정성마저 짙게 풍긴다.
안무가가 90분 동안 관객들을 재미있게 하고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들며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띠의 작품에서 이러한 무대가 가능한 것은 작가의 뛰어난 창의성과 공연전반을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 때문일 것이다. 필립 장띠(Philippe Jenty; 1938~)는 프랑스태생의 안무가다. 시각예술을 전공했고 무용가라기보다는 마임이스트 혹은 인형극안무가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역시 2014년 런던국제마임축제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장띠의 작품이 무용적 요소를 갖추고 아름다운 공연형식으로 탄생하는 배경에는 그의 아내인 메리 언더우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발레리나로서의 안무 감각과 리듬감이 장띠의 환상적인 색감을 만났을 때 무용도 연극도 음악도 미술도 아닌 융합된 다원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SIDance의 개막작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블랙 다이아몬드(Black Diamond)>
‘SIDance 2014’에 초청된 외국무용단 가운데 지명도가 가장 높은 팀으로는 덴마크댄스시어터(Danish Dance Theater)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81년 코펜하겐에서 창단한 후 열 차례에 걸쳐 덴마크 최고의 무용작품상 후보에 올라 네 차례를 수상한 덴마크 최대의 컨템퍼러리무용단이다. 2001년 영국출신 안무가인 팀 러쉬튼(Tim Rushton, 1963~)을 예술감독으로 초빙한 이래 클래식발레와 현대무용을 융합한 혁신적인 춤으로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무용단의 금년 초청작은 2014년 신작인 <블랙 다이아몬드>(10.12,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였다.
검정색 다이아몬드를 모자이크 식으로 배치한 기하학적인 무대배경디자인이 작품에 대한 우울한 선입견을 형성한다. 막이 오르면 어두운 조명 속 검은 색 의상에 복면을 한 거구의 남녀무용수들이 곧 무대를 장악한다. 음울하고 장중한 음악이 낮게 깔린다. 힘을 바탕으로 팔다리를 크게 휘두르는 직선적인 춤사위는 부드러움보다는 거칠음을 내보이고 인간적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겨준다. 정신은 인간이되 몸은 기계화된 미래형인간을 표상하는 것 같다. 군무를 추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은 집단적이되 의식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 듯 표정은 제각각이다.
40분의 1부 공연에 이어 20분의 휴식을 가진 후 30분간의 2부 무대가 펼쳐진다. 의상이 흰색으로 바뀌었고 흰색 복면을 썼지만 춤이 바뀌는 것은 없다. 무대 한가운데 웅크리고 누워있던 흰색타이트의 남녀듀엣, 잠깐의 솔로를 거쳐 10인 남녀의 본격적인 군무로 2부는 구성된다. 전자적인 비트음악 사이에 때로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고 로봇과 인간의 혼재 속에서 미래시대의 인간관계가 예언되는 것 같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인간성에 대한 체념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들의 춤에선 슬픈 서정이 느껴진다. 빛의 덩어리를 희망으로 품으면서도 거대한 시대의 조류에 따라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은 길게 늘어뜨린 검은 망토에 올라탄 여인들로 표현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침울하고 무용수들의 동작은 거칠고 성급하다. 미래세대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어두운 것일까. 음울하게 조각한 작품의 끝은 여인의 건강한 나신이다. 몸에 걸친 옷을 한 꺼풀씩 벗겨내면 가슴이 드러나고 허리가 흘러내리며 종국에는 온몸을 들어낸다. 춤 출 수 있는 아름다운 몸만이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란 메시지로 해석해본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SIDance 201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