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회를 맞은 ‘춤추는 남자’(아래 ‘춤남’) 공연이 8월 6일과 7일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해운 홀에서 열렸다. 6일은 창작춤 4꼭지, 7일은 전통춤 12꼭지가 무대에 올랐다. 부산의 대표 춤공연으로 자리 잡은 ‘춤남’은 전통·민속춤을 추는 남성 춤꾼이 중심이 되어 이어왔다. 전통·민속춤이 중심이었지만 때때로 창작춤도 함께 했다. 2012년은 파격적으로 거리춤 공연을 했는데, 올해 창작춤으로 참여한 박재현, 이용진은 당시 해운대 미포에서 공연한 거리춤에 <사회적인(social)>과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각각 참가했었다.
최근 몇 년간 대부분 전통·민속춤으로만 짰던 ‘춤남’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올해는 모처럼 창작춤과 함께했다. 그런데 ‘춤남’에 창작춤을 포함한 것을 큰 변화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앞서 언급한 거리춤 공연에서는 프로그램 전부를 창작춤으로 구성했고, 현대 무용가 김윤규는 ‘춤남’ 초기부터 여러 차례 창작 작품으로 함께했다. ‘춤남’이 춤추는 ‘남자’가 중심이었지 ‘전통·민속춤’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올해 특별한 점은 전통·민속춤에 세 꼭지가 새롭게 들어왔다는 점이다. 탈춤을 바탕으로 창작한 황해순의 <탈·짓·굿>은 ‘춤남’ 무대에 전통ㆍ민속춤을 바탕으로 한 창작춤이 홍기태의 <애련> 하나뿐이었던 아쉬움을 채웠다. <가락오광대 말뚝이춤>과 양산에서 전승해 온 <호걸 양반춤>은 다른 전통·민속춤에 비해 부산 관객에게 덜 알려진 편인데, 이번 공연으로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인태 <호걸 양반춤> ⓒ이수환
6일 공연한 창작춤은 신상현의 <하시마(端島) 엘레지>, 박광호의 <주야>, 박재현의 <조용한 기적>, 이용진이 안무 한 <사자-Who> 4작품이다. 이들 중에 탈춤 요소가 부분적으로 들어 간 신상현의 <하시마(端島) 엘레지>와 북청사자놀음을 모티브 삼은 <사자-Who>는 ‘춤남’이 창작춤을 수용할 때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춤남’은 처음부터 창작춤을 수용했는데, 문제는 전통·민속춤과 창작춤을 같은 무대에 올렸을 때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이다.
전통·민속춤 출연자 대부분은 예능 보유자급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루고, 각 춤끼리 동질성이 있다. 반면 창작춤은 주제와 춤 언어의 다양함으로 전통·민속춤과 동일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하시마(端島) 엘레지>와 <사자-Who>는 전통·민속춤과 이질감이 적은 창작춤이다. 작품 수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춤남’의 기획 의도와 정체성을 생각해 계속 창작춤을 수용하겠다면, 전통·민속춤 바탕이 분명한 창작 작품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공연에서는 한꺼번에 볼 수 없는 다양한 전통·민속춤과 이를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 조화로운 무대야말로 ‘춤남’이 창작춤을 수용할 때 기준이며, 타 공연과 다른 ‘춤남’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신상현 <하시마(端島) 엘레지> ⓒ이수환
박광호 <주야> ⓒ이수환
박재현의 <조용한 기적> ⓒ이수환
이용진 <사자-Who> ⓒ에게로
공연 둘째 날, 전통·민속춤 무대에 새롭게 오른 세 꼭지 말고도 이진호, 강모세가 함께한 <쌍 처용무>도 눈길을 끌었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추는 처용무는 독무에 비해 궁중무용의 조화와 절제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황해순의 <탈·짓·굿>은 지난 정한을 추스르는 ‘씻김’과 지금 여기에서 미래까지 담지 하는 ‘비나리’를 담았다. 황해순은 오랜 시간 마당극 배우, 탈춤꾼으로 활동하다가 예술행정가로 변신했지만, 선배 광대·춤꾼이 지녔던 가슴 속 칼날을 덜렁한 춤사위로 여전히 벼리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김경철의 <가락오광대 말뚝이춤>은 반가운 춤이다. 가락오광대는 1970년대에 전승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를 다시 복원한 것은 1986년이다. 다른 탈춤에 비해 복원 시점이 늦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공연으로 낙동강 건너 김해, 마산의 오광대와 부산 수영, 동래야류와의 근친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양산 지역에서 내려 온 이인태의 <호걸 양반춤>은 같은 무대에 오른 강동옥의 진주오광대 <양반춤>과 비교 감상으로 재미를 더했다. <호걸 양반춤>은 동선을 넓게 잡지 않고 동작이 세세해 기방에서 놀면서 추는 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진주오광대 <양반춤>은 야외에서 놀던 춤이라 동선과 춤사위가 크고 활달하다.
이진호, 강모세 <쌍 처용무> ⓒ이수환
김경철 <가락오광대 말뚝이춤> ⓒ이수환
전통·민속춤의 기운은 강했다. 전통·민속춤이 원래부터 관객의 흥을 돋우는 것이 큰 목적이어서인지 수십 년 춤을 춘 춤꾼은 관객을 춤판에 끌어들이는 솜씨가 뛰어났다. 그들에게 프로시니엄 무대의 한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공연 날 폭우 경보가 내린 중에도 거리 두기로 한 자리씩 띄어 앉긴 했지만, 객석은 만석이었다. ‘춤남’ 무대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관객을 보면서 이런 시기일수록 춤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의 소용돌이가 끝나 부디 우리 춤의 신명이 모든 곳에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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