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단 탐에서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황희상이 제1회 황희상 현대무용공연 6년 만에 <정오의 눈>으로 두 번째 무대를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중인 탓에 많은 관객을 모시지 못하고 9월 22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에서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그동안 조은미 예술감독이나 조양희, 마승연 등 탐의 대표적 인물들의 작품에서 조용히 자신의 역량을 다져왔다. 그 결실로 ‘현대무용단 탐 40주년기념 작품시리즈 Ⅱ 젊은 무용수 젊은 안무가’전과 이번 개인 공연을 연달아 가지면서 확연하게 성장과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정오의 눈>은 지금까지 <그린 그림자>, <Reflection>, <선택>, <리듬부호>, <쉬지않는 계단>, <Than>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나름의 성장을 이뤄온 하나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기본기를 갖춰가며 충실하게 전진해온 셈이다. 특히 움직임의 특질이나 구성의 밀도에 있어서 전작 <Than>도 괜찮았으나 <정오의 눈>은 한층 발전된 모습이다. 또한 김아리현, 황은빈, 민근혜, 신동윤과 같이 자신의 색깔이 선명한 무용수를 발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정오의 눈>에서 황희상은 탐의 특징처럼 추상적 주제를 선택했다. 정오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 모든 새로운 세상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정오의 느낌은 하루의 중간이라는 시점에서 그녀의 말처럼 태양의 강렬함이 중심적 이미지이지만 다가올 어두움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가장 활발하게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의 기복을 반복하는 순간이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밝고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된 공연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황희상이 밀대로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다. 정오라는 시간에 맞춰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영역을 넓혀가며 자의식의 확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아리현이 반투명 플라스틱 컵의 물을 조금씩 쏟으면 밀대를 든 황희상이 계속 쫓아다니며 그 물을 닦는다든지, 컵에 든 물을 마신 뒤 돌려준다든지 둘의 행위는 초반부 집중에 유효했다. 이후 끈 풀린 운동화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신동윤은 신선한 에너지로 무대를 이끌었고, 점프 수트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민근혜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다. 두 무용수는 쌍둥이처럼 비슷한 이미지로, 기존 탐 무용단의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이었기에 이색적이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에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민근혜가 돋보였고, 깔끔한 선을 강조하는 황희상과 김아리현의 듀엣, 길게 합쳐진 컵을 발로 밀고 나온 황은빈의 역동적 솔로, 기하학적 바닥 조명에 미니멀한 음악 속에서 컵을 활용하며 5명의 춤 장면 등이 이어졌다. 컵을 무대 여러 장소에 배치시키면서 푸르름 속 몸성에 충실한 무용수들은 빛을 발했다. 무대 뒤편에 흰 긴 천이 내려오고 이곳에 한줄기 푸른빛이 드리울 때 컵을 다시 모으며 춤추는 장면 이후 긴장감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스피디한 전개나 급반전의 분위기도 필요했지만 전체적으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군집은 발레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미적 감성을 선사했다.
<정오의 눈>은 자연스러운 시퀀스, 감각적인 조명, 컵이나 붉은 송판 등의 효과적 오브제,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움직임 어휘 등이 어우러져 그녀의 연출력을 확인시켰다. 개인공연이라는 부담을 극복하고 과거보다 조합이나 구성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고 완성도를 더했다는 점이 높이 살 만 했다. 그래서인지 파격이나 신선이라는 단어보다는 점진, 성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현대무용단 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