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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 - 홍정아 〈Journey of Light〉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는 현실이다.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는 특히나 긴급수혈이 필요했다. 밀폐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공연의 특성상 가장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긴급기금으로 공연업 회생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무용계에서는 70여 단체가 기금을 받았는데 한국무용협회가 수행을 담당했다.  

 


 

홍정아의 〈Journey of Light〉도 코로나 기금을 통해 30분짜리 공연으로 완성되었고, 큰 타이틀 아래 옴니버스 형태를 갖췄다.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독창적이며 조류를 반영하면서도 나름의 핵심을 지닌다. 우선 무용계에서는 드물게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통해 무용수들의 움직임, 그림, 글, 대화 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완성해갔다. 컴퓨터상으로만 온라인 스트리밍되었는데, 무용스튜디오와 야외에서 행해진 실제 오프라인 공연에서의 인상은 상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촬영의 편집기술로 또 다른 시각이 더해지면서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몽환적이었다.  

 

작품은 조지훈의 시 <빛을 찾아가는 길 중에서> “빛을 찾아가는 길에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에 기초한다. 안무자는 저마다 고유한 빛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삶의 여정에서 그 빛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찾아가는 각자만의 여행에서 희망의 노래를 소망했다. 기획제작은 무빙 랩(Moving Lab), 장소는 서울무용센터 B9스튜디오, 안무감독 홍정아, 조안무 김수진, 공동즉흥창작은 김수진, 김혜원, 신채롱, 한소희, 드라마투르그 엄혜조, 즉흥음악 정신화였다.  

 


 

이 작품은 소매틱 훈련과 홍정아 자신이 이름 붙인 움직임 촉진기법(Moving Facilitation)을 사용해 무용수 개인의 고유한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움직임 촉진기법이란 안무감독 홍정아가 안무할 때 스코어링하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움직임, 글, 이미지, 음악 등의 다양한 예술자원들을 변형시키면서 움직임을 이뤄간다. 작품에서는 이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소매틱이란 무용수들을 대상화했던 기존의 안무방식에서 탈피하여 무용수가 주체적 관점에서 자신의 몸을 감각하는 원리를 깨울 수 있는 방법론이다. 더불어 바디파트의 움직임에 축적되어 있는 이미지와 다양한 표현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의 안무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동시대 춤의 관점이 기존의 안무자 주도의 방식에서 벗어난 이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나타난 여러 방식 중의 하나라 하겠다.  

 

소매틱 움직임을 통해 몸의 현상을 알아차리는 훈련은 무용수들이 움직임을 바탕으로 내면과 깊게 소통하는 자원을 얻고, 더욱 자유롭고 살아있는 표현이 가능하도록 훈련한다. 그들은 우선 어휘를 만들고 연습과정에서 몸의 감각, 이미지, 감정을 기록하는 글을 작성하고, 소매틱을 통한 움직임 훈련으로 이어졌다. 또한 즉흥작업을 통한 이미지화 작업과 즉흥움직임을 라이브 음악과 소리로 촉진하고 이미지와 움직임을 새롭게 변형해 음악, 글로 만들어간다.  

 


 

이 작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4명의 여성무용수들은 자신만의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영상이 시작되면, 풍경처럼 울리는 은은한 소리, 흙과 교감하는 미세한 촉감은 대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작은 나뭇가지를 입으로 불고 대지에 물을 붓고 태초의 움직임처럼 움직이는 행위들은 자연친화적인 동시에 아름다웠다. 그리고 희미한 때로는 찬란한 빛 속에서 계산된 구도보다는 접촉즉흥 식의 순간적 몸짓들이 주의 깊게 움직임을 관찰하도록 만들었다. 이어지는 두 명 혹은 네 명의 유기적 관계, 개인의 빛을 각각의 무용수를 비추는 컷, 후반부 빛 속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암막이 그들을 어둠속에 가두는 설정, 작은 손전등을 든 그녀들의 빛을 찾는 과정, 바람 소리와 노래 소리 속에서 자연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전개, 따스한 카메라의 시선이 감각적이었다.   

 

간혹 드라마투르그의 도움을 받아 무용수 바디파트의 각 부위별 움직임 속에 담긴 이미지와 이야기의 공통분모를 주제화시키고 작품의 흐름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안무자의 머리에 이미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어도 모두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몸, 감각, 인지, 이미지, 즉흥 등이 핵심을 이루는 작업이 일면 구도(求道)의 인상을 풍기는 것은 경건하면서도 사유(事由)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홍정아의 〈Journey of Light〉는 여성적 이미지가 아련하지만 외유내강(外柔內剛)이 느껴졌다. 또한 코로나19의 종식으로 완성된 형태의 극장 공연이 영상에 못 미칠지 혹은 이를 뛰어넘을지 가늠이 어렵긴 하나 안무가와 협력한 인물들의 진정성과 소통의 간절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따라서 현재진행형인 이 작업이 앞으로 또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움직이는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