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로사스무용단이 LG 아트센터 초청으로 2005년 이후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무용단 창단작품으로 1983년 초연한 <ROSAS DANST ROSAS(로사스 로사스를 춤추다)>와 1998년 작품인 <드러밍(DRUMMING)> 등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5.7, 5.9~10). 첫 작품을 놓친 나는 두 번째 작품만을 보았다.
12명의 무용수가 둘로 나뉘어 무대 양쪽 가에 도열해있다. 헐렁한 흰색 상하의를 걸친 8명 여성무용수와 흰 상의에 검정색 바지를 입은 남성 4명이다. 러시아, 미국,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브라질 등 국적이 모두 다른 출연자 가운데 한국인 무용수 윤수연도 보인다. 서울예고를 거쳐 한예종을 졸업한 후 로사스가 설립한 무용학교인 PARTS의 2년 과정을 마치고 2007년 로사스무용단에 합류한 아름다운 무용수다. 이번 내한 공연 두 작품에 모두 출연했다. 두터운 한지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배경이 13폭 병풍처럼 뒷면 벽을 덮고 있고 무대바닥엔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그려져 있다. 어두움 속에서 울리는 강력한 드럼소리와 함께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한 여인이 팔과 다리를 자연스럽게 펼치며 대각선으로 무대를 가로질러간다. 한 동작은 다른 동작을 불러오고 전염되듯 12명의 무용수들로 무대는 곧 가득 찬다. 상하좌우로 혹은 대각선으로 무용수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언뜻 무질서해보이지만 자로 잰 듯 정확히 움직이는 경로에서 그들이 충돌할 염려는 없어 보인다. 어딘가 익숙한 동작들이다. 두 팔을 앞으로 활짝 편 채 어깨까지 올렸다가 내리면서 앞뒤로 흔들고 팔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이 움직인다. 팔다리를 번갈아 들어 올리며 뛰어오르듯 나아가는 동작에 리듬이 있고 힘들어 보이지 않는 미니멀한 움직임 속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한쪽 팔과 다리를 어깨와 허리까지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잠시 정지한 후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면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동작은 사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안느 테레사의 독특한 언어다. <DRUMMING>에서 춤사위의 기본은 드럼 소리에 맞춘 워킹이다. 음악에 먼저 눈 떴던 안느 테레사 드 케이리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1960~)는 1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무용을 시작했다. 그녀가 그 어느 무용가보다도 춤과 음악의 일치를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뉴욕대학(NYU)의 티쉬(Tisch)스쿨에서 컨템퍼러리무용을 익힌 후 고국으로 돌아온 안느 테레사의 작품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춤사위 속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출연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통일된 동작은 아니다. 무대장치가 거의 없고 소도구라야 기껏 의자 하나뿐이다(Rosas danst Rosas). 그러나 이 단순한 반복성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된다. 마치 최고의 힘은 정지함에 있고 최강의 군대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군대라는 동양적 철학을 체득하고 있는 것 같다. 테레사 춤의 원천은 음악에서 나온다. 드럼과 나무타악기, 금속타악기를 차례로 사용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60분 공연동안 쉬지 않고 울리는 강력한 북소리가 에너지의 공급원인 것 같다.
드러밍은 미국 작곡가인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동명 곡을 모티프로 만든 작품이다. 이 음악을 원작으로 로라 딘(Laura Dean)이 1975년 안무한 <Drumming>에 이어 1998년 안느 테레사의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리드미컬하고 단순반복적인 곡들은 로라 딘과 안느 테레사 뿐만 아니라 루신다 차일드, 엘리어트 펠트, 시오반 데이비스 등 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2년 모리스 베자르, 마크 모리스의 뒤를 이어 32세의 젊은 나이로 브뤼셀 ‘라 모네 오페라하우스’의 상주안무가로 임명된 안느 테레사는 취임하면서 세 개의 목표를 설정했다, 음악과 일치된 무용작품을 만들 것, 이러한 작품들을 레퍼토리화 하고 안무와 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무용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1995년 PARTS(Performing Arts Research and Training Studio)가 설립되었고 음악과 하나인 춤의 레퍼토리화를 이루겠다는 그녀의 꿈은 로사스무용단을 통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음악은 언제나 나의 파트너였습니다. 춤은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음악은 거기에 프레임워크를 세워줍니다.”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단순함과 반복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그녀의 춤에 왜 관객들은 쉽게 공감할까. 팸플릿을 통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관념적인 주제를 관객들에게 주입시키면서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국의 컨템퍼러리무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춤, 난해하지 않고 관객들과 공감하는 재미있는 현대 춤을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드러밍>은 성숙한 외국 무용단의 내한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던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켜준 현대무용의 수작이었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모다페 2015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