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는 클래식발레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다양한 버전으로 재창작되는 작품이다. 대개는 프티파가 완성한 안무의 틀을 유지하면서 인물 간 관계에 다층적인 해석을 불어넣고 결말에 변형을 가하는 형태로 재안무되지만 클래식발레 형식에서 벗어나 안무가가 아예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컨템포러리 작품들도 많다. 지난 4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와이즈발레단의 <라스트 엑시트(The Last Exit)>가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와이즈발레단이 2015년 발레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예술감독 홍성욱의 안무로 처음 무대에 올린 <라스트 엑시트>는 <백조의 호수>의 주요 음악과 네 주인공인 오데트, 지그프리트, 로트바르트, 오딜만 남기고 나머지 요소들은 모두 제거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었다. 제목만으로는 <백조의 호수>가 원작임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 작품은 로트바르트가 마법으로 지배하고 있는 호숫가도, 지그프리트가 결혼 재촉을 받고 있는 왕궁도 아닌, 현대의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오데트는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비정규직 사원, 지그프리트는 같은 회사의 정규직 사원, 로트바르트는 회사 사장, 오딜은 사장의 딸이다.
현대의 회사로 옮겨진 <백조의 호수>
2015년 초연과 2017년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으로 재연을 거친 뒤 세 번째로 무대에 올리면서 안무가는 작품에 대폭 변화를 주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입부와 엔딩의 변화다. 회사에 입사해 사원증을 받은 오데트의 기대감이 얼마 가지 않아 목이 졸리는 듯한 고통으로 변하고,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은 채 끝내 오데트를 삼킨다. 커튼 뒤로 끌려가듯 사라지는 오데트의 모습과 그의 얼굴에 어린 절망은 앞으로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케 하는 훌륭한 프롤로그다. 오데트가 무대 위로 내려오는 올가미 아래 서는 것으로 자살을 암시하던 원래의 결말도 책상 위에 올라선 오데트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는 것으로 체념이나 절망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쪽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짧은 프롤로그가 끝난 뒤, 기대감을 안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오데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른 정규직 직원들의 직장 내 괴롭힘이다. 자신에게 업무를 몰아주고 나 몰라라 하는 직원들 때문에 오데트는 과중한 업무로 야근을 하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여기에 회식 중 일어난 사장의 성추행은 다른 직원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직장 내 괴롭힘의 정점이다. 오데트가 성추행을 당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철저하게 외면과 무시로 일관하는데, 이는 오데트가 회식자리에서 사장 옆에 앉게 된 것이 사장과 직원들 간의 공조라는 점에서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작품 속 설정일 뿐이라고 넘기기에는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접하는 장면이며,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전개 역시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다.
잔인하게도 안무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데트에게 시련을 한 가지 더 부여한다. 회식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직원들과 달리 지그프리트는 홀로 남아 오데트를 위로하지만 이 위로는 몹시 허망하고 짧다. 다음 날 아버지를 따라 회사에 나타난 오딜은 직원들 중 지그프리트를 선택해 유혹하고, 지그프리트는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 마지막 희망까지 잃고 고립된 오데트는 자신에게 비상구(exit)는 어디 있냐며 절규한다.
절제된 서사와 미니멀한 움직임
홍성욱은 드라마틱한 서사보다 미니멀한 움직임 위주의 컨템포러리발레 창작을 해온 안무가로, 이 작품에서도 개인의 서사를 최소화하고 장면들을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백조의 호수> 속 인물들에게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서사를 주는 것이 아닌 회사라는 구조 안에 인물들을 재배치하는 데에서 멈췄는데, 이렇듯 건조한 접근은 다른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차단한 채 오데트가 겪는 부조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법을 잃은 대신 자본이라는 권력을 얻은 로트바르트는 원작에 비해 매우 경박하고 비열하게 그려지는데, 이는 인간을 백조로 바꾸는 마법을 부려 자신의 위력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그가 가진 자본은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내는 권력이다. 직원들이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인사피라미드 맨 하단에 위치한 오데트를 괴롭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작동한다.
오딜 역시 원작에서처럼 지그프리트를 유혹하기 위해 고난도 32회전 푸에테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그는 회사 내에서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지만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지그프리트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원작에서와 달리 왕자가 아닌 지그프리트에게는 기회가 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오딜을 선택한 지그프리트는 오데트를 찾아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의 선택은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해서가 아니라 오딜이 오데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갈등 국면에서 주인공과 대립각을 이루는 인물에게 납득할 만한 사연을 부여하는 것은 서사를 다루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장치이나, 안무가는 오데트 외의 인물들에게 심리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주지 않고 내면을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오데트의 고통과 절망을 뚜렷이 각인시킨다. 서사의 절제로 만들어진 평면적인 인물들이 작품에 집중력을 부여한 셈이다.
극을 이끄는 감정과 서사가 모두 오데트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보니 주인공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무용수는 역시 주인공 오데트 역의 윤해지다. 초연과 재연 무대에서 오데트를 맡았던 김찬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오데트로 발탁된 그는 안무와 연기 모두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세를 확인시켰다.
별다른 세트 없이 책상과 의자를 활용하며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 군무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군무진에 중점을 두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홍성욱 특유의 안무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솔리스트 층이 두텁지 않다는 발레단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안무 전략이기도 하다. 안무가의 스타일과 발레단의 전략이 잘 맞물린 결과물이라 하겠다. 세 번째 공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남성 무용수들이 늘어났다는 점인데(총 8명), 만성적인 남성 무용수 기근을 겪는 민간발레단으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다. 덕분에 남성 무용수들로만 구성된 군무의 짜임새가 더해졌고, 이들이 군무진으로 함께하는 경험이 누적됨에 따라 안무도 더욱 발전적으로 변화할 가능성 또한 갖게 되었다.
무용, 시대를 비추는 거울
<라스트 엑시트>가 초연된 지 6년,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꾸준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일자리의 비정규직화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가속되어온 문제이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집중된 대면 서비스업종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피해가 한층 가중되었는데,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3월부터 3차 대유행이 있었던 11월까지 직장을 잃은 20대 여성은 4명 중 1명으로 나타나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러한 조사 결과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여성들의 자살률 또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도 동기 대비 43% 급증했고, 1월부터 8월까지 자살 시도자 가운데 20대 여성이 32.1%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통계청).
연극 현장에서는 <햄릿> 속 대사를 빌어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의 암담함 속에서 다시 무대에 올려진 <라스트 엑시트>는 안무가의 의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시대의 청년여성 노동자들이 더욱 감정이입하며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언제나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던 청년여성들의 노동문제가 공연이 올려지던 무대에서만큼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라스트 엑시트>는 이러한 청년여성들의 노동문제를 고발하는 동시에 무대에 올라간 무용수들 대부분이 작품 속 오데트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당사자성을 획득하고 있다. 국내 발레단의 경우 국공립단체인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 민간의 유니버설발레단 정도가 단원들의 정규직화가 가능할 뿐 그 외의 단체에서 무용수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고용 안정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장성이 생명인 공연계가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 역시 앞서 언급한 대면 서비스업종의 피해와 무관하지 않다.
무용수들 대다수가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장르적 배경과 그들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사회‧경제적 환경, 여기에 현장성을 침탈한 코로나 피해까지, <라스트 엑시트>의 무대는 창작자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시대와 공명하며 연극이 시대를 비추듯이, 무용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와이즈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