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4번의 변화를 거쳐온 발레블랑이 창단 40주년을 맞아 의미있는 공연(4월 10~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마련했다. 발레블랑은 1980년 창단된 이화여자대학교 발레전공 동문단체로 故홍정희 선생님을 시작으로 현재의 위치에 정착했다. 1981년 <역류>로 창단 공연을 갖은 본 단체의 40년 역사는 한국 발레의 전성기를 살펴볼 수 있는 시발점으로, 현재 20대부터 60대까지 선도적인 무용가들을 아우르고 있다. 발레블랑의 블랑(Blanc)은 불어로 ‘희다’라는 뜻이다. 백색발레를 표방하며 아카데미즘을 추구해 온 단체는 학술과 공연을 병행하며 한국 발레계를 주도해왔으며 다양한 공연을 통해 고전발레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작업들도 시도했다. 특히 꾸준히 정기적인 연습시간을 현재까지 이끌어오면서 선후배간의 끈끈한 인연으로 서로의 작업에 힘이 되어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은 역사와 전통을 활용해 기존 창작품들과 활발히 작업을 하고 있는 단원들의 신작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발레블랑을 창립한 故홍정희 선생님의 추모공연 작품 중 하나인 〈인연 中 Blue〉, 故홍정희 선생님의 작품을 재안무한 〈아가 Song of Songs〉, 발레블랑의 맥을 이어온 선후배들의 무대 위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무대 구성을 시도한 신작 〈제2막-여자〉까지 총 세 작품으로 오롯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궤적을 담았다. 현재 추진위원장을 맡은 조윤라교수와 연출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이고은 회장의 힘이 더해져 기념행사의 깊이를 더했다.
<인연 中 Blue>는 조윤라 교수의 2008년 초연작으로, 파스텔톤 의상의 9명의 군무진들이 로맨틱 튀튀 스타일의 의상에 클레식 발레 선율, 고전적 움직임으로 발레 본연의 신체와 라인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서정성이 강조된 스타일로, 바흐의 음악에 무용수들의 고른 기량과 깔끔한 움직임이 부각되었고, 마지막 무대에 놓인 토슈즈가 상징성을 지녔다. 토슈즈를 통해 무용과의 인연을 투영시킨 것이다.
<아가>는 고 홍정희 선생님의 작품을 재구성한 것으로, 한국 음악에 선녀옷 입은 무용수가 홍정희 선생님의 옛 모습을 담아 발레와 한국무용 움직임을 조화롭게 조합해 한국적 정서로 소화하며 아름답게 표현했다. 휘날리는 소매자락과 선율에 맞춘 움직임이 한국적 발레를 추구했던 고인의 방향성을 잘 드러냈다. 특별한 테크닉의 사용보다는 한국적 이미지를 담는데 주력했고, 이 작품이 끝나고서는 발레블랑과 홍정희 선생님에 관한 영상으로 그 의미를 되새겼다.
2막은 <여자>라는 작품으로, 실루엣만 보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눈길을 끌다가 밝아진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하체보다는 상체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초반부 분위기와 이후 숲속 영상에 파도소리, 작은 불빛을 손에 든 무용수의 솔로를 기점으로 군무진들이 부드럽고 유연한 상체움직임과 여성미를 물씬 풍기는 움직임으로 추상적이나 정서를 전달하는데 충분한 움직임을 보였다. 맑고 청명한 음악처럼 그들의 미소와 움직임도 분홍빛(살구빛) 의상처럼 화사했다. 사각 아크릴 박스(처음에는 의자로 사용했던)를 사용해 다양한 연출을 했다. Life is ~ 라는 영상이 띄고 이들 군무 끝나고 바로 한 여성무용수 등장해 토슈즈를 신지 않은채 여유로운 몸짓을 보였다. 앞 작품들에 비해 현대적 움직임이 많이 가미되었다. 다소 강렬한 음악에 그림자 실루엣 사용과 군무, 솔로, 듀엣 등 다양한 조합으로 버라이어티 했다. 색색깔 4인무도 있고, 각자의 탑조명 큰 원현으로 받은 무용수들의 각자의 움직임들이 돋보인 무대였다. 이후 초반부 상수쪽 사각 박스의 무용수들과 솔로가 어우러지며 여성의 감성을 풍부하게 담아내면서도 노련미를 보여주었다. 그녀 퇴장 후 Dot-Line-Light라는 글씨가 영상 자막에 뜨며 아까의 아크릴 박스가 들어오고, 반복적인 음악에 붉은색의 굵은 털뭉치를 사용해 시각적 자극을 주며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현대적 감각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 연출의 노력이 돋보였고, 남성무용수의 출연과 더불어 기존 발레블랑 작품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상수 듀엣과 하수 붉은 털뭉치에 불빛 넣고 이를 사용하는 무용수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고, 붉은색 조명 속에서 하수에 세워진 아크릴 박스에 불이 들어오고 이를 포함해 붉은 털뭉치를 오브제로 사용해 새로운 시도를 한 점이 돋보였다. 이후 Call me ‘ZE’! 라는 문구와 함께 타악기의 강렬한 음악에 백드롭에서 등장한 무용수들은 남성 무용수와 5명의 여성무용수가 뒤쪽 길게 사각형으로 반짝이는 조명 앞에서 역동적인 춤을 선사했다. 무용수들의 듀엣을 통해 기량을 과시했고, 아직 현대적 움직임이 자연스럽지는 않았으나 탄탄한 기본기가 느껴졌다. 다채로운 춤어휘를 구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뚜렷했다. 무채색의 감각적인 조명을 사용해 긴박감을 고조시켰고, 클레식 선율로 바꿔가면서 남1 여2의 트리오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들이 무채색의 느낌으로 사라지고 다시 ordinary miracle이라는 글씨의 영상과 함께 앞서 불 들어오는 박스 3개와 토슈즈 신은 3명의 무용수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각자의 느낌에 충실하게 움직임을 이어갔다. 이들 춤이 끝나고 상수 살색톤의 의상으로 눕거나 앉아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는 솔로로 이어졌고, 그녀의 표현력이 좋았다. 상수에 마련된 아크릴 판에 물감을 뿌려대다가 백드롭 영상세도 물감이 번지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끝을 맺었다.
올해 유난히도 많은 단체들이 몇십 주년 기념공연을 갖는 중에도 발레 장르가 활발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발레블랑 40주년 공연은 한국 발레의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온 단체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고인이 바랐던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현재까지 고수하며 정진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미래의 성장을 도모하고, 지금까지 한국 발레계의 중요 인물들을 배출해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재양성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발레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