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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일터 삼아 펼친 현실을 담은 춤판-창작집단 달 <뭍으로 나온 처용>

무대 막을 대신해 내린 비닐 장막 위로 영상이 비친다. 출근길 바쁘게 걸어가는 노동자들의 얼굴과 발걸음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겹친다. 두 이미지 모두 끝없는 반복, 탈출할 수 없는 굴레다. 그런데 왜 비닐일까? 투명한 비닐 장막은 장막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가렸지만 온전히 가리지 못하고, 작은 충격에도 손상을 입는다. 행여 불씨라도 튀면 순식간에 화염에 녹아내리고 주변에 불을 옮기기까지 한다.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보호막은 비닐 장막과 같다. 있다고는 하지만 제구실을 못 하는 보호막, 외부 충격은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에 있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보기에만 반듯한 기만적 장치. 
지난 5월 21일 울산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있었던 창작집단 달(대표 남지원)의 <뭍으로 나온 처용>은 공업 도시 울산의 노동 현실을 암시하는 비닐 장막을 강력한 메타포(metaphor)로 제시하면서 막을 열었다. 


울산은 처용 신화를 품은 도시이자, 도시 가운데 ‘공업탑’이 있을 정도로 공업의 상징 같은 도시다. 공업의 도시이니 산업 현장 노동자 비중이 다른 도시들보다 높다. 노동에 익숙한 도시에는 자본의 논리 또한 세밀하게 작동한다. 작품은 자본을 직접 다루기보다 자본이 도구화하고 배제한 노동자 이야기에 자본의 모순을 투사하면서 처용을 내세웠다. 자본, 노동자, 처용이라는 다소 의아한 이 조합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처용설화에서 처용은 아내를 범한 역신의 잘못을 노래와 춤으로 깨닫게 한 인물이다. 처용의 인품에 감복한 역신은 처용의 이름만 들어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설화의 해석은 정해진 것이 없다. 처용설화의 해석도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뭍으로 나온 처용>에서 처용(處容)은 곳곳에 사는(處) 사람(容)이다. 처용은 공업 도시 울산 곳곳에 살고 있는 노동자이며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뭍)에 존재하는 우리 모습이다. 설화 속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 벽사진경의 고귀한 상징으로 남았다면, 현실의 처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부유하는 희생적 존재다. 두 존재의 공통점은 존재에 사회의 모순이 투영해있다는 점이다.


<뭍으로 나온 처용>은 모두 5장으로 짜였다. 출근과 일상(1, 2장)에서 일상적 일과 존재에 자부심을 가진 노동자를 보여주고, 계급의 반란과 부품들(3, 4장)에서 자본 논리의 횡포와 노동자를 도구화 부품화하는 비인간적 상황에 대한 자각, 그리고 5장은 소외노동(alienated labour)을 깨닫는 내용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도입부 영상이 사라지면 크고 둥근 비닐에 갇힌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연기 속에 누워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둥근 비닐 속 인물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일터에서 사라진 동료이고, 그들을 찾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자가 갈구하는 자존과 벗어나고 싶은 자본의 굴레이기도 하다. 연기는 산업화가 만든 스모그이며 절대 맑아지지 않을 현실이라 손전등 하나로는 밝힐 수 없다. 노동은 삶의 필수조건이며 그런 노동을 도구화한 자본의 무한한 욕망이 노동자의 앞길을 뿌옇게 흐린다. 



작품은 노동자와 노동의 건강성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진수는 북춤의 명인답게 플라스틱 물통을 북 삼아 신명 나게 춤춘다. 밀양 북춤은 원래 일(노동) 춤이다. 힘겨운 세 벌 논매기를 끝낸 칠월 백중날을 전후해 머슴들이 풍년을 비는 뜻으로 농신에게 고사를 지낸 다음 호미씻기를 할 때 놀았던 춤이다. 산업화 이후 이런 일 춤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일이라는 맥락이 탈락하고 춤만 남았다. 우진수의 물통 춤은 민속춤이 잃었던 일 춤의 맥락을 다시 찾아 보여주었다.
낮게 내려와 있던 바통을 올리고, 뒷막이 올라가면서 노동 현장과 춤판이 얽힌 이중 공간이 전개된다. 춤을 추는 다른 편에서 안전모를 쓴 출연자가 기계를 설치하고 있다. 어차피 일과 춤이 삶의 판에서 일어나는 일상이지 않은가. 움직임은 노동자의 일상을 상징하듯 건조하며 반복적이고, 노동 현장의 소음을 닮은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지속한다. 일상적 노동을 버티는 힘은 내 노동이 의미 있고, 내 역할이 중요하며 그것의 대가로 나와 가족이 산다는 자부심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노동의 신성함은 사라지고 노동은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노동자는 자본끼리 경쟁하는 거대한 장기판에 힘없는 하나의 졸이며, 끝없이 자기 환원하는 자본은 한 인간의 노동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가차 없이 폐기하고 대체한다. 이 작품에서 무대에 드러나는 것은 노동자이자 춤꾼에 투사한 자본의 모순이다. 자본은 현실처럼 깊숙이 숨어서 노동자의 몸에 작동한다. 



  
<뭍으로 나온 처용>은 담백한 구성, 적절한 상징의 사용으로 주제를 뚜렷하게 전달한다. 전통춤 사위와 노동을 응용한 몸짓, 에어리얼 기법으로 심상을 표현하거나 마지막 다짐을 담아내는 연출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처한 현실 모순에 대한 어설픈 화해나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의 춤과 노동자의 현실을 나타내고 모순을 자각하는 의미의 군무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연자의 수가 적어 군무가 보여주어야 할 강렬함이나 구성 변화가 주는 역동성이 모자랐다. 인원을 보강해 군무의 다양한 양상과 힘을 보여주었다면 더 입체적으로 주제를 표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2019년 창작집단 달 정기공연으로 초연했었다. 초연 당시 관객 호응이 뜨거웠고, 단체도 이 작품에 애정이 깊어 이번에 재공연했다. 처용을 내세웠기에 작품이 담은 이야기가 마치 울산에 국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예술가도 비물질 노동을 하는 노동자이며, 울산 노동자의 현실은 바로 이 땅의 노동 현실이다. <뭍으로 나온 처용>은 무대를 일터 삼아 펼친 현실을 담은 춤판이며 삶의 춤이다. 사변적 주제가 넘쳐나는 작품들 가운데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 춤의 사회적 가치를 보여 주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는 것처럼 말이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창작집단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