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대표적 주제로 실존에 관한 문제와 현실을 탈피하여 초현실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철학이 풍미하고,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물결을 거치며 사회 전반에 내재화되었고, 현실과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 그리고 이에 따른 과학적 사고가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수용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의 본질적 사고와 동시대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현대무용에서 중요한 제재가 되었고 다양한 관점에 따라 구현되었다.
신유진 안무, 신유진 세라비(C’est La Vie) 프로젝트의
작품의 시작은 풍경소리로 시작하며 정제적이면서도 단순함을 그려 보이지만 오브제인 사다리의 등장으로 반복성과 일상성을 나타난다. 이는 같은 리듬 속 무용수들의 영속적인 행위가 공간 형성의 확장을 보이다가 다른 오브제인 의자의 등장을 통해 공간에 대한 갈등적 양상을 상정한다. 그래서 강한 음악의 변동 속에서 수직적 상승 구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수평적 움직임을 보이며 일상적 상황을 구현하고 있다.
이어 비닐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행위는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적 인식 세계의 발현을 그린다. 무음악 속에 진행된 실루엣의 움직임은 미시적 유동성을 발견할 수 있고,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는 감각적 인식을 전해준다. 이와 함께 다시 사다리가 등장하지만 앞서와 다르게 대립적 양상이 아닌 상관적 관계를 나타내며 몽환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시 사회적 양상을 구현한다. 이는 사다리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자 한사람에 의지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거나 목마를 타고 모습에서 무용수들의 묘사에서도 인식된다. 이러한 상황은 2인무에서 낭만적 분위기가 그려지면서 갈등의 조성과 해소를 위한 토대를 만들고 있다.
종국에는 뭉치 속에 담긴 분홍빛 비닐 조각이 흩뿌려지고,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놀이적 행위를 통해 연출된다. 여기서는 현실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경계 없음을 상정하면서 이는 현실과 다른 초월적 공간임을 그린다. 이러한 공간의 확장은 상징적 상상이면서 발이 딛고 있는 현실적 공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표상임을 나타내려 한다.
이 작품은 안무자가 표현하고자 한 개성적 사유와 동시대 의식이 그대로 담겨진다. 이는 직관을 넘어서는 과학철학적 세계관을 담은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토대와 이를 해석하여 형이상학적 해석에 담아 이를 여러 담론으로 추출한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어려운 담론에 대한 해석을 예술적 추상성에만 얽매이지 않고, 지각적 운동의 자율적 움직임으로 응축시켰다는 점에서 이상적 무대구현의 모습을 보였다. 안무자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표점으로 기억하면서 열린 공간을 위한 모멘텀으로 이 작품은 점진적인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었을 듯하다.
글_ 김호연(무용평론가)
사진제공_신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