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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적 수사(修辭), 자기도취적 태도(attitude) - 부산시립무용단 제83회 정기공연 <춤 본색>

 

지난 5월 27, 28일 부산시립무용단 제83회 정기공연 <춤 본색>이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부산시립무용단(이하 ‘시립무용단’) 정기공연에 부산 무용계가 쏟는 관심은 매우 크다. 부산 무용계의 인력, 자본, 시스템이 집약된 단체라는 면에서 그렇고, 이번 공연에서 시립무용단 춤 브랜화의 시작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모두 2부로 구성했는데, 1부는 ‘舞樂 고요의 시간’으로 ‘이정윤 안무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 호흡, 접지, 곡선, 명상 등의 춤 기법을 통해 내면의 근원에 집중하는 민속성 강한’ 6개 소품으로 구성했다. 2부는 ‘舞歌 용호상박’으로 국수호가 안무해 2014년 초연한 <용호상박>을 재구성했다. 

 


1부에 올린 ‘민속성 강한’ 여섯 개의 소품은 ‘구름과 안개의 속성처럼 예측 불가능한 관계, 자유적 움직임, 인간의 본성과 실체’를 표현했다는 <운무Ⅰ, Ⅱ>, 배정혜의 ‘꽃 춤’을 재구성한 <춘설>, ‘여인의 고혹미를 부각한’ <고혹>, ‘시간의 연속성을 인간의 삶에 비유한’ <정취, 내 삶에 듦>, ‘정갈하며 품격 있는 한국 춤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파사, 바람 지동 치듯>이다. 1920년대 한성준이 당시 산재한 민속춤, 궁중무, 무속 춤 등을 무대화하면서 정리한 이후 전통춤은 각각의 고유 맥락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민속춤은 대부분 24절기에 따라 농사를 진행하는 틈에 쉬어가는 의미로 놀이와 함께 춘 춤이라 삶과 밀접하다. 그러니 춤에서 말하는 ‘민속성’은 ‘삶의 맥락에 놓인 춤이 가진 성격’ 정도 될 것이다. 무대화한 춤에서 과연 이런 ‘민속성’을 살리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여인’과 ‘고혹’을 연결하고, ‘품격’, ‘인간의 본성과 실체’, ‘시간의 연속성’ 등 사변적 주제를 다룬 감성과 장면들에서 어디서인가 보고 느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예술에서 ‘창작’은 유일한 것을 생산하는 행위의 틀을 벗어나 ‘개념’이 되었다. ‘개념’은 그것을 규정하는 정의가 있지만, 독자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하나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다른 ‘개념’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춤 본색>이 창작을 위해 일부 다른 창작에 의지한 것도 창작의 한 방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시립무용단의 춤을 브랜드화하는 시작으로 적절했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시립무용단의 브랜드로 내세울 작품이라면 온전히 시립무용단의 역사와 역량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어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 브랜드 시리즈 1호로 내세운 <용호상박>은 2014년 국수호의 <춤의 귀환>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당시 이정윤과 국수호가 출연해 호평받았던 <용호상박>을 재구성했다. 원작에서 남성 2인무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춤 본색>에서는 여기에 군무를 더해 작품 길이를 2배가량 늘였다. 이를 위해 적벽강에서 백만 대군이 몰살하는 부분까지 담으면서, 마지막에 여인(어머니, 부인, 딸)이 등장해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의 담백함은 감소하고 혼란과 신파적 감성이 드러났다. 이정윤 안무자는 이런 배경의 작품을 시립무용단 춤 브랜드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내놓았다.  

 

 

김익두는 판소리를 ‘지고의 신체 전략’이라고 했다.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판소리꾼의 너름새를 두고 한 표현이다. 2014년 <용호상박> 초연에서 두 춤꾼은 보이지 않는 소리꾼의 너름새를 춤으로 승화해 소리와 움직임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반면 이번 공연은 6명의 소리꾼이 동시에 경쟁하듯 소리를 내질렀고, 원작에서 소리와 조화를 이루었던 2인무는 우렁찬 소리에 묻혀버렸다. 애초 화음을 쌓는 개념이 없는 판소리를 6명이 부르게 한 의도가 소리로 감성적 스펙터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작품에 역동성은 주었지만, 동시에 혼돈에 빠지게 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원작의 맛과 가치를 얼마나 살렸는지 모를 기성 작품을 굳이 시립무용단의 춤 브랜드 작품으로 내세운 의도가 궁금하다. 전국 최초의 시립무용단으로 시작해 48년 역사를 가진, 부산을 대표하는 무용단이 내세울 작품이 필요하다면 작품성, 대중성, 지역성에 단체 고유의 색까지 조화로운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백 보 양보해서 <용호상박>이 시립무용단 브랜드 공연으로 인정받고, 앞으로 10년을 간다고 가정한다면, 타깃(target) 관객층을 설정해야 했다. 공연 관람 경험이 다른 연령층보다 많고, <용호상박>의 모티브인 적벽대전을 이미 영화나 게임, 드라마, 만화로 접했을 연령대를 고려해야 하는데, 아마 30대나 40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매체에서 줄 수 없는 재미와 맛을 느끼게 한다면, 작품의 입지를 굳힐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양한 매체를 경험한 그 연령대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어떤 것인가이다. 그런데 <춤 본색>이 내세운 ‘한국 춤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한국의 미에 감동할 기회’를 준다고 한 것은 타깃 관객층을 설정했다 하더라도 관객의 흥미를 끌 요소가 되었을지 의문이다. 많은 한국 춤 공연에서 비슷한 주장을 내세우다 보니 ‘한국 춤 본연의 아름다움’은 원래 의미와 상관없는 하나의 관용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추상적이고 자기도취적인 태도(attitude)로는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만약, 한국 춤 전체를 관통하는 ‘본연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라 ‘한국 춤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말고는 감상자의 몫이어야 한다. 창작자가 관객에게 기회를 준다는 식의 시혜를 주는 듯한 태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춤 본색>은 시립무용단 고유의 작품으로 내세울 명분이 약하고, 관객을 설득할 만한 요소를 갖추는데도 미흡했다. 또한 <춤 본색>은 한국 춤에서 일종의 이데아인 ‘본연의 아름다움’에 기대고 있다. 한국 춤이 사변적 주제에 매달리고, 정념(情念)이나 정한(情恨)에 쉽게 머무는 것은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 춤의 현실적 맥락을 모른 체하고, 자신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회화로 ‘본질’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더니즘 회화의 기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 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춤을 관통하는 ‘본연의 것’이 있다고 믿고, 기필코 찾고 싶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미련부터 버려야 한다. ‘아름다움’이 춤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춤만이 가진 ‘본연’의 것도 아니며, 우리 춤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아름다움에만 가둘 수는 없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부산시립예술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