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공연 현장에서 가장 기민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는 단체다.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는 상황 속에서도 지난해에는 신작 <비욘드 블랙>을 공연이 아닌 댄스필름 형식으로 온라인 상영회를 진행해 관객들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놓지 않았고, 올해는 온라인 상영관 ‘댄스 온 에어’를 오픈해 컨템포러리 작품을 영상으로 상영하며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재가 된 공연 영상화 시대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 컨템포러리무용을 선두에서 견인해가는 단체로서 국립현대무용단이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코로나라는 외부에서 온 재앙은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안겨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두 겹의 편견은 매우 강고하다. 하기 싫은 일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감내하며 그 대가로 돈을 버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았으니 돈을 벌지 못해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그 하나요, 예술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부 계층에서만 즐기는 고급 오락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산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기에 대중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시각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본의 아니게 이 같은 편견이 감추고 있던 예술가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현장 예술인 공연이 멈추게 됨으로써 예술가들의 삶이 함께 멈추고 나서야 예술이 열정을 동력으로 하는 값비싼 여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삶을 꾸려갈 수 있게 해주는 생계활동임이 확인되었고, 신작 생산 중심으로 운영되던 지원금 체제는 예술가의 생활고에 주목해 생계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은 지난해 준비한 기획공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코로나의 가파른 확산세로 인해 취소 결정이 내려진 뒤 이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던 세 명의 안무가가 그 후 일 년 동안의 고민과 사유를 작품에 담아 새롭게 무대에 올린 것이다. 그 가운데 권령은은 무용인의 ‘현재’와 ‘이곳’을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는 안무가답게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를 통해 코로나가 드러낸 예술가들의 취약한 현실과 생존 전략을 이야기한다.
‘귀여움’은 예술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
공연은 무대 뒤편 빈 공간에 영사되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무용인의 생존과 존속을 위해 설립된 국제전문기구인 ‘무용생존연구회(Dance Survival Research Association, 이하 ‘드스라’)’에서 화가 앙리 마티스의 작품
귀여움 계책은 총 스무 가지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령은은 이 가운데 다섯 가지 전략을 사용해 무용인의 생존을 위한 의례를 전개해나간다. 첫 번째 의례는 고양이의 몸짓과 행동을 가리키는 묘신행동계(貓身行動計), 두 번째는 안짱걸음을 가리키는 내족지보계(內足㢟步計), 세 번째는 어감이 밝고 산뜻한 모음을 가리키는 양성모음계(陽性母音計), 네 번째는 몹시 방울이 굵은 눈물을 가리키는 계분루계(鷄糞淚計), 다섯 번째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작고 둥글고 서툰 것을 가리키는 소원졸계(小圓掘計)이다. 제목을 굳이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라고 표기한 것 역시 이 같은 귀여움 계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외에도 귀여움 계책에는 어린 새끼의 연약함을 가리키는 영양연계(嬰羜軟計), 작은 손과 발을 가리키는 소수족계(小手足計), 안짱걸음을 가리키는 내족지보계(內足㢟步計), 혀 짧은 소리를 가리키는 귀싱꿍꼬또계(鬼梦計), 무언가 능숙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불능숙시계(不能熟時計), 윙크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목속현계(目速䀏計) 등이 포함된다.
무용수들은 이러한 계책에 따라 고양이 흉내를 내고, 안짱걸음으로 걷고, 윙크를 하거나 애교를 부리는 등 최선을 다해 귀여움을 연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여움은 무용수들이 연기에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 되어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과장이 동반된 꾸며낸 연기이며 이렇게 연기를 하는 이면에는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귀여움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 대표적인 집단은 아기들로,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정신과와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개발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트렌드 인 코그너티브 사이언스>를 통해 아기들의 외모와 피부 감촉, 목소리 등의 특질이 인간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기의 사진을 볼 때 인간은 행복감과 보호 본능 등을 관장하는 부위인 측위신경핵과 배쪽창백핵이 자극을 받으며, 아기의 목소리를 듣거나 아기를 직접 만져보게 되면 양육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된다. 즉, 아기의 귀여운 특징은 성인의 보호 본능을 자극해 생존을 도모하는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쇼비즈니스 세계인 대중예술에서는 권령은이 제시한 ‘귀여움 계책’이 예술가의 생존 전략으로, 또한 상품화 수단으로 이미 상용화된 지 오래다. 2013년 걸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강지영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애교를 보여달라는 진행자들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아이돌로서 프로답지 못했다는 태도 논란으로 비난의 중심에 섰고, 지난해 걸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승희는 ‘제시의 쇼!터뷰’에 출연해 방송에서 애교를 보여주고 나면 ‘현타’가 온다고 솔직한 속내를 고백한 바 있다.
권령은의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생존 위기에 처한 예술가들, 특히 현장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연예술인들이 공연장 문이 닫히고 생업이 중단되는 위기 속에서 무엇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귀여움 계책’은 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예술가가 예술에 종사하는 동료 시민이 아닌, 구호가 필요한 난민으로 위상이 바뀌었을 때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다. 귀여움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려는 예술가들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전략이 성공했을 때에도 예술가는 동료 시민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농담처럼 가볍게 전개된 권령은의 무대가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