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고 편안한 의상, 안정된 색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단선의 음악으로 관객에게 서정적 여운을 남긴 <드러밍>(5월 9~10일)은 춤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천착한 안무가의 치열한 실험의 일환이다. 무용수들은 마치 리듬 체조 선수들이 차례를 기다리듯 가볍게 몸을 풀다가 음악과 함께 각자의 역할에 돌입한다. 작품이라기보다는 훈련과정을 보는 듯하지만 고난도의 기교와 기술을 배제한 단순한 동작들이 음악과 융합되어 뜻밖에도 관객에게 편안한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이하 안느 테레사)의 실험이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동작으로 예술과 일상을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제된 움직임과 동작의 반복으로 기교를 최소화하여 춤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움직임들이 춤과 결합한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그녀의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의 미니멀리즘을 무용에서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큰 동작 보다는 최소한의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지속해서 발산하다가 빠른 속도로 힘을 응집시켜 뿜어내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치밀한 설계로 도안된 프레이즈가 춤의 바탕이 된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구조에 따라 힘과 속도를 조절하여 최종 목적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숫자와 도형뿐 아니라 물리학의 원리가 작용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안느 테레사의 작품이 음악과의 결합이라는 것에 특별히 주목하는데 이것이 신체의 움직임으로 구축되면서 음악의 시간성이 공간과 결합하여 청각이 시각화되고 시각이 청각화 되는 공감각적 무대를 구현한다. 이러한 시도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개로 그녀가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최근에 자신의 춤을 전시공간으로 가져가 시간을 확장하며 새로운 지각 영역으로 옮겨 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물성을 초월하려는 도전도 감행하고 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지각방식으로 춤을 느껴보게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그렇게 함으로써 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춤인지 연극인지 모를 공연을 시도하기도 했고, 특히 다양한 음악으로 악보를 그리는 무용수의 신체를 탐색해 왔다. 이러한 그녀의 실험은 그 본질이 춤에 있고 춤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이기에 값지게 평가된다.
그러나 춤의 최소화는 무용의 무대에서 그리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무대 위에 드러나는 단순한 동작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대의 힘을 쏟아낸다. 이러한 시도는 미니멀리즘의 모순을 또다시 느끼게 하는데, 안느 테레사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모순 속에서 탄생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실험을 되짚어 본 이번 무대는 현대 무용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의 실험이 오늘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새로운 실험과 변화다. 지나간 무용사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녀의 최근 작품을 소개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료타르 슈라이어는 1916년 무대 위의 예술품은 “텍스트가 재현되는 것도, 배우가 창조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의 관계들을 배열해 놓은 것도 아닌 본능에 의해 감지되고 집중 속에서 성숙하여 유기체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안느 테레사는 본능에 의해 감지된 것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필터를 꼭 통과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구조에 기대며 감성까지도 논리와 수치로 정리하려는 그녀의 시도들은 미디어 없는 미디어 작업이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모다페 2015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