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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지금’, ‘이곳’, ‘여성’, 폭력의 피해자에서 싸우는 전사로 - 오후의 예술공방 <아직 가 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단단한 고요> ⓒ혜영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의 발화점이 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해시태그 운동을 통한 페미니스트 선언이나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메갈리아 사이트의 등장 등 페미니즘이 대중운동으로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여러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었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중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일깨우며 여성 대중을 페미니스트로 각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2016년 시작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고발 운동에 이어 2018년 재점화된 미투 운동을 몸으로 관통하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성폭력 고발과 법정다툼 속에서 그동안 치중해온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예술노동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예술작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방언처럼 터져나온 이 말하기는 예술에서 신화를 걷어내고 예술가를 시민으로 호명하며 예술과 예술가를 천계에서 현실로 돌려보내는 데 일조했다. 예술가들은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창작 과정에서 예술가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응답으로 이동했고 이는 어떻게 안전한 창작 환경을 만들 것인가라는 새로운 토론을 낳았다. 

 

<단단한 고요> ⓒ혜영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오후의 예술공방 주최로 올려진 <아직 가 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은 이 같은 미투 운동의 거센 조류 속에 성평등의 전환기를 맞은 무용가들이 시민으로 각성하고 나서 선보이는 첫 번째 무대라 할 수 있다. 예술계 성폭력 고발과 이 무대 사이, 무용계에서는 이러한 ‘각성’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현대무용가 류 모 씨의 위력에 의한 제자 강제추행 사건이 법정에서 다뤄졌는데, 공연의 제작진이 이 사건의 연대인이라는 점에서 무대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공연은 무용가들의 힘겨운 각성 못지않게 지난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은 공연의 가장 큰 위기였다. 3·8 여성의 날 헌정으로 기획되었던 지난해 초연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9월로 연기되었고, 그마저도 방역 단계 격상으로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된 후 비공개 쇼케이스 형식으로 진행된 공연에 소수의 관계자들만 참석한 채 올려졌다. 강화된 공연장 방역 기준에 맞춰 진행된 올해 공연 역시 소수의 관객들과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로 올려진 공연은 작품 안팎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풍성해진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해 초연작이었던 <단단한 고요>와 <전사의 땅>이 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다시 올려졌고, 지난해 페미니즘연극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던 마임극 <계절을 잃은 숲>이 프로그램에 포함되며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을 연결했다.


가사노동,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서경선 안무의 솔로 무대 <단단한 고요>는 여성들의 노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저평가되는 가사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무용의 발전에 여성 무용가들의 기여가 크고 그들이 동시대를 반영하고 동시대인과 공명하는 작품 생산에 주력해왔다곤 하나 가사노동은 창작에서도 소외되는 주제였다. 드물게나마 <빨래>(남정호 안무)나 <로미오와 줄리엣>(미나유 안무) 등의 작품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조명한 적이 있긴 하나 가사노동을 통해 다른 이야기, 여성 간 연대(빨래)나 관계의 지리멸렬함(로미오와 줄리엣)을 말하기 위한 소재주의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단단한 고요>에서 서경선은 어쩌면 가장 ‘예술적’이지 않은 소재라 할 가사노동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관객들은 객석에 입장하기 전, 출입구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그릇을 가지고 들어갈 것을 요구받는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진열된 접시나 컵 등은 작품의 주제인 가사노동을 상징하는 설치미술처럼 보이지만 관객들의 행위는 앞으로 서경선이 무대에서 수행할 가사노동의 장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서경선이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 온 것이지만 동시에 (본의는 아니었지만) 객석에 입장함으로써 그에게 가사노동의 부담을 지운다. 무대 위의 서경선은 퍼포머이자 가사노동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방에서 행해지는 조리 과정에 집중했던 초연과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아이를 목욕시키는 과정을 내레이션으로 넣어 가사노동을 육아로까지 확대했다. 독박육아라는 표현이 돌봄노동의 성별 분업화를 가리키는 상징어처럼 사용되고 여성 무용가들의 경력 단절이나 이른 은퇴 역시 육아로 인한 경우가 많지만 육아 역시 창작에서는 소외되어 온, ‘예술적’이지 않은 주제다. 


이처럼 전혀 예술적이지 않은 주제를 무대 위에 펼쳐내는 서경선의 퍼포밍은 제목처럼 단단하고 고요하다. 무대에는 흔히 여성서사를 표방하는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의 억압과 해방, 대물림 혹은 연대 같은 메시지도 없다. 그저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조리하고, 조리가 끝난 주방을 치우는 한 명의 여성이 있을 뿐이다. 그릇을 무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쉼 없이 옮기는 서경선의 표정은 매우 지치고 고단해 보이는데, 우리는 그의 노동이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이 노동이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단조롭게 반복되는 움직임이 객석에 전달하는 울림은 감동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다.

 

초연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결말이다. 초연에서 밥상을 차려내는 노동 중간에 불쑥 객석을 향해 말을 걸며 무대 위의 퍼포먼스가 무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는 것임을 주지시켰던 서경선은 재연에서 밥상을 내려놓고 다리를 길게 뻗어 밥상 위를 건너가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짓는다. 끝나지 않는 노동에 결연한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은 마침내 인형의 집에서 나온 노라처럼 보인다. 주방을 나선 그는 어디로 갈까. 중요한 것은 그가 반복되는 노동의 쳇바퀴를 중단하고 스스로 주방에서 걸어나왔다는 사실이다.


<전사의 땅>

 

폭력의 대지 위에서 피해자가 아닌 전사로

 

<단단한 고요>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정 내 노동에 갇힌 여성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었다면 천샘 안무의 <전사의 땅>은 이제야 말하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눈앞에 들이댄다. 


폭력은 현대무용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이긴 하나 안무가들이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이나 본연의 잔혹성, 혹은 폭력을 야기시키는 구조의 피해자로서의 인간을 조명하는 방향을 선호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 작품의 방향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을 피해자로 호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구조가 감춰온 가해자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며, 이 같은 접근은 여성의 주체성을 지우고 여성을 피해자로 주저앉힌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쉽다. 


그동안 여성 안무가들이 여성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면서도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저는 페미니즘은 잘 모르지만’ 등과 같은 겸양의 태도를 취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거나, 아니면 ‘이것은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 ‘굳이 성별에 얽매이지 말고 인간의 이야기로 봐달라’처럼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를 꺼려하며 선을 긋는 입장을 보여온 것 역시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2016년 혐오에서 초래되는 폭력의 문제를 다룬 오후의 예술공방 기획공연 ‘움직임X파일: 폭력소환장’에서 <지표동물>을 선보였던 천샘은 <전사의 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의 양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공연은 천샘, 김하람, 권이은정 세 무용수가 브래지어라는 여성의 기호를 착용하고 등장해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며 여성의 태도를 수행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여성됨’은 이들이 폭력을 당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공연 초반 영상에 등장하는 ‘모든 곳이 강남역이었다’라는 문구나, 작품 내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는 불법촬영, 악플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 연예인의 비극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너무 직설적으로 연출되어 당혹감을 줄 정도다. 이 같은 직설화법을 상쇄하려는 듯 무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현실의 성폭력 사건들과 인터넷에서 발화되는 여성혐오의 언설들 사이에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의 장면들을 교차 편집하거나 무대 위 불법촬영의 피해자를 귀여운 인형으로 상정한다거나 하는 등의 유머러스한 장치들을 삽입하고 있긴 하나 이 장치들은 끝내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범죄와 그러한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웃음을 이끌어내기보다 참담함에 잠기게 만든다.


공연 중반, 스크린에 자막으로 제시되는 지시어를 무용수들이 받아 수행하는 장면은 그나마 완충재 역할을 했던 반어법적 유머가 사라지고 폭력을 정공법으로 보여주는, 객석에서 느끼는 참담함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다. 무용수들이 내내 말하고 있었던 것은 이것이 현실의 이야기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이 순간에 도달한 관객들(물론 여성들이다)은 이것이 나와 우리의 이야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사의 땅> ⓒ혜영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여성에게 피해자성을 부여했으며, 이는 여성이 주체성을 가진 인간임을 선언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나에서 우리가 되는 시발점은 많은 경우 공통된 피해의 경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무용수들이 현실의 불법촬영을 재현하기 위해 객석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댈 때에야 여성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쾌감을 이해했노라고 고백한 한 남성 관객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전사의 땅>이라는 제목의 숨겨진 힘을 드러내는 것은 이 같은 폭력이 휘몰아치고 난 다음이다. 인간으로 자유롭게 춤을 추고자 했던(여기서 춤은 말이나 행동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여성(권이은정)이 언어폭력의 희생자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해녀를 연상케 하는 또 다른 여성(천샘)이 등장해 그를 쓰러트린 폭력을 정화시킨다. (인터넷에서는 설리의 사망 후 여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포털 연관검색어 정화 운동이 일어난 바 있다.)


<전사의 땅>

 

정화는 대개 한국무용에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수순이지만 천샘은 정화 이후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이륜화가 연주하는 북소리로 시작되는 마지막 파트에서 이번 재연은 공연을 이끌어온 세 무용수 외에 최김지정과 구구가 군무진으로 함께하며 여성들의 싸움에 힘을 보탠다. 최김지정은 2016년 ‘움직임X파일: 폭력소환장’에서 <치즈가루 빼고 핫소스 두 개>를 안무했고, 구구는 천샘이 진행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무용치료 워크숍 <상(上)!-여자의 착지술>에 참여한 바 있다. 이들이 가세한 무대는 여성들이 무기력한 피해자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 싸움의 주체로 여성들이 폭력에 스러져간 잔인한 땅 위에 다시금 우뚝 서는 모습으로 공연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그 치열한 싸움 끝에 ‘찬란한 벌판’에 가 닿을 수 있을까. 그 싸움은 이들만의 것이 아니며, 이들이 가 닿고자 하는 ‘찬란한 벌판’에 가는 것 역시 이들만은 아닐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오후의 예술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