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창단 이후 제36회를 맞이한 리을무용단이 9월 9~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내 딸내미들 II>로 정기공연을 가졌다. 이희자 안무의 이번 작품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으로서, 2016년 제37회 서울무용제에 참가했던 <내 딸내미들>의 연작이었다. 이희자는 리을무용단의 단장으로, 배정혜 선생의 춤정신을 이어가는 동시에 자신의 색깔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무용가이다. 내재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국춤에 기반을 두면서도 이미지의 구현에 있어서는 현대적 감각을 풍기고 있다.
<내 딸내미들 II>는 1장 이별·碑(비), 2장 파편·愛(애), 3장 분노·恨(한), 4장 상여·花(화), 5장 눈물·夢(몽), 6장 다시·生(생)으로 구성되어 드라마틱한 생을 살아온 이 땅의 여인들의 삶을 다각도로 그려냈다.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전통적 사고를 담았고, 곳곳에 담긴 은유와 상징은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데 기여했다. 기존의 35분에서 한시간으로 러닝타임을 늘리고, 주제를 제외하고는 작품의 분위기, 음악, 구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탈바꿈을 시도했다는 안무자의 말대로 이번 작품은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를 추구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오브제의 활용이 가장 도드라졌다. 풍성한 누비옷, 머리를 장식한 붉은 꽃 등은 다각도로 변형되며 장면마다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누비옷은 화려하지 않은 전통적 색감을 바탕으로 소박한 어머니를 연상시켰다. 그 누비옷에 편안하게 몸을 숨기기도 하고 포대기 속의 아기처럼 감싸기도 하며 슬픔을 이겨내는 동반자로서의 역할도 했다. 또한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에 매개체로 작용하며 옷과 붉은 꽃이 엮어 만들어낸 상여의 모습은 감각적이었다.
실제 공연에서 첫 부분, 십자가를 연상시키듯 팔을 옆으로 벌려 T자를 만들고 한 몸에서 둘로 분리되며 강한 인상을 연출한 아이디어가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다. “크라이스트 위드 미”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각인되는 음악도 도입부부터 종교적 느낌을 더하며 강렬함을 배가시켰다. 이후 누비 솜이불 같이 큰 겉옷을 걸친 군무진들은 변화된 음악에 서서히 느린 움직임으로 공간을 구성해갔다. 바닥에서 큰 누비옷으로 둘러싸인 이들은 바다거북처럼 보이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또 다른 생명체를 연상시키며 이색적이었다. 8명의 무용수들(이주영, 김정민, 최희원, 김지민, 유재성, 이자헌, 홍지영, 김채린)은 일렬 사선으로 서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같은 동작구를 반복하기도 하고, 큰 누비옷을 아기를 감싼 포대기처럼 다양하게 활용하며 움직임을 이어갔다.
무용수들은 합을 맞춰 완급을 조절하며 춤췄고, 중반부 머리에 쓴 붉디 붉은 꽃은 상여꽃이지만 마치 닭의 벼슬처럼 선명했다. 또한 옷을 겹치고 벽에 기대기도 하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이 한국무용의 춤사위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어휘와 구성으로 변형을 시도했다. 후반부 솔로에서는 그리움의 회한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시인 김소월의 시 “개여울” 가사의 음악에 맞춰 그 정서를 담아냈다. 친밀감을 더하는 가요의 사용과 소극장 무대를 꽉 채운 공간 구성, 완급을 조절하는 춤사위가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내 딸내미들 II>는 선명한 주제의식, 여기에 더해 리을무용단 무용수들의 탄탄한 기본기와 열정 그리고 춤을 대하는 진정성이 돋보였으며 오브제의 활용이나 전체적인 연출은 한단계 성장했다. 그럼에도 전작에 비해 러닝타임을 늘리다보니 압축된 느낌이 줄어들고 밀도가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내 딸래미들이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서사로 풀기보다는 상징적 이미지로 직조해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 작업이 더해진다면 차후 더 정교하고 한국춤의 미학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무대였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리을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