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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공연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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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저예산 프로덕션의 새로운 가능성 - 서울발레시어터 <로미오와 줄리엣 - 이름의 굴레>

 


 

서울발레시어터가 현대무용가 이나현의 안무로 지난 10월 30일 과천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신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렸다. 이 작품은 2019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쇼케이스 선정작으로 공연 일부를 선보였다가 올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지금예술창작지원 제작초연작으로 선정되어 전막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960~70년대에 이 작품을 안무한 존 크랑코(1962), 케네스 맥밀런(1965), 루돌프 누레예프(1977), 유리 그리고로비치(1978) 등이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무대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면 90년대부터는 안무가의 새로운 해석과 움직임으로 재탄생한 컨템포러리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앙줄랭 프렐조카주(1990), 장 크리스토프 마요(1996), 마우로 비곤제티(2006), 사샤 발츠(2007), 허용순(2007), 마츠 에크(2013), 매튜 본(2019), 크리스티앙 슈푸크(2019) 등이 선보인 작품들은 한 세대 전의 안무가들이 내놓은 고풍스러운 드라마발레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제 막 초연을 올린 서울발레시어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의 작품들과 나란히 놓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움직임 면에서는 단체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차별화된 결과물을 내놓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70여분 남짓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투입한 예산은 2500만 원 정도로, 제작진은 이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대세트를 최소화하고 장면 전환을 조명에 의존하는 등 무대를 미니멀하게 꾸미는 대신 아방가르드한 의상과 안무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2018년 서울발레시어터 기획공연 ‘Colla B’에 초청되어 〈Anonymous〉로 처음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나현은 이번에도 신선하고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속도감 있는 컨템포러리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용 무대로 옮겨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5막 3장 구성의 원작 희곡을 간소화해 3막 이내로 줄여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럼에도 원작이 희비극을 오가는 복잡한 장광설로 되어 있는 탓에 공연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나현은 줄거리를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뼈대만을 남겨두고 움직임의 유기적인 결합으로만 무대를 채우며 공연 시간을 70분으로 압축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인물 소개나 인물 간 관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작품이 매우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결말까지 함께 달려간다.

 

 



 

이러한 속도감은 작품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공연 시간을 줄이면서 줄거리를 최소한으로만 남겨놓다 보니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의 비중이 크게 축소되었는데, 소란스러운 베로나광장의 에피소드가 생략되면서 다른 버전의 동명 작품에 비해 군무진의 숫자가 적고(물론 이 군무진의 규모는 안무가의 의도보다는 서울발레시어터가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무용수 기용 폭에 의한 것이다) 원작이나 다른 버전에서도 비중이 크지 않은 로미오의 첫사랑 로잘린이나 몬태규 부부, 베로나 영주 등이 빠진 것 외에는 원작의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등장하지만 이들은 원작에서의 캐릭터성이나 내면은 모두 지워지고 관계에 대한 설정만 남아 있다. 그렇다 보니 ‘이름의 굴레’라고 새롭게 붙인 부제의 의미가 그리 선명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허약해진 드라마 속에서 두 주인공이 첫눈에 반한 대상이 원수 집안의 사람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나,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로미오의 분노나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죽음(비록 진짜 죽음은 아니었지만)을 선택하는 데 이르는 줄리엣의 불안한 심리 같은 것은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데 급급해 관객들 역시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보다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원거리에서 관조하는 입장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무대와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것은 의도치 않게도 움직임에 대한 집중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나현은 군무진의 춤이 점증적으로 쌓아 올려지며 주역과 솔리스트의 춤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총체적 방식으로 안무를 구성하고 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의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반하는 장면이나, 캐플릿 부부가 줄리엣에게 패리스와의 결혼을 강요하는 장면, 캐플릿가의 사람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죽은 채 발견된 줄리엣의 침대 곁에서 오열하는 장면 등에서 펼쳐지는 역동적인 군무는 미니멀한 무대에 입체감을 만들어주며 작품의 드라마에 긴박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는 주역과 솔리스트, 군무진의 춤이 독립된 별개의 춤으로 구성되고 그 별개의 춤은 공유 동작(public domain)의 조립을 통해 완성되는 클래식발레의 문법과는 매우 차별화된 방식으로, 이나현과 서울발레시어터는 전막 발레의 총체성을 구현하기 어려운 저예산 프로덕션에서 움직임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에 도달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 외에 남성 무용수의 전유물처럼 안무되는 칼싸움 장면에 여성 무용수들이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넣는다거나, 줄리엣의 유모가 앞치마를 두르고 후드를 쓰고 등장하는 전형적인 유모의 모습이 아닌, H라인 스커트와 블라우스에 올림머리를 하고 안경을 쓰고(이 역시 사감 선생을 연상케 하는 여성의 전형적인 외형 중 하나이긴 하나) 등장하는 등 일반적인 무용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매우 신선한 연출이었다. 이나현과 서울발레시어터가 의기투합한 이 작품이 안무가의 번뜩이는 개성이 담겨 있는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존재감 있는 레퍼토리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무대를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서울발레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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