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한 <겨울나그네>(2021.12.3.-5,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는 그동안 그들이 선보인 <쓰리 볼레로>, <쓰리 스트라빈스키>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변별성을 보인다. 모두 고전 음악을 바탕으로 세 안무가의 개성적 해석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공통점이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대극장에서 분절적 흐름으로 진행한 앞선 두 작품과 다르게 소극장에서 1인무 혹은 2인무 형식으로 하나의 서사구조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나그네>는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연작시 ‘겨울나그네’(Die Winterreise)에서 음악적 영감(靈感)을 담아낸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동명(同名)의 음악에 바탕에 두면서 시에 담긴 서정적 감정을 함께 표현하고자 하였다. ‘겨울나그네’는 원제 ‘Die Winterreise’를 직역하면 겨울 여행,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겨울나그네’ 24곡 중 선별한 음악 속에서 그 쓸쓸한 감정을 일정한 흐름에 담아내고 있었다. 음악은 도입부 제1곡 밤인사, <걷는 사람>에서는 제4곡 동결, 제20곡 이정표가 수용되었고, 간주곡으로 제5곡 보리수 그리고 <불편한 마중>은 제17곡 마을에서, <수평의 균형>은 제10곡 휴식, 제15곡 까마귀, 제24곡 거리의 악사를 수용하였는데 담론에 대한 구술성과 실존적 인식 그리고 동시대의 표현 방식 등이 다양한 감정 속에서 구현되었다.
김원 안무 <걷는 사람>
먼저 김원 안무 <걷는 사람>은 무용수, 낭독자의 감정 표현을 통해 걷는 이, 즉 화자(話者)인 나의 실존에 대한 인식을 그리고자 하였다. 이는 낭독자의 ‘나는 걷고 있고, 문득 멈추는 순간에도 걷고 있다’라는 화두처럼 무용수는 쉼 없는 움직임을 보였고, 즉흥적 표현이 체화되어 인생 여정의 고뇌가 음악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구술적 담론과 언술적 몸짓은 철학적 사유와 묘사적 연기 속에서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다.
제20곡 이정표에 담긴 미지 길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아가며 미시적 절정을 이끌었다. 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처럼 서술적 흐름과 무용수가 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어 춤길과 인생길이 떨어져 있지 않음을 그려낸 면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쓸쓸함이나 적막함보다는 생동감 있는 기운이 그대로 체현되었다.
안영준 안무 <불편한 마중>은 사회 구조 속 고립된 자아를 그려놓는다. 첫 머리는 턴테이블에서 흐르는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정확하지 않게 흐르면서 갇힌 구조 속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오브제인 원통에 행위자가 들어가면서 제한적 양태를 나타내어 몸과 마음을 더욱 옥죄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이는 제17곡 ‘마을에서’ 드러난 집단 속 분리된 이방인의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면모이다.
이는 턴테이블의 작동이 멈추고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흐르면서 답답한 마음의 해소가 다소간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두 무용수의 쟁투적 행위를 통해 갈등적 양상으로 치닫는다. 이는 자아에 대한 성찰에서 이루어지는데 인식적 굴레를 벗고자 하는 두 무용수의 협력적 몸짓 속에서 구성적 안정감을 그려냈다.
차진엽 안무 <수평의 균형>은 ‘겨울나그네’에 담긴 여러 의미를 내용적으로 풀기보다는 현재적 해석과 디지털을 통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수용하여 새로운 감각을 전해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잠재된 의식 속에 본증적으로 실행되는 균형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래서 대칭, 비대칭 양상의 교차 속에서 무용수들의 균형 유지를 위한 여러 움직임이 이루어지지만 완벽한 균형은 일시적이며 물리적인 것일 뿐 항상 수평을 유지하는 작용과 반작용이 이루어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제 10곡 휴식의 가사가 텍스트로 제시되면서 타임 스트레치(Time Stretch), 즉 음원의 조절 속에서 빠름과 느림의 양상이 함께 이루어지고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공감각적으로 제시된다. 이는 음향의 흐름에 따라 바닥에는 물방울처럼 디지털의 파장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심리적 변화 양상이 진동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이러한 면모는 실존적 인식을 가상적 사유로 확장하는 최근 안무자의 관심이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겨울나그네>는 일정한 흐름 속에서 세 안무가의 개성이 드러나고, 안정적인 완결성을 보였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정전(正典)에 담긴 여러 의미를 해석하여 기대지평을 그대로 전해주었다는 측면으로 비롯된다. 역으로 일정한 사유 안에만 머물러 확장적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 한계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면모는 ‘겨울나그네’가 지니는 음악적, 문학적 감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개성이 표출되었지만 경계를 넘어서는 담론이 형성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글_ 김호연(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