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움직임, 강한 메시지, 다각도의 연출로 현대무용계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김남진은 최근 서커스를 접목해 나름의 시도를 해왔다. 또한 거리예술축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도 2006년 창단 이후 꾸준하게 댄스씨어터 창의 공연을 이어왔다. 그가 작년 <굿(Exorcism)_마른 오구>와 맥을 같이 하며 아동학대를 다룬 <굿_ 사도>가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일환으로 1월 14~1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역동적인 현대무용에 굿이라는 한국적 색채를 더하면서도 서커스가 보여줄 수 있는 아크로바틱한 특성, 감성을 자극하는 라이브 국안연주를 가미한 가운데, 그의 해석은 사실적이고 직설적이었다.
<굿_사도>는 총 5장으로 구성되며 무용수, 연극배우, 컨템포러리 서커스 퍼포머가 조화를 이루며 전체를 이끌어갔다. 작품의 내용은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이 비극을 다루기보다는 현대사회의 아동학대 사건으로까지 확장된다. 물리적 시간을 넘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체벌과 학대의 경계 등에 대한 현대적 시각을 더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도세자를 연기하는 퍼포머와 학대받는 아동과 학대하는 부모를 연기하는 연극배우들, 혼령들을 의미하며 춤추는 무용수들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몰입도를 높였다.
첫 장면에서 사회자의 소개로 장한 어버이상을 받은 부부는 축배의 잔을 깨며 비극적인 전개를 암시했고, 공연은 연극처럼 시작되었다. 라이브 연주 앞쪽으로는 흰 의상을 입은 아이 역할의 연극배우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대형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리고 공중의 줄에 매달린 사도세자는 아크로바틱한 춤을 추다가 플라잉 서커스를 하며 처절하게 괴로움을 표현했다. 공중의 색색의 천들은 굿당의 천들처럼 전통적 느낌을 살렸고, 바닥에 깔려있는 흰 종이가루들은 무용수들이 움직일때마다 날리며 공간을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이어서 4명의 여성무용수들은 검무를 추며 영혼을 달랬는데, 긴장감은 더했으나 검무가 좀 더 정교했으면 하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았다.
특정 장면에 있어서는 두 무용수가 거울을 통해 흰 종이가루가 깔린 바닥을 비추며 추는 춤, 거울을 이용해 마치 분리마술을 보여주는 듯 연장된 신체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이후에도 야광요요로 줄을 늘였다 풀었다하는 놀이, 유연한 몸짓의 여성 솔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대화, 구슬픈 노래, 공중에 매달려 회전하는 사각 뒤주의 등장, 연극배우의 대사와 방울을 들고 추는 군무와 같은 다양한 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김남진은 역사적 사건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곳곳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아동학대의 현상을 교묘하게 배치시켰다. 더불어 뒤주를 나타내는 사각형의 오브제, 무대 중앙에 드리운 줄에서의 플라잉 서커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조명 등은 극적 활력을 주었다. 이는 주지하고 있는 역사적 내용을 복합적으로 보완하는 장치였다. 전반적으로 ‘사각’의 프레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뒤주의 형태로 구현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벽이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의 벽을 나타내면서 상징성을 띠었다.
오늘날 무용, 연극, 서커스, 음악의 장르를 넘나드는 방법론은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성인데, 김남진은 그러한 현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겪게 되는 가족 간의 사랑,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되새기게 한다. 즉, 이러한 주제의 선정과 댄스씨어터 창만의 독창적인 표현을 통해 단순히 보고 즐기는 공연에서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관객들에게 갖게 했다. 김남진의 방식은 포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 불편하지만 직시해야하는 현실을 피상적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굿(Exorcism)_사도〉는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다루고 꼭 되짚어야만 했던 아동학대의 이야기에 주목해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으로 그려냈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녔다. 또한 학대와 상처로 얼룩진 억울한 영혼들을 달랜다는 의미에서 굿을 차용하고 검무로서 표현했으며 과감한 움직임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무력한 사도세자와 학대받은 아이의 내면을 그려낸 연출은 좋았다. 그러나 역동적인 춤어휘와 서커스의 사용이 좀 더 세밀하게 교차점을 이루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완성도를 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더불어 익숙한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접근한 시도는 대중성의 측면에서는 적절했으나 그만큼 점층적이고 밀도있는 구조가 수반되어야 함을 기억해 후속작업이 적절히 따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글_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댄스씨어터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