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창단된 이래 한국 창작춤에 있어서 주제의 다각화와 표현양식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원동력을 중심으로 근원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발상을 보여온 김영희 무트댄스가 무용부문 서울문화재단 다년간지원사업 선정단체로 선정된 이후 보여준 무대가 6월 25~27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김숙자류 ‘도살풀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공연의 제목은 2015 김영희 무트댄스 정기공연 살풀이 <돌아서서>였는데,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했다.
김영희는 독특한 창작세계로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의 작품성향이 그녀의 내면세계와 인생관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면 이번 무대는 한국전통무용의 대표적 작품인 살풀이춤에 담긴 ‘한’과 ‘신명 등의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 안목으로 재구성·재해석함을 표방했다. 아마도 제목 <돌아서서>는 이처럼 애달픈 한국적 정서를 현재를 사는 ‘나’라는 1인칭을 통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해석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했다.
공연의 중심을 이루는 ‘살풀이’는 우리의 대표적인 한국전통무용이다. 살풀이에는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매방류, 한영숙류가 있지만 그녀가 김숙자류 도살풀이를 선택한 이유는, 2m가량의 긴 수건을 사용해 공간의 확장을 꾀하면서도 무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굿판에 담긴 한국적 정서를 가장 강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더불어 김숙자 선생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계에 의해 전수받은 철저한 재인 교육을 기초로 독특한 기법을 도입, 공연 예술적 성격의 춤으로 승화시킨 이유도 그 한 부분일 것이다.
첫 장면에서 굿판에서의 모습이 강렬한 잔상을 남기듯 긴 붉은 천을 허리에 매고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에서 팔을 뻗어 움직이는 대무녀 정석지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그 천 끝에 연결되어 있는 무용수들은 개별적 무녀(巫女)였고, 그녀들 역시 응축된 긴장과 영혼의 몸부림으로 처절함을 표현했다. 이후 심박동을 가속화시키는 타악기의 강하면서도 아련한 울림과 피악노 연주, 깊은 소리의 구음이 어우러진 박창수의 음악이 크게 청각적 자극을 주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무대 전체를 오픈시키고 큰 나무로 주변을 감싸며 조약돌을 바닥에 깔아 토속적이면서도 친숙한 이미지를 완성해낸 점이 돋보였고, 대무녀의 씻김굿에 이어 깨어난 영혼들이 무대 한 구석 조약돌 위에 누워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기도 하고 그 돌 위를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은 미니멀리즘 사용의 효과적 일례였다.
이후에도 그녀가 직접 춘 솔로를 포함해 무용수들의 미니멀한 움직임은 최소의 동작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린 연출이었고, 제의적 느낌을 강하게 담으면서도 안무자의 자기내면에의 탐색을 한국 전통 무용의 철학과 춤사위의 특성을 연구해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더불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던 부분은 흡입력 있고 몽환적 분위기를 만드는 김철희의 조명과 후반부 힘차게 쏟아지는 쌀알의 투하와 공간을 환상적으로 변화시킨 김종석의 무대세트였다. 결국 조명․음악․무대장치와 함께 김영희 스타일의 살풀이를 선보인 순간, 살풀이의 투박함 속에 엿보이는 한국적 멋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4막으로 나눠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자신의 삶의 과정을 계속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전통’이라는 범주를 나름대로 새롭게 제시한 진지한 무대였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니멀한 움직임을 통해 극대화되어야 했던 접신(接神)의 장면들이 과거 초창기 멤버들의 표현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안무가의 카리스마도 최고조에 있었던 <어디만큼 왔니>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또한 너무도 감각적인 조명과 무대세트, 음악을 총괄한 그녀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도 했지만 이들이 춤에 몰입하게 만들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 창작춤의 갈래를 이끌며 여성들만의 파워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저력을 보여준 점과 굿 한판을 보고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준데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김영희 무트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