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안무가, 작가, 소리꾼, 무용수, 배우, 퍼포머……. 조아라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이 단어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특정한 장르에 머물러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특정한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장르와 역할의 경계를 마구 횡단하는 중이다.
지난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 신작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 역시 ‘차세대 열전 2021’의 연극 분야 선정작으로 관객들과 만났으나,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연극 혹은 무용, 아니면 댄스시어터나 피지컬시어터 그 어떤 명칭으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공연이었다.
작품은 조아라가 2016년 집에서 외출 준비를 하다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의 요골두가 부서진 뒤 오랜 재활을 하며 물리치료사와 나눈 대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는데, 그가 부상에서 회복해가는 것은 자신의 신체라는 물리적 범위를 넘어 타인의 존재와 예술, 인생으로 사유를 확장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앞서 조아라를 수식하는 여러 역할들을 나열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무용수이자 배우로 신체의 움직임에 기반한 예술활동을 하는 그에게 요골두 골절은 향후 커리어에 대한 불안을 안겨주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공연은 수직운동을 하는 척골과 회전운동을 하는 요골두의 이루지 못할 사랑 이야기(부상을 당하지 않은 상태라면 두 개의 뼈는 결코 만날 일이 없으므로)라는 코믹한 우화로 시작하지만 팔을 구부리고 펴는 평범한 동작을 다시 일상의 것으로 가져오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고통을 잘 견딘다고 해서 전과 다름 없는 움직임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재활 과정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과 지루함으로 점철되어 있고, 가장 가까이에서 회복을 돕는 물리치료사마저 그 고통에는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이기에 우주에, 사막에 혼자 남겨진 듯 외롭기까지 하다.
공연은 조아라와 물리치료사 간의 대화, 그리고 환자와 치료사 입장에서 발화되는 각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대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공연을 이끌어가는 중심 언어는 말이 아닌 움직임이다. 경지은, 권영지, 윤현길, 이윤재, 임호경, 권정훈 이 여섯 명의 출연자는 조아라와 물리치료사를 번갈아 연기하는 것은 물론 서로 만나지 못하는 척골과 요골두에 이입하며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고 무대를 전환시킨다.
ⓒ옥상훈
조아라의 방이나 물리치료실 같은 배경이 설정되어 있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펼쳐지는 곳은 그러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조아라의 의식 속이다. 한 시간여의 공연 시간 동안 출연자의 움직임을 따라 조아라의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는 듯한 관람 경험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타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특수한 감각을 느끼게 하며 조아라가 몸으로 겪어낸 사유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나 붉은 방석, 사과 등 소품의 활동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공연 초반 바닥에 놓여 조명을 받고 있는 사과는 설치미술처럼 무대세트의 일부로 보이지만 이내 뼈의 은유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가지런히 나열된 사과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출연자들은 뼈와 뼈 사이를 이동하는 혈액이나 세포 혹은 의식이 되어 핑크색 사막을 발견하는가 하면, 사과는 다시 은유를 벗어나 출연자들의 신체 위에서 뼈 그 자체로 돌아와 확장된 사유 너머로 뻗어나가던 이야기를 뼈가 부러진 환자와 물리치료사의 대화로 되돌린다.
창작자들에게 자전적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로 옮길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화두인데, 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창작자가 자기 자신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는 자전적 이야기가 얼마나 반짝이는 상상과 영감의 보고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성공적인 예시이며, ‘차세대 열전’이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차세대 예술가들이 앞으로 펼쳐낼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충족시켜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할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