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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하고 생경한 이미지가 자아내는 친근한 감성: 경희 댄스시어터 <박재현의 안무 노트>

만약 어떤 안무가의 노트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한 예술가의 창작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서서 그의 작품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지난 5월 29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 올린 경희 댄스시어터(대표 박재현)의 <박재현의 안무 노트>는 마치 고흐의 편지를 읽고 고흐의 창작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실했는지 이해할 수 있듯이 안무가 박재현의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그가 안무한 작품 중 <굿모닝 일동씨-슬픔에 관하여>(이후 굿모닝), <고독 – 그곳엔 사랑이 없더라>(이후 고독),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이후 인어공주) 등 3편을 재구성했다. 3편 모두 30분 내외의 작품으로 작품 길이로 보면 원작의 맥락을 많이 손보지 않고 수월하게 이어 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재현은 수월한 쪽을 선택하지 않고 각 작품의 맥락을 약화하고,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려는 시도를 보였다.

 



<굿모닝>은 2020년 제16회 AK21 국제 안무가 육성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소리꾼 양일동 개인의 이야기를 보편적 슬픔으로 확장하는 내용이다. MR로 흐르는 배경음악과 양일동 목소리의 조화가 뛰어났는데, 배경음악은 보편적 슬픔의 감성을 담아 전체를 떠받치고, 양일동의 소리는 개인의 정한으로 섬세한 감정을 이끌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양일동 개인 이야기는 사라지고 관계의 문제가 드러난다. 나는 왜 태어났을 때 죽지 못했을까나...는 친구야 울지마” 같이 자신을 근본부터 부정하면서도, 타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 말이다. 너 다리 어디 갔어?발목 없이 크게 날아볼까처럼 알 수 없는 읊조림과 웅얼거림을 무대 곳곳에 뱉어내는 박재현 작품 특유의 혼란스러운 대화법이 춤 이미지 곳곳에서 불쑥 나온다. 춤은 춤대로 말은 말대로 떠돌았고, 맥락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독>은 2017년 금정산 생명문화축전 제2회 전국 춤 경연에 참가해 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경연은 금정산 숲을 배경으로 진행했다. 이번 무대에서 숲이 주는 자연 친화적 분위기 대신 조명을 등진 실루엣만으로 순수한 이미지를 강화했다. 무대 중앙에 박재현이 긴 나뭇가지를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사람과 나무의 접점은 사람 머리의 작은 부분이다. 이 위태로운 균형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따라 우아하게 흔들린다. 사람과 자연의 이상적인 관계가 사람이 자연에 접하는 부분을 최소로 하고 자연의 움직임에 적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박재현의 조심스러운 움직임 주위를 변지연이 춤추듯 천천히 걸어 움직일 때 박재현과 나뭇가지는 자연이 된다. 이윽고 변지연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에서 작은 불빛을 밝히고, 불빛은 무대를 돌아 객석에까지 이르러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작은 희망의 불을 비춘다. 

 

 

<인어공주>는 2019년 제28회 부산 무용제에서 우수상과 안무상을 받았다. 편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인어의 이루지 못한 욕망-걷기의 은유가 더 쉽게 읽힌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페티쉬를 의심할 정도로 맨살의 다리를 강조한다.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다리를 강조하는 동작과 포즈는 박재현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맨살의 다리는 그의 섹슈얼리티이고 감춰진 욕망의 상징으로 보인다. 현실에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것 말이다. 그렇다면 인어는 박재현 자신이다. 동화나 영화 속 인어처럼 모로 누워서 상체를 일으킨 채 힘겹게 무대를 돌아다니는 모습에는 욕망을 감춘 채로 편견이 만연한 현실을 힘겹게 헤쳐 나가는 그와 나(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인어는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인어공주>가 끝을 향해 달리던 중에 관객은 뜻하지 않은 장면을 만난다. 조명이 갑자기 객석으로 들어오면서 객석 곳곳에서 춤꾼들이 무대로 오른다. 관객이었던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무대는 감성 충만한 축제의 장이 된다. 그들은 박재현과 함께 했던 부산의 춤꾼들이었다. 피나 바우쉬가 <마주르카 포고(Mazurca Fogo)>에서 보여 준 감성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장면은 부산 춤꾼들을 큰 역할 없이 한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소속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편견 속을 헤치고 다녔던 박재현이라서 가능했던 장면이다.

 

 

 <박재현의 안무 노트>는 작가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고, 동료 춤꾼들도 그러했을 것이지만,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먼저 공연 시작에서 사회자가 나온 부분이다. 사회자는 작품 감상을 위한 사전 해설이 아닌 관객 각자의 자유로운 감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자 역할이라기보다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이 장면은 마치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머뭇거린다는 느낌만 들었다. 박재현의 작품 대부분이 서사가 뚜렷하지 않다. 주제를 내세운다고 해도 이야기 흐름으로 주제를 끌고 가지 않는다. 다소 어수선하고 더듬거리는 이미지들이 이어지다가 끊기고, 예상 못한 타이밍에서 여러 요소를 엮어낸다. 정리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어수선함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전혀 가볍지 않다. 문제는 이번 공연에서 박재현의 이런 특징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이다. 개별 작품의 맥락을 끊어 낸 결과 안 그래도 선명하지 않은 이야기가 사라지고 이미지만 부유했다. 부유하는 이미지는 끝까지 정착하지 못했는데, 여러 이미지를 정착시킬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유하는 것들의 자유와 확산을 느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장 구분을 더 분명히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하나, 무대 진행에서 섬세하지 못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굿모닝>에서 중요한 장치인 문이 객석 시야를 가려 무대 한쪽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포그를 사용한 방법도 거슬렸다. 하수 앞 안쪽에서 갑자기 소음을 내며 뿜는 포그는 집중을 수시로 방해했다. 박재현의 산만함이 예술적으로 승화하긴 했지만, 날 것으로 두어도 될 것과 세심하게 정리할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박재현의 작품을 두고 날 것의 냄새를 부담스러워하는 시각과 정리되지 않은 생경한 이미지의 신선함을 좋아하는 두 입장이 어떤 안무가의 작품보다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번 공연은 날 것의 냄새는 줄었고, 생경한 이미지를 친근한 감성으로 감쌌다고 볼 수 있지만,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자기 대표작을 갈무리한 이 작업 이후 그가 변신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를 기대하는 한편으로 과연 박재현의 변화가 가능할지도 궁금하다. 그의 안무 노트는 이렇게 기대와 의문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박병민(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