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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무용단의 정체성과 두 안무자의 개성이 오롯이 담긴: 현대무용단 탐 제42회 정기공연

한국 현대무용의 중흥기에 기여한 현대무용단 탐은 고유한 움직임 어휘와 아카데믹한 성격으로 당시를 풍미했다. 그런 정체성을 현재까지 지켜나가고 있는 현대무용단 탐의 제42회 정기공연이 6월 8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있었다. 마승연과 조양희의 두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에서 40여 년 역사의 저력이 드러났다. 40, 50대의 중견으로 접어든 그녀들의 안무는 과하게 무겁지 않으나 깊이감을 담고 있기에 뭉클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마승연의 여유와 조양희의 감성이 서로 다른 개성으로 매치되면서 오늘날 탐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마승연의 <시선의 변주>는 규칙과 불규칙이 오가는 시선에 대한 주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나 시선이란 나의 시선일 수도 혹은 타인의 시선일 수도 있기에 자신과 타인의 지각과 반응에 크게 기여한다. 시각이라는 감각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감각이기에 우리에게 민감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11명의 무용수들(어수정, 최윤영, 이혜지, 차은비, 김수진, 신동윤, 장혜지, 김현진, 노하윤, 정다원, 마승연)이 출연해 안무자 특유의 구조적 결합과 무용수들의 기량을 돋보이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안무 의도에 충실하게 시선의 교류는 춤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탄탄한 기본기가 받쳐주고 있기에 어떤 작품에서든 흔들림이 없었고, 다소 정형화된 모습일지라도 그녀만의 색깔이 또렷하게 형성되었음을 각인시켰다. 




 악보받침대를 오브제로 사용해 시선을 분산, 이동하고 공 튀기는 소리를 써서 공을 튀길 때 시선을 통해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이미지화의 순간을 부여했다. 이는 시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측면에서도 주제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이제 자리를 잡은 어수정과 최윤영을 주축으로 무용수들은 다양한 솔로, 듀엣, 군무 등을 통해 기능이 부각되는 춤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첫 시작, 높이 올려져 있는 악보대만 조명을 비춰 시선을 집중시켰다면 후반부 최윤영이 공으로 바닥을 치면 백드롭에 은하수처럼 빛나는 영상이 아름답기도 했다. 늘 그랬듯이 마승연은 <시선의 변주>에서 다양한 음악선택과 감각적인 영상, 춤이 무대를 풍성하게 꾸몄고, 시선을 통한 관계성의 행위를 성실한 춤으로 그리고 단단한 춤으로 변별력을 보였다.

 



조양희 안무의 <소진>은 그녀가 일정 부분 삶에 있어서 소진했으나 춤을 통해 충전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계의 측정, 조절, 방전에 대한 메커니즘을 안무 요소에 반영해 구성하고 스스로 힘의 한계에 대해 인지하고 번아웃(Burn Out)상태에 대해 주시해보고자 하는 안무자의 의도가 춤 속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양쪽에서 두 무용수가 초를 들고 등장하면서 타들어가는 초가 소진의 단계를 의미하는 듯 보였고, 이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체조건을 가진 조양희의 움직임은 그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강탈했다. 유연하면서도 분절적인 움직임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요즘 MZ세대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녀의 체격과 움직임은 한층 완숙해졌다.

 



무용수들은 채찍 소리를 통해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채찍질에 달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번아웃 상태를 표현하는 부분이 오히려 좀 더 긴장감이 풀리고 여유로운 춤으로 구현되었다. 간혹 군무진들의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에도 그것이 실수인지 안무인지 모르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음악과 춤의 조화로움 때문이었다. 마승연의 작품에 출연했던 10명의 무용수들(어수정, 최윤영, 이혜지, 차은비, 김수진, 신동윤, 장혜지, 김현진, 노하윤, 정다원)이 동일하게 등장했는데 두 작품에 동시 출연하는 그들의 체력과 열정이 놀랍기도 했다. 조양희는 그동안 솔로에 비해 군무를 조직화하는데 다소 약세를 보였는데, 이번 <소진>에서는 그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걱정을 날려버렸다.

 


세월을 반추하며 그들 춤에 담긴 이미지와 메시지가 고유의 형태와 색채로 관객에게 지속되어 다가옴은 그들 노력의 결실이다. 또한 마승연과 조양희는 <시선의 변주>와 <소진>을 바탕으로 관념과 기능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자신들의 미래와 탐의 미래를 굳건히 할 방향성을 잡고 한층 더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을 기대해 본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현대무용단 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