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무용계에서 적절하게 적용될 예술가들이 사실상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중의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한국 현대무용계의 대모 육완순 선생이 떠난 지 벌써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녀를 기념하며 추억을 담아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와 육완순추모사업단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육완순, 그녀에게>(7월 21일)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고인의 1주기를 맞아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 기억하고자 공연과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그녀가 마사 그라함 테크닉을 한국에 들여온 이후 고인의 제자들과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의 주요 사업인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 등을 통해 성장한 무용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큰 맥락에서 볼 때 전시는 유작 재연, 영상 상영, 유품과 사진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육완순 선생을 아는 모든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육완순추모사업단의구성은 공동위원장 김동호, 하정애, 예술감독 양정수, 총연출 박명숙, 전시예술감독 김양근, 영상·기술총감독 김성한, 사무국장 이미경, 기획 박신애 등이다. 이들의 지휘 아래 많은 무용수들이 공연을 빛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진정성 있는 춤과 예술성을 갖춘 공연으로 추모의 깊이를 더했다. <육완순, 그녀에게>는 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1부는 프롤로그, 2부는 대표작 재연, 3부는 에필로그였다. 1부 프롤로그는 <그녀에게>였다. 두 파트로 구성된 작품에서 첫 시작은 육완순이 미국의 마사 그라함 스쿨에서 유학 후 1963년에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작품을〈Basic Movement〉라는 제목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신창호가 새롭게 재해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보여준 마사 그라함 테크닉 기반의 작품에서는 그녀의 초창기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두 번째는 육완순의 인터뷰 영상과 1965년 초연했던 <초혼>의 작품 영상을 보여주었다.
2부는 육완순의 대표작을 재연하는 무대로, 첫 번째로는 <흑인영가>(1963년)를 안신희의 재구성으로 보여주었다. 흑인들의 애환을 그린 <흑인영가> 역시 미국식 현대무용의 정서를 듬뿍 담았는데, 중년과 노년의 제자들이 출연해 가슴 뭉클한 순간을 연출했다. 나이를 잊게 할 만큼 움직임에 있어서도 훌륭했던 그녀들의 모습은 연륜이 돋보였다. 젊은 육체가 보여주는 싱그러움은 아니지만 집중력 있고 진솔한 중년 혹은 노년의 육체는 오히려 더욱 아름다웠다. 중년 혹은 노년에 접어든 육완순의 ‘어른 제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젊은 날의 힘찬 기운은 덜하지만 연륜 배인 숙성된 몸짓은 집중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이윤경과 장은정 두 무용가가 재구성한 고인의 유작 <아직도 최고의 날을 꿈꾼다>였다.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탄탄하면서도 뛰어난 기교로 중년을 대표하는 이윤경과 장은정이 재구성한 무대로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은 육완순의 대표작 중 대표작인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1973)였다. 작품의 지도와 막달라 마리아 역을 이윤경이, 최두혁이 예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중간에는 육완순 선생이 직접 예수로 출연한 영상이 삽입되었고, 군무에 필자도 출연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당시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3부 에필로그는 작품 <영혼의 불꽃>이었다. 양정수의 안무로 30여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이 무대는 <육완순, 그녀에게>의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육완순의 제자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는데 원로인 하정애를 비롯해 이정희, 박명숙, 최청자, 남정호, 양정수, 황문숙, 한선숙, 김양근, 안신희, 전미숙, 이윤경 등 여러 연령을 아우르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들 스스로도 회고의 눈빛과 몸짓을 간직한 채 벅차오르는 감정을 절제하며 춤추는 면면들은 무용인들의 아름다움을 각인시켰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육완순 선생의 예술정신과 영혼을 무대에서 불태운 무용수들은 최종적으로 작품에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까지 무대에 올라 인사하는 마무리를 통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르코예술극장 1, 2층 로비에서는 육완순의 대표작 사진과 유품들을 전시하는 추모전시가 진행되었다. 흔히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진과 유품 전시는 일반적이지만 입체적으로 아카이빙하기 위해 영상전시를 포함시켰다. 특히 이번 육완순 추모공연은 춤과 영상의 조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영상 속 육완순의 육성은 그녀의 존재를 강력하게 소환했는데, “무용이 삶이었고, 삶이 곧 무용이었다”, “무용가의 삶이었기에 실로 행복했다”라는 말로 한평생을 춤과 함께 한 행복한 삶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배출한 제자들을 굽어보며 춤으로 빛날 큰 스승을 기억하고, 한국 현대무용사와 더불어 족적을 남긴 그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