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zArts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안개 낀 느낌의 검은 배경 앞에 한 여인이 서 있다. 한 발을 앞으로 뻗고 발끝으로 서 있는 모습이 우아하기 그지없다. 타이트한 검은 상의에 흰색 판탈롱, 겹겹이 늘어뜨린 진주 목걸이와 헤어밴드의 카멜리아 장식은 영락없는 ‘샤넬’이다. 〈Modanse; 모당스〉의 포스터 모습이다. 이 포스터는 보는 사람 누구든 압도할 것 같은 카리스마가 있다.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샤넬과 당대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인 자하로바가 만나 시너지를 뿜어낸다.
2019년 초연을 하고 지난 7월 재공연을 한 〈Modanse〉는 두 개의 단막 작품을 묶은 더블빌 공연이다. 러시아의 기획사 뮤즈아츠(MuzArts)가 제작을 맡았으며, 볼쇼이발레단과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있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샤넬로 출연하는, 온전히 그녀를 위한 무대이다. 볼쇼이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무대에 함께 하며 밸런스를 맞췄다. 첫 번째 작품 <숨결처럼>은 헨델의 음악에 맞춰 이탈리아 안무가 마우로 비곤제티가 안무했다. 두 번째 작품 <가브리엘 샤넬>은 러시아 작곡가 일리야 데무츠키와 안무가 유리 포소호프의 창작 발레이다.
〈Modanse〉는 ‘패션’을 뜻하는 프랑스어 mode에 ‘춤’을 뜻하는 프랑스어 danse를 합성한 직관적인 제목이다. 브랜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의상을 담당하여 80여 벌의 샤넬 의상이 등장하는 <가브리엘 샤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숨결처럼> 역시 무척 ‘패셔너블’했다. 코르셋 느낌의 상부와 아르누보 장식처럼 부풀어 꼬부라진 튀튀는 아방가르드한 바로크 드레스를 연상시켰다.
Photo by Jack Devant
<숨결처럼>은 스토리가 없는 대신 시각적 매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듯했다. 아무런 세트가 없는 검은 배경의 무대에서 15명의 댄서들은 솔로, 듀엣, 트리오 등의 조합으로 춤을 추었다. 무대를 완성하는 것은 조명이었다. 장면마다 디자인을 달리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 연출로 인해 단조로운 움직임에 역동성이 가미됐다. 양옆 하부에서 댄서들의 몸을 비춤으로써 춤추는 근육의 명암이 도드라져 보였으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어우러져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여성 댄서들의 춤은 섬세함과 우아함을 강조했고 남성 댄서들의 듀엣은 힘의 균형과 긴장을 보여줬다. 시작과 끝은 15명의 댄서 모두가 일렬로 서서 손에 손을 잡고 파도타기를 하는 양 에너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춤의 물결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졌다.
아쉬운 부분은 음악과의 부조화였다. 댄서들의 탁월한 피지컬과 테크닉, 세련된 조명과 관능적인 의상의 조화와 달리 헨델의 음악은 작품에 어우러지지 않았다. 스토리가 없는 추상적인 춤 작품의 경우, 순수한 몸 움직임(시각)과 음악(청각)이 주는 공감각적 즐거움에 반응하며 작품에 빠져드는 쾌감을 맛보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헨델의 바로크 음악을 타고 흐르는 춤의 선율을 기대했지만, 결과물은 오히려 음악이 겉돌아 몰입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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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숨결처럼>과 달리 <가브리엘 샤넬>은 청년 시절의 샤넬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모습까지 일대기를 한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그려내었다. 무대는 샤넬의 검정 드레스만큼이나 모던하고 미니멀했는데, 검은 무대에 설치된 예닐곱 개의 검은 패널(스크린)이 세트의 전부였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샤넬의 작업실, 서재, 친구들과의 사진, 영상 등이 샤넬의 자전적 회고와 함께 이 패널 위에 투영됐다.
이 작품은 몇 개의 장면들이 단편 드라마처럼 구성돼 있다. 카바레에서 공연하던 시절에서 시작하여 아틀리에에서 수련하던 모습, 모자 디자인으로 시작한 패션 커리어, 승마 경기장, 골프와 수영 등의 사교 클럽, 발레 뤼스, 디아길레프, 세르주 리파르(비아체슬라브 로파틴)와의 특별한 관계, 에른스트 보로 추정되는 조향사(데니스 사빈)와 향수 샤넬 No.5를 만들어 내고 마침내 패션 디자이너로 명성을 드날리던 패션쇼 등이 단막극처럼 펼쳐졌다. 에티엔 발장(미하일 로부킨)과 아서 카펠(아르테미 벨랴코프)은 샤넬의 인생에서 중요한 두 남자로 등장했는데, 특히 아서 케일과의 듀엣과 그의 사망으로 충격에 빠진 샤넬(자하로바)의 격정적인 솔로는 작품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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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샤넬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 삶의 깊숙한 곳까지 조명하지는 않았다. 작업 과정이나 인간관계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 법한데도 철저하게 감정선을 차단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무성 기록 영화의 장면들을 무심하게 돌려 보는 느낌, 무대 스크린에 비추어진 사진을 3차원 춤으로 형상화한 그 이상은 없었다. 관객은 그저 관망자로서 작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로도 다루었던 스트라빈스키와의 관계나 나치에 부역하던 이야기를 혹시나 기대했지만, 그러한 인간적이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샤넬을 포함한 모든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이 작품의 유일한 중심은 오로지 ‘디자이너’ 샤넬, 그리고 그녀의 업적과 패션이었다.
한 세계에서 칭송받는 어떤 인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꽁꽁 싸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안갯속 인물, 사진으로 고착되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인물, 대중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인물, 내면을 숨기고 공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인물. <가브리엘 샤넬>이 풀어낸 영웅의 서사에는 파토스가 빠져있다. 결핍이나 시련, 인간미가 부재한 영웅의 서사에서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가브리엘 샤넬>의 서사는 그만큼 무미건조했다. 샤넬 패션쇼를 보는 것 같은 시각적 즐거움은 있었지만 하나의 춤 작품으로 마주하기엔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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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많은 아쉬움 속에서도 자하로바의 춤은 독보적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도 그녀의 등장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그저 존재만으로도 프리마 발레리나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샤넬의 존재감만큼이나 자하로바의 무대 장악력은 대단했다.
자하로바는 볼쇼이의 발레리나들 중에서도 남다른 피지컬로 완벽하게 움직인다. 나이 40을 넘은 지금은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고전 발레 레퍼토리에서보다 창작 작품과 자하로바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프로덕션에 도전하며 춤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가냘픈 소녀의 모습에서부터 강한 카리스마까지 소화해내는 그녀의 춤에 관록이 묻어나고 있음을 이번 무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하로바의 밤(Zaharova Evening)’이라는 공연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Modanse〉는 자하로바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하로바의, 자하로바에 의한, 자하로바를 위한 발레 그 자체였다.
글_ 이희나(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