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탈춤의 정착을 위한 ‘비판적 옹호’: 탈춤에 대한 열린 상상 ‘추는사람,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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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영화가 있다. 단기간 촬영한 저예산 영화다. 처음엔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정적인 측면의 영화를 뜻했다. B급영화는 점차 달라졌다. 메이저 영화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이른바 A급영화가 담아내기 어려운 자유로운 창작 정신이 거기엔 존재했다.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작가주의 영화가 B급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B급문화로서의 탈춤 

B급영화가 있듯이, B급탈춤도 있어야 한다. 탈춤은 원래 B급이다. 메이저에 대항하는 마이너의 특성이 그 안에 강하게 존재한다. 탈춤은 이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척 기뻐할 일이다. 탈춤과 관련해서 많이 하는 얘기가 ‘풍자와 해학’이다. 그 이면에는 ‘모든 사람의 자유, 보편적 평등’을 지향하는 심리가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연희를 연구하는 학자 허용호는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역동적이고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한국 탈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탈춤을 한 마디로 잘 설명했다. 

탈춤은 위대한 예술인가? 탈춤은 애초부터 그러했던가? 지금의 탈춤은 ‘고급진’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탈춤에 대한 내 불만이다. 탈춤은 과거 이 땅에 어떻게 존재했을까? 누가 탈춤을 좋아했을까? 당시 탈무(脫舞)에 열광했던 건 혈기왕성한 청년층이다. 탈무는 사회의 안녕(安寧)과 공공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매우 위험한 공연으로 인식되었다. 

1921년 10월 6일, 조선가정공산품전람회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야외 여흥장에선 탈춤을 공연했다. 당시의 식자층과 치안관계자들에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노승탈무(老僧脫舞)와 남녀탈무가 음탕하기 짝이 없어서, 평양의 경찰은 외설난잡(猥褻亂雜)한 탈춤을 중지하도록 명령해서 중단된 바도 있다(1921. 10. 12. 동아일보).

일탈(逸脫)없이, 탈춤(脫舞)없다! 

백 년 전, 이 땅의 탈춤은 전형적 ‘B급문화’였다. 탈춤의 탈(脫)에 대한 해석은 많은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게 바로 내겐 일탈(逸脫)이다. B급문화 특유의 통쾌한 일탈(逸脫)이 탈춤의 매력이다. 탈춤이 한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과거를 답습한 탈춤에는 일탈이 거의 존재치 않는다. 백 년 전의 탈춤과 지금의 탈춤이 가장 다른 지점이 바로 이거다! 탈춤이 곧 일탈이다. 

서울남산국악당 X 천하제일탈공작소 공동기획의 탈춤에 대한 열린 상상 ‘추는사람, 남산’(이하 ‘추는 사람’, 12월 1일~3일, 서울남산국악당)을 보면서, 내가 가장 끌린 점은 일탈이다. 기존의 전통 탈춤적 요소도 존재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이 느껴졌다. 내 눈에 비친 공연은 그랬다. 7명의 탈꾼에게서 저마다의 일탈 심리가 느껴졌다. 

그들은 물론 전통의 탈춤도 좋아하고, 잘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탈꾼이다. 그러함에도 그들도 전통탈춤 공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듯 보였다. 7명의 탈꾼을 모두 ‘일탈’이란 키워드로 접근할 수 있는데, 그 일탈의 방식과 정도는 달랐다. 정확하게 짚는다면, ‘능한’ 일탈이 있고, ‘서툰’ 일탈이 있다. 4인은 능숙했고, 3인은 서툴렀다. 내 눈에 비친 모습이 그랬다. 다른 사람이 다른 키워드로 이번 공연을 봤다면, 매우 다른 평가를 했을 거다.

이젠 탈춤에 우호적일 필요는 없다?! 

탈춤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냉정해져야 한다. 이젠 탈춤이라는 이유로, 국악이라는 이유로, 전통이라는 이유로, 보기 전부터 지지하고 옹호하는 태도는 지양돼야 한다. 사회적 관심이 적은 열악한 장르이기에, 우호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 왜냐? 탈춤은 이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장르가 아닌가! 

잠시 7명이 만약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다고 상상해봤다. 경쟁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쇼미더머니, 스트릿우먼파이터, 스트릿맨파이터에 출연한 젊은이와 비교를 안 할 수 없다. 열정과 숙련도, 성과와 완성도에 관해서, 여기서 언급해지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겠다. 그래도 4인은 기대하게 만든다. 김지훈, 박인선, 이주원, 장해솔. 그들은 공연이나 무대를 알았다. 반면 허창열, 이정동, 최민우은 그렇지 못했다. 다음은 주관적인 내 순위다. 

1. 김지훈은 현명했다

<트레이너취발>의 김지훈은 ‘추리닝’을 입고 등장했다. 허리의 뒷품에 작은 인형(꼭두)을 업고 나왔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의 공연은 복화술 아닌 복화술이었다. 복화술(腹話術)은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람이 인형을 가지고 연극을 할 때, 사람이 말을 하면서 마치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복화술이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 게 기술이다. 탈꾼은 탈을 쓰고 있으니 매우 자유스럽게 탈 속에서 입을 놀릴 수 있었다. 여기서 김지훈의 현명함이 돋보였다. 

지금까지 탈꾼이 일인이역의 성대모사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김지훈은 그 꼭두를 ‘마당이’라고 불렀다. 마당에서 태어났다고 마당이라고 하는가 보다. 김지훈은 자신과 인형을 오가면서 대화를 이끌어냈는데, 여기서 사설적 재미와 놀이적 재미를 꽤 충족시켜주었다. 

탈꾼 김지훈을 보면서, 전 세대의 희극인 두 사람이 겹쳐졌다. 윤부길(尹富吉, 1912~1957)과 곽규석(후라이보이, 1928~1999)으로. 이들이 대한민국 복화술의 개척자이자 계승자이다. 김지훈은 미국으로 치면 스탠딩코메디(standing comedy), 이 땅으로 치면 재담의 계보를 이을 만하다. 김지훈은 발음이 정확하고, 대사의 운율이 살아있다. 그 안에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만들어 낼 줄 안다. 타 장르와 비슷한 종목과 경쟁했을 때, 경쟁력이 높은 탈꾼은 김지훈이 거의 유일해 보인다. 

2. 박인선은 강렬했다 

관객들의 호응도가 가장 높은 탈꾼이 박인선이다. 퍼포먼스에 능하고, 대사와 움직임에서 영특함이 돋보인다. 언제나 어디서나 박인선은 영특하다. 그런데 그게 때론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때론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평론하는 윤중강이 탈꾼 박인선에 대한 애정이 없는 듯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박인선에 대한 애정이 없지 않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을 뿐이다! 내가 본 작품에서 박인선은 ‘씬 스틸러’로서는 최고였다. 그게 개인으로서의 역량축적과 인기집중에는 큰 장점으로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게 곧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극이라는 것은 흐름이 생명이다. 잘 흘러가야 한다. 무릇 배우는 무대 위에서 앞에 진행된 것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뒤에 이어질 상황을 의식하면서 ‘작품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성을 다해 연결해줘야 한다. 자신이 열연(熱演)을 했다고, 작품의 연결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열이 실(失)이 된다. 

박인선은 언제나 에너지 넘치게 열연한다. 대사도, 연기도, 동작도, 때론 좀 오버일 적이 많다. 박인선의 넘치는 에너지를, 누구는 매우 좋아한다. 그가 등장함으로써 무대가 새롭게 환기(換氣)되는 것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여기서 허창렬을 등장시키자, 박인선과 비교를 해보자. 이번 공연에 한정한다면, 허창렬에 대한 나의 평가는 높지 않다. 나는 허창렬을 매우 훌륭한 탈꾼으로 생각해왔다. 그 생각엔 변함없다. 허창렬은 왜 훌륭한 탈꾼일까? 박인선 또한 훌륭한 탈꾼이나, 박인선과 무엇이 다를까? 

허창열은 빌런(Villein)이 될 수 있다. 박인선에게선 그런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 박인선이 빌런의 역할을 맡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예단(豫斷)은 위험하다. 그러나 나는 경솔할지언정 그러려 한다. 

빌런은 매우 특이하고 오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버 하는 척을 할 뿐이다. 빌런일수록 극 속에 잘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역과의 긴장감도 조성되고, 극이 잘 진행될 수 있다. 탈극 <오셀로와 이아고>에서 허창렬은 최상의 빌런이었다. <아가멤논>에도 그의 대사와 춤은 작품에 잘 용해된다. 

박인선이 탈극에서 앞으로 멋진 빌런이 되길 바란다. 탈춤에서 박인선이 작품 속에 잘 용해되길 바란다. 앞으로 박인선은 평자로서의 윤중강을 무색하게 만들길 바란다. 박인선 자신이 ‘주목 받길 바라는’ 장인(匠人)이기보다, ‘주목하게 되는’ 예인이길 바란다. 

이번 작품에서의 박인선은 시작 부분부터 주목을 받으려 했고, 주목을 받았다. 다른 탈꾼은 콘서트장의 펜스 뒤에 있는데, 역시 펜스에 올라서 해드뱅을 하고 있었다. ‘추는 사람’은 개인기를 드러내는 것이 장점이다. <아가멤논>과 같은 스토리텔링의 공연과는 다르다. 박인선은 이런 일종의 옴니버스 공연에 참 맞다. 그가 단독으로 주목받는 장면이 많을수록 강점이 드러난다. 

‘추는 사람’이라는 형식은 박인선을 크게 빛나게 했다. “언제까지 이 비극적인 스토리를 반복해야 해? 이젠 더 이상 영감 따윈 필요 없어.” 바람난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죽게 되는 할미 역할에 대한, 그녀(박인선)의 통렬한 비판적 발언에 객석에선 커다란 함성과 박수로 화답을 했다. 신파적 절규를 요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역시 딱 그렇게 했다. 박인선의 외침은 이미 <인형의 집>의 로라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많이 읊조렸던 대사일 수 있으나, 탈춤이었기에 빛났다. 박인선이 연기했기에 돋보였다. 

박인선은 이후 비욘세가 되어서 무대에 등장했다. ‘할미욘세’로서의 박인선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옴니버스 형태의 작품에서, 특정인의 개인기를 돋보이게 하는 작품에는 아주 특화된 탈꾼이 박인선이다.

3. 이주원은 영리했다 

‘MC이노마야’가 이주원이었다. 여기서 이주원이 욕망하는 것이 보였다. 이주원은 자신이 성취한 탈춤을 기반으로 해서, 소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보였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이주원의 생각은 이런 것 같다. “탈춤이 더욱 발전하고 동시대적 공감의 폭을 넓히려면, 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미 <아가멤논>에서도 이주원은 탈을 벗고 노래(판소리)를 했다. 

거기서(아가멤논)의 판소리와 여기서(추는사람)의 랩과 가요는 꽤 수준급이었다. 이주원을 최고의 전문가라고는 말하긴 어려우나, 무대에서 손색없이 충분히 보여주는 기량에 다다랐다는 점엔 동의한다. 

이주원의 랩은 지금의 경향과는 다를지라도, 내겐 DJ DOC에 견줄 만 했다. 어쩌면 탈을 기반으로 한 공연에서의 랩은 그런 형태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굵은 골드목거리를 하고 나왔던 ‘MC이노마야’는 이후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하는데, 앞에서 풀어헤쳤던 상의의 옷깃이 여며져 있다. 의미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꽤 진지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순간의 이주원에서 김현식을 연결할지도 모르겠다. 

이 공연의 부제는 ‘탈춤에 대한 열린 상상’이다. 관객도 여러 상상이 가능하다면, 나는 앞으로 이주원이 탈판에서 탈춤은 아주 조금 선보이고, 대신 노래를 많이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지난 20세기의 대한민국 가요에선, 탈판으로 가져와서 재미와 의미를 증폭시킬 노래들이 꽤 있다. 쟈니리의 ‘사노라면’, 신중현의 ‘미인’, 활주로(송골매)의 ‘탈춤’, 홍서범의 ‘김삿갓’, 윤시내의 ’천년‘. 송창식의 ‘토함산’, 신촌부르스의 ‘골목길’을 비롯해서,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등 여러 노래를 그가 탈노래(脫歌)로 수용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4. 장해솔은 진지했다 

장해솔은 매우 안정감이 있는 탈꾼이다. <아가멤논>에서도 그러했다. 장해솔은 내용과 형식, 주제와 방식을 잘 연결할 줄 알아 보인다. 그는 ‘빛나는 조역’에 만족하려는 태도라고 한다면, 나의 속단일까? 그는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빛내려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만의 특장(特長)이다. 

장해솔은 전통춤도 안정된 기반에서 잘 추지만, 그런 탈춤의 전통적 요소를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이를 무대에서 진지하게 퍼포먼스 능력을 펼칠 줄 알았다. 장해솔의 캐릭터는 ‘일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 음악소리가 들리네… 그럼 일을 해야지” 라는 대사와 함께, 가방을 들고 탈춤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탈꾼이 전통탈춤의 소품이 아닌 다른 소품을 든 경우도 별반 못 봤거니와, 탈꾼들에게 소도구가 썩 어울리지 않을 거란 선입견이 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탈꾼들이 현재로선 다른 무대에 대한 적응력이 높지 않다는 건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장해솔은 예외이고, 장해솔을 통해서 나와 같은 사람의 탈꾼들에 대한 편견 또는 안타까움이 점차 해소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장해솔의 탈춤은, 탈춤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동작이 담백하고 사유적 기반이 튼실해 보인다. 난, 늘, 탈춤은 왜 ‘담담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의문이 장해솔에 의해서 일부 풀리게 되고, 장해솔을 통해서 탈춤도 담담하고 담백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이번 ‘추는 사람’에서의 장해솔을 보면서, 그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미친다. 장해솔은 탈춤 이외의 다른 장르를 접하거나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5. 허창렬이 안타깝다 

허창렬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실제 그럴까?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앵커말뚝이>로 분했는데, 크게 지적할 것도 없지만, 크게 다가오는 것도 적었다. 내 눈에 비친 허창렬은 뭔가 자신이 이미 획득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선무당 같은 발언일 수 있지만, 허창렬의 연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이주원과 매우 다른 지점이다. 이주원은 판소리, 노래, 랩의 수준이 처음엔 높지 않았으나, 공연을 하면서 점차 성숙시켰다. 이에 비해서 허창렬에게선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탈춤을 너무도 사랑해서일까? 전통연희를 너무도 사랑해서일까? 그가 일곱 사람 중에서 ‘일탈’이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의 대사와 연기는, 전통연희의 현대적 적용이었다. 기존의 탈춤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지향하는 바를, 자신이 설정한 ‘앵커’를 통해서 말로 풀어냈다. 때론 운율도 있어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탈춤이 갖는 역동성이나 풍자성을 확 드러내진 못했다. 

이는 음악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허동혁은 음악감독을 맡아서, 실제 무대에서 샘플링 된 음악과 함께 기타로 실연을 하고 있다. 일곱 개의 다른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허창렬의 춤과 허동혁의 연주는 따로 놀았다. 두 사람에게서 호흡과 리듬의 교집합은 별반 발견되지 않았다.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허동혁의 음악에는 허창렬의 전통적인 춤사위의 연결은 맞지 않았다. 

내가 20세기적인 사고와 취향에 머물러서 일까? 허동혁의 기타를 들으면서, 지난 세기 이런 시도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신중현, 이정선, 오세은, 김도균, 윤명운, 김목경, 김세황 등이다. 그들은 국악을 확실히 모른다손 치더라도, 블루스적인 정서와 국악의 리듬을 바탕으로 해서, 전통춤과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갖추었다. ‘한국 기타리스트의 국악적 시도!’. 지난 세기의 이런 것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음악감독의 역할을 했다면, 이번 무대는 완성도가 높았을 거다. 

말을 바꾸면, 이번 무대의 음악은 완성도나 참신성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줄 순 없다. 지금은 전통탈춤과 일렉기타가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부여를 할 때는 아니다. 우리가 계속 그런 단계에 머문다면, 탈춤의 창작과 탈춤 음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6. 이정동은 어설펐다 

시작은 매우 그럴 듯 했다. 앞의 이주원과 대무(對舞)를 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낼 때는 뭔가 흥미진진한 새로움이 펼쳐질 것 같았다. 용두사미였다. 〈인싸BARI〉라는 네이밍이 무색하다. 대사는 들떠있었고, 말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지훈과 허창열의 대사에서 느껴지는 말맛이 존재하지 못했다. 큰 소리와 큰 동작을 연결하려 애쓸 뿐이었다. 이정동은 자타 공히 남성성을 내세우는 탈꾼으로 알려져 있다. 〈인싸BARI〉라는 이름에서, 뭔가 ‘쌍씨옷’에서 출발한 파열음이나 마찰음을 접하는 통쾌함을 관객에게 전해줄 듯 싶었다. 그러나 통쾌하지도 강렬하지 못했다. 아울러 가장 아쉬었던 건, 사유의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다.

“다들 살면서 제대로 놀아본 적 있어? 없다면 나와 함께! 놀아보세 놀아보세 취발이와 놀아보세” 이런 대사는 다른 탈꾼들의 대사보다도 상투적이고 설득력도 약했다. 내가 오히려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서 어떤 의도로 춤을 추고 있나요?”

이정동은 ‘벽사진경의식무’라는 레퍼토리로 주목받았다. 탈춤의 특징적 동작에 스트릿댄스의 크럼프를 결합해서 만든 춤이다. 이번 무대에서 보인 이정동의 모습은 하나의 해프닝과 같았다. 변죽만 울리다 끝난 형상이다. 춤 자체가 남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춤 자체가 앞 선 출연자에 비해서 기량이 높지 않았다.

7. 최민우는 부족했다 

<로봇목중>이었다. 최민우가 은율탈춤의 전승자로서 목중춤 기예가 출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의 전통탈춤은 안정감이 있다. 로봇목중은 아니었다. 과연 이걸 로봇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휴식시간에 복도에서 연습하는 중고생의 모습이라고 하면 실례일까? 아니 요즘 중고생은 이보다 더 나을지 모른다. 

내 말이 심한가? 우리가 역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타 장르의 춤 전문가들이 한국춤 또는 전통춤이라고 추는 춤을 볼 때 우린 어떠했는가? 호흡도 안 되고, 장단도 모르고, 리듬도 못 타면서, 팔동작으로 한국춤 분위기만 적당히 내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개한 경험이 있을 거다. 

만약 로봇춤에 목숨을 건 사람이 있다고 치자. 스트릿댄스에 목숨을 건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들이 최민우의 춤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어설픈 게 하진 말아야 한다. 그건 그걸 계속해오면서 정진해 왔던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은율탈춤의 목중춤을 추고, 누군가 봉산탈춤의 취발이춤을 추었다고 치자. 전통 탈을 쓰고 말이다. 그러나 탈도 의상도 제대로인데, 춤이 부족하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탈춤은 이제 응원의 대상이 아니다 

탈춤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이젠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은 자세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대는 지났다. 탈춤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난 세기 탈춤에 몸 받쳤던 분들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탈꾼들은 더 긴장해야 한다. 인프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탈춤의 기량을 자랑하기 이전에, 자신이 보편적으로 ‘춤’이란 장르에서 얼마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고,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자기를 돌아보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추는사람’에 대한 평론하는 나의 한 줄 평은 이렇다. “공연의 콘셉트(concept)는 확실했으나, 관객의 어셉트(accept)에는 이르지 못했다” 

잘 만든 B급영화는 실제 어설프지 않다. A급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날 뿐이다. 영화 속에서 대개 어설픈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그걸 어설프게 풀어내지 않는다. 상상이 어설플 뿐이지, 구현은 어설프지 않다. B급영화는 A급영화가 주지 못하는 일탈의 희열을 만끽하게 해준다. 

‘추는사람’의 공연자 자체가 ‘일탈’을 키워드로 삼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탈춤에 대한 열린 상상”을 표방한 공연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곱 사람은 무대에서 저마다의 ‘열린 상상’을 제대로 설정했어야 했다. 어떤 탈꾼은 자신만의 ‘상상’에만 머무는 감아 있다. 무대에서 이를 치열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왜 그런 결과가 되었을까? 

사유로부터 출발하는 상상 

상상은 사유에서 나온다. 앞으로의 탈춤의 성장력은 사고력이자 사유력이다. 7명의 탈꾼의 기술적인 기량은 대동소이하다. 나와 같은 평자(評者)적 관객은 왜 김지훈, 박인선, 이주원, 장해솔에는 끌렸고, 다른 세 사람에겐 그렇지 못했을까? 다른 세 사람이 탈춤 자체를 못 추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전통탈춤을 기반으로 해서 ‘열린 상상’이란 이름으로 만든 결과물이 새로운 콘텐츠가 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반대로 말한다면, 앞의 네 사람은 ‘열린 상상’이 구체적인 에피소드(스토리텔링)로 존재했고, 왜 그렇게 공연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가 분명했기에 그렇다. 그러하기에 관객과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거다. 

허창렬은 생각이 많았다. 앵커이기에 그러했던가? 사설적 나열이 많았다. 그것이 탈춤과 연결되진 않았다. 그가 무대에서 구현한 탈춤은 우리가 이미 보고 또 본 춤이었다. 그걸 무대에서 실제 재미와 의미를 공존시키면서 승화시키지 못했다. 

허창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관객은 당신이 잘하는 것만을 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그 무언가에 선택과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세요.”  

이정동과 최민우는 한 줄의 메시지는 만들어 놓았으나, 딱 거기에 그쳤다. 거기서 크게 발을 떼지 못한 형국이다. 생각이 치열하지 못해서, 움직임의 설득력이 약하다. 두 사람에게 쓴소리를 하겠다. “당신들은 글을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짧은 겁니다. 당신들은 춤을 못 추는 것이 아니라, 상상이 부족한 겁니다. 하나의 작품을 옹골차게 만들기 위한 논리적 기반이 취약합니다.”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탈춤은 이제부터 ‘탈춤이란 이름으로’ 무대에서 특별히 보호를 받는 시기는 넘겼다는 말로 풀이하련다. 앞으로 탈꾼들은 더 긴장할 필요가 있다. 

7인의 탈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적군 같은 아군’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호평(好評)의 격려’가 아니라, ‘비판적 애정’이다. 앞으로 탈춤은 ‘춤’이라는 넓은 필드에 나와서, 더욱더 자유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탈춤의 강점은 더 빛난다. 탈춤의 한계 또는 탈꾼의 한계도 정확히 짚게 될 거다. 자신의 종목과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조금씩 메꾸어 갈 때, 탈춤의 성장과 함께 탈꾼으로서의 자신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진다. 그게 바로 당신에 의해서 개척되는 ‘탈춤의 미래’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