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리뷰

공연비평

기후변화 앞에서 너무도 연약한 우리는: 아크람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 오후의 예술공방 <오늘의 날씨>

올해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INC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정식 명칭은 기후변화에 관한 UN기본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되었고, 회의 참가국 178개국 중 154개국이 서명했다. 한국은 이듬해인 93년 12월 47번째로 협약에 가입했으며, 현재 전 세계 197개국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97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는 시행령에 해당하는 의정서(protocol)를 통해 선진국 38개국을 대상으로 90년도 배출량 대비 평균 5.2% 감축을 규정했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차 총회에서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파리협정이 체결되어 기후협정으로는 최초로 포괄적인 구속력이 적용되는 국제법으로서의 발효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처럼 30여 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기후위기 타개를 위한 각국의 노력들은 내내 실패의 연속이었다. 회원국들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놓고 있지만 인류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은 거의 줄지 않았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크람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photo by StudioAL

 


올해 파키스탄에서는 수개월에 걸친 기록적인 폭우와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3,300만 명이 피해를 입는 등 엄청난 규모의 기후재난이 발생했고, 나이지리아에서도 역대 최악의 홍수로 13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고, 20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됐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파키스탄이 1,700여 명, 나이지리아는 600명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환경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300여 명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실에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2017-2022)간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이 2천만 마리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기후위기로 인해 인간과 가축이 죽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기후위기 대응 허송세월 30년. 이제는 기후정의 위해 행동할 때’, 그린피스 블로그, 2022.11.5.).


인류학자들은 인간 활동에서 사냥과 수렵이 감소하기 시작한 1만 년 전부터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가 시작되었으며, 3천 년 전부터는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개간하고 작물과 가축이 인간에 의존하도록 재배하거나 사육하는 등 환경 파괴적인 농업과 목축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로부터 시작된 재해이기에 자연재해보다는 인재(人災)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 같은 기후위기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며, 또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인류가 맞이한 기후위기에 대해 성찰한 두 편의 공연이 올려졌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아크람칸 컴퍼니의 신작 <정글북: 또 다른 세계>(11.18.-19. LG아트센터 서울)과 오후의 예술공방이 1년간 기후변화를 관찰한 결과물을 전시공연으로 옮긴 <오늘의 날씨>(11.12.-13. 댄서스라운지)가 그것이다.



인간은 누구의 편이며,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 <정글북: 또 다른 세계>


<정글북: 또 다른 세계>는 아크람 칸이 무용수 은퇴 후 연출가로 처음 선보이는 작품으로, 그의 내한 무대는 2014년 <데쉬>가 마지막이다(2020년 칸은 은퇴작이었던 <제노스>로 내한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이 무산되었다).


 

아크람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photo by StudioAL

 

 

칸의 <정글북>은 러디어드 키플링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일곱 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원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인공 모글리가 등장하는 것은 ‘모글리의 형제들’, ‘카의 사냥’, ‘호랑이다! 호랑이!’의 세 편이다. 호랑이 시어 칸의 위협을 피해 살아남은 인간 아기 모글리는 늑대 부부 슬하에서 곰 발루와 흑표범 바기라에게 정글의 법칙을 배우며 성장해간다. 1894년 발표된 이 작품은 키플링에게 세계적 인기를 누리게 해준 대표작이 되었음은 물론 1907년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41세로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키플링의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채 상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로 제국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던 키플링의 원작 속에서 주인공 모글리는 백인은 아니지만 백인의 의무를 다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의 화신이었지만 칸의 무용극에서는 인류가 지구에 가져온 재앙의 결과물로 처음 등장한다. 무용극 <정글북>은 원작의 줄거리를 비슷하게 따라가되 모글리와 늑대 부부의 첫 만남은 기후위기로 인해 전 세계 모든 도시가 물에 잠긴 디스토피아적 미래, 가족을 잃고 기후난민이 된 모글리가 늑대 부부에게 구조되는 것으로 성사된다.


모글리가 원숭이 무리 반달로그에게 납치되는 원작의 에피소드에는 반달로그가 인간에게 붙잡혀 동물실험을 당했다는 설정이 덧붙여지며 정글의 약육강식이 아닌 인간의 죄과와 그에 대한 보복이라는 새로운 인과가 성립된다. 비단뱀 카는 반달로그에게 붙잡힌 모글리를 구하러 가기 전 인간에 의해 동물원 유리벽에 갇혀 있었던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칸이 만든 세계에서 동물들은 인간들의 그 모든 죄과에도 불구하고 인간 아기 모글리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또 다른 세계’에서 ‘고결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들인데, 이는 키플링이 지은 세계에 대한 패러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모글리가 최후까지 싸워야 하는 적은 호랑이 시어 칸이 아니라 동물들의 세계를 파괴하러 온 사냥꾼이다. 원작에서는 시어 칸을 죽이고 정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모글리가 훗날 인간들의 세계로 돌아가 사냥꾼이 되는 결말을 취하는 것과 달리 칸이 만든 ‘또 다른 세계’ 속 모글리는 동물들과 손을 잡고 사냥꾼을 물리쳐 동물들의 세계를 지켜낸다. ‘또 다른 세계’를 유지하는 힘은 정복이 아니라 공존인 것이다. 원작에서 남자아이였던 모글리가 여자로 성별이 바뀐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아크람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photo by StudioAL

 


열 명의 무용수들은 늑대, 원숭이, 곰, 뱀 등 동물 각각의 특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며 무대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와 대비되는 인간들은 모글리 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애니메이션 속에서 과장되거나 축소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애니메이션 속 인간 어른들은 왜 동물들과 함께해선 안 되냐는 아이들의 천진한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데쉬>에도 참여해 무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던 이스트컬처의 애니메이션은 <정글북>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무너지는 도시들과 그로 인한 동물들의 연쇄적인 이동, 모글리와 동물들의 교감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된다. 칸은 무대 위에 물리적인 세트를 설치하는 대신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애니메이션의 조합으로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 초대받은 손님들일 뿐이다”라는 칸의 메시지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당사국총회에 참가해 환경변화 대책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을 겨냥해 “당신들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쳐가고 있다”고 비판했던 연설과 겹쳐진다. 칸의 ‘또 다른 세계’에서 모글리의 여정은 기후위기로 황폐해진 세계를 물려받은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데, 기성세대라면 모글리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세계를 물려주고 있는지 깨닫고 그 ‘또 다른 세계’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모글리들이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공할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돌아오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들 - <오늘의 날씨>


무용수의 발은 천상을 향해 도약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천샘은 천상을 향하는 무용수의 발끝이 종국에는 지상에 닿고야 만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안무가다.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한 <슬픔 속으로>(2015), 혐오 폭력을 통해 시대를 감각해낸 <지표동물>(2016), 미투 운동을 통과하며 여성들이 다시 쓰기 시작한 현재를 조명한 <전사의 땅>(2020) 등은 모두 무용이, 나아가 예술이 현실과 어디서 어떻게 조우해야 하는지 질문한 작품들이다.


 

오후의 예술공방 <오늘의 날씨>

 


<오늘의 날씨>는 천샘이 2019년부터 <세상의 ‘배경’>이라는 타이틀로 진행하고 있는 리서치 공연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리서치 공연은 한국사회는 물론 전 세계, 전 지구적으로 그동안 세상의 ‘배경’으로만 여겨져 온 ‘여성’, ‘동물’, ‘지구’를 키워드로 그들에 관한 ‘움직임 보고서’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키워드 ‘지구’에서 출발한 <오늘의 날씨>는 2021년 입추부터 2022년 입추까지 1년간 절기를 관찰하며 이를 영상과 춤, 글로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전시공연이다. 천샘, 다니엘 아히폰, 최김지정, 김하람은 공연으로, 늘, 자청, 권이은정, 구구는 전시로 작업에 참여했다.


공연은 크게 4부로 나뉜다. 입추에서 상강까지 여섯 절기(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를 따라간 가을에서 시작된 공연은 곧 입동에서 대한까지의 여섯 절기(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를 묶은 겨울로 이어진다. 다시 입춘에서 곡우까지의 여섯 절기(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의 봄이 지나면 입하에서 대서까지의 여섯 절기(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를 거쳐 여름이 끝난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너무도 순식간이라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오후의 예술공방 <오늘의 날씨>

 


절기의 의미를 되짚으며 일상을 고요하게 관찰하는 것 같던 공연은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 되자 진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름에 기승을 부리며 사람을 괴롭히던 모기는 입동에도 사라지지 않고 쌀쌀해진 날씨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신체는 비염 등 계절성 알레르기로 몸살을 앓는다. ‘오늘의 날씨’는 보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다. 


전작 <전사의 땅>에서도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의 주제가를 차용해 유머코드로 사용했던 천샘은 이 공연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제 지르텍의 CM송을 삽입해 객석에 웃음을 유발시킨다. CM송에 맞춰 알레르기 비염으로 괴로워하는 김하람의 몸짓은 매우 친근하고 익살스럽게 다가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를 가진 인간의 무력함을 재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잠깐만. 겨울의 초입을 알리는 입동에도 모기가 죽지 않고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날씨를 초래한 것은 누구인가? 그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 변화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은 또 누구인가? 이러한 날씨의 변화는 대체 인간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오후의 예술공방 <오늘의 날씨>

 


달력에 표시된 절기를 따라가는 듯하던 공연이 마침내 도달하는 지점은 죽음이다. 천샘과 다니엘은 가족을 잃은 공통된 계절의 기억을 나눈다. 그들은 각각 언니와 어머니를 잃었던 겨울을 이야기하지만 그 상실을 경험한 겨울의 날씨는 그때와는 다르다. 살을 에던 상실의 추위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피부로는 느낄 수 없다. 매년 그날은 돌아오지만 그날의 추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추위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천샘과 다니엘의 상실 뒤로 몇 개의 상실이 더 겹쳐진다.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한 무수한 죽음들에 숫자를 더 얹을 뿐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너무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실이다. 그 상실이 김하람의 몸에도 새겨진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 흐린 하늘, 바닷가의 강한 모래바람…. 할머니를 잃은 그날 김하람의 몸에 남은 상실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까? 그리고 김하람과 최김지정이 나눈 상실의 몸짓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


일 년의 절기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공연은 어느덧 다시 입추로 돌아와 있다. 그러나 돌아온 절기는 예전의 그 절기가 아니다. 돌아오되 돌아오지 않는 그 어떤 것 사이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신체는 이 ‘돌아오지 않음’을 무엇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 천샘의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LG아트센터, 오후의 예술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