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짓은 얼마나 강렬하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주어진 상황과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에 대한 욕망과 갈망으로, 비바람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내면세계와 싸우며 사랑을 갈구하는 거친 춤으로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보름달>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3월 28~31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그녀의 <보름달>은 세계적 명성에 걸맞게 그녀의 탄츠테아터 개념의 속성을 극대화하면서 충만함으로 인지되는 보름달의 기운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독일의 세계적인 여성안무가인 피나 바우쉬는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카네이션>, <마주르카 포고>, <러프 컷>, <네페스: 숨> 등의 작품을 공연했고 각 국가와 도시 시리즈를 통해 여러 나라의 민족적 정서와 춤을 그려냈다. 특히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 컷>을 통해 우리에게 친근감과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선보인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7번째 작품이었고 <보름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2012년 빔 벤더스 감독의 3D 영화 ‘피나’를 통해 일부가 보여졌으나 영화 속의 감동과 실제 눈앞에서 펼쳐진 장관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큰 편차를 보였다. 특별히 인생이 가져다주는 황홀경과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그녀만의 해석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었다.
피나 바우쉬는 발레의 정형화된 혹은 형식화된 움직임뿐만 아니라 초창기 현대무용 특유의 움직임 어휘와 문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더불어 스토리텔링의 연결성을 배재하고 콜라주 기법과 기상천외한 무대장치,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표현성에 집중했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무용수라기보다는 배우이기도 하고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가진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신표현주의로 불리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들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분절적이면서도 흐름의 연속성이 눈길을 끄는데, <보름달>은 이런 부분들을 총체적으로 수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용수들은 페트병과 물컵을 들고 나와 춤추기도 하고 각자의 몸짓으로 기량을 과시하기도 한다. 줄거리가 없기에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내포하는 의미를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그녀 작품에 늘 등장하는, 긴 머리를 흩날리는 드레스 차림의 여자무용수들의 감성적 이미지와 남성무용수들의 역동적 움직임은 국적과 신장의 차이를 다 포용해 조화를 이뤘다. 특별히 1막, 만남과 이별을 연상시키는 과정에서 밀착하고 엇갈리며 서로를 떼어내는 모습은 바우쉬 작품의 전반적 테마인 인간들 사이의 소통을 잘 그려냈다. 2막 역시 검은 무대 위에 높게 솟아오른 듯 위치한 거대한 바위는 훌륭한 오브제였고 발밑에서 출렁이는 물 속,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그곳에서 같이 춤을 추는 듯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와중에 우리말로 내뱉는 텍스트와 간헐적인 노래는 오히려 난해함을 제공했으나 곳곳에 배치된 특유의 유머와 피지컬한 움직임,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과 자연을 소재로 한 무대장치는 토털시어터의 개념을 완성한 것이다.
물론 2시간 30분의 런타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생략한다면 더 밀도감 있게 보일 부분도 있었지만 강렬하게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자유를 표현하는 그들 앞에서 우리의 자유로움에 대한 욕망의 분출과 인간실존이라는 심오한 주제에 대한 사유는 그 느슨함을 커버하기에 충분했다. 피나 바우쉬의 초창기 작품이 지닌 어두움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연이 지닌 치유의 힘을 무대 위의 현실로 구현해낸 후반기 작품인 <보름달>은 밝고 부족함이 없으나 앞으로 또 다른 주기를 맞으며 변형을 맞을 보름달의 상징성까지도 공존시키고 있는 의미심장한 작품이었다. 다만 피나 바우쉬의 직접적인 숨결이 담겨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용수들의 신체 속에 각인된 추억을 감안하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글_ 장지원 (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