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제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발레리나 강수진이 준비한 첫 정기공연 작품 <라 바야데르>가 3월 13~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 화려하게 올려졌다. 국내에서 ‘다시 보고 싶은 발레’로 꼽힌 <라 바야데르>는 2013년 한 차례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에 두 번째 무대를 마련했는데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던 만큼 그 규모는 대단했다.
<라 바야데르>는 고전주의 발레 작품 중 하나로 18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볼쇼이 극장에서 프티파 안무, 밍쿠스 음악으로 제작된 전 4막의 발레였다. ‘라 바야데르’라는 뜻은 불어로 인도의 무희를 의미하는데 특별한 볼거리로서 이번 버전은 프티파가 아닌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버전이다. 국립발레단은 작년과 동일하게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화려한 무대와 120여 명에 달하는 무용수들, 수백 벌의 의상으로 스펙터클함을 과시했다. 작품은 젊은 전사 솔라르와 그를 사랑하는 무희 니키아, 니키아를 연모하는 최고 승려 브라민, 솔라르와 결혼을 약속한 공주 감자티 사이에 벌어지는 엇갈린 사랑이야기로,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네 커플이 캐스팅됐다. 김지영, 김리회, 박슬기, 이은원, 이동훈 정영재 이영철 김기완 신승원이 출연하며 날짜별로 다양한 니키아, 솔로르, 감자티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필자는 13일 김지영과 이동훈의 공연을 감상했다.
막이 열리면 1막은 이국적 취향을 반영한 인도풍의 배경막과 고행 수도승들의 원시적 이미지가 강렬하게 들어오고, 사냥터에서 돌아온 용맹스러운 전사 솔로르와 사원의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 승려 브라민의 삼각관계의 구도로 펼쳐졌다. 김지영과 이동훈의 서정적 듀엣이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면 이은원의 정확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솔로도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라쟈의 궁전에서 벌어지는 2막은 솔로르와 감자티의 만남과 솔로르의 배신으로 이어진다. 이 장의 하이라이트는 ‘앵무새 춤’, ‘황금신상의 춤’, ‘물동이 춤’, 전사들의 ‘북춤’ 등이 이뤄지는 디베르티스망과 파닥시옹이었다. 이후 이동훈의 솔로는 적절한 힘의 배분과 역동성이 강조되었다면 이은원은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춤이, 김지영은 간혹 보이는 흔들림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으나 뛰어난 표현력은 역시나 그 명성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작품의 백미는 누구라 할 것 없이 3막의 32인무 장면이었다. ‘망령들의 왕국’에서의 아름다움은 <백조의 호수> 의 호숫가 장면 혹은 <지젤>에서의 윌리들의 장면과 유사하면서도 좀 더 세련된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있는데, 유리 그리가로비치 스스로도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언급했을 정도다. 앞 장면들에 비해 훨씬 미니멀한 무대 배경이지만 흰 튜튜를 입은 32명의 발레리나들이 순차적으로 아라베스크 동작만을 반복하며 등장할 때 초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는 다른 <라 바야데르> 공연과 다르게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자 주인공의 애달픈 모습으로 결말을 맺으며 애잔한 여운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라 바야데르>는 뛰어난 테크닉의 과시나 극적인 서사가 부족하기에 실상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해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본 동양적 아름다움의 향연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안무가들의 새로운 해석과 주인공들의 표현력과 탄탄한 테크닉이 뒷받침되면서 작품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완성해낸다. 사실 이번 공연은 <라 바야데르>의 이국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측면과 강수진의 등장을 지켜보려는 측면도 공존했으나 마지막까지 강수진 단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순수하게 발레리나로서 활동하던 강수진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라는 막중한 위치에서 행정가로서의 모습도 겸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들을 품기도 하지만 우리는 본인의 명성을 알렸듯 국립발레단도 세계적 발레단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길 바라는 호의(好意)를 갖고 그녀에게 따듯한 시선과 격려로 그 행보를 지켜봐줘야 하지 않을까!
글_ 장지원 (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국립발레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