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는 관노가면극이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무언(無言) 가면극이다. 무언 가면극은 한계일 수 있다. 탈춤이 갖는 풍자성을 언어를 통해 시원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데 무언(無言) 가면극이 오히려 장점이 된 공연을 만났다! <단오지향(端午之香)>이 그랬다. 말 없는 가면극을 가져와서, 거기에 아름다운 상상력을 집어넣었다.
무언(無言) 가면극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즐거운 상상력으로 펼쳐낸 아름다운 판타지! <단오지향>이 한마디로 이러했다. 탈춤에 기반을 둔 작품 중에선 최초로 ‘능동적인 여성성’을 잘 부각했다. 가면극 계통의 작품에서 ‘여성성’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최초의 작품이다.
전통탈춤의 여성은 어떠한가? 처첩(妻妾) 중 하나다. 한 남자를 두고 처첩이 갈등하는 역할이다. <단오지향>의 소매각시는 아주 달랐다. 탈춤 속의 무언(無言)의 얌전한 소매각시가 아니라, 무한(無限)의 씩씩한 매력을 갖춘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소매각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다
‘소매각시’의 소매란 무엇일까? 성현의 ‘용재총화’와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소매(小梅)가 등장한다. ‘소매는 역시 옛 미인의 이름(小梅亦古之美女名)‘라 했다. 소매(小梅)는 작은 매화를 뜻하며, 소매(小妹)는 일반적으로 ‘어린 누이동생’을 가리킨다. 한자는 다르나, 두 의미는 상통한다.
또 하나의 ‘소매’가 있다. 바로 초란이를 말한다. 전통연희에 등장하는 까불까불하고 방정맞은 캐릭터이다. 한국의 속담에 ‘초란이 방정떨 듯’이란 말이 있다. 초란이와 같은 의미의 소매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단오지향>의 소매각시는 지금까지의 초란이에서 벗어나서, 작은 매화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무대에서 빛이 났다. 자신을 배신한 양반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캐릭터다.
조왕신과 소매각시, 신구여성의 바람직한 연대기
<단오지향>의 여러 캐릭터 중 가장 빛나는 존재는 조왕신이다. 민속학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고, 예술적인 의미에서도 그렇다. 조왕(竈王)은 ‘부엌의 왕’을 뜻한다. 한국의 가산(家神) 중에서 조왕신은 여성이다. 조왕할매라고 불리는 것처럼, 나이든 여성 곧 할머니이다. <단오지향>에서 가장 끌리는 장면은 조왕신(김매자)과 소매각시(박인선)가 만나는 장면이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단오지향>의 소매각시는 조왕신의 어린 모습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대가는 대가다! 김매자는 역시 대가다! 조왕신으로 분해서 무대에 등장했다. 이 순간부터 공연의 품격이 매우 높아지는 걸 느꼈다. 김매자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조왕신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이런 존재감은 그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소매각시는 조왕신을 스승 내지 멘토로 삼으면서, 점차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이는 전통탈춤과 매우 다른 지점이다.
전통연희에서 ‘늙은 여성’과 ‘젊은 여성’은 갈등의 두 축이다. 미얄할미(늙은 여성)와 소무(젊은 여성)로 대표된다. 소무와 소매는 같은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전통탈춤에서의 미얄할미(늙은 여성)는 영감을 뺏어간 소무(소매, 젊은 여성)을 때린다. 강릉관노가면극에 뿌리를 둔 <단오지향>에선 부엌의 신 조왕신은 오해를 통해서 고난에 빠져있는 소매각시에게 위로와 지혜를 준다.
<단오지향>을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구(舊)여성과 신(新)여성의 아름다운 결속’이다. 두 여성은 두 남성의 잘못된 질서를 바로 잡는다. 곧 구 남성 역신(송재윤)과 신 남성 양반(김영찬)의 바람직하지 못한 연대에 대항하면서, 세상을 아름다운 질서로 환원하는 미션을 슬기롭게 수행한다.
둘로 분리된 장자와 마리, 악(惡)에서 선(善)으로 돌아선 시시딱딱이
<단오지향>에선 장자(이상화)와 마리(이재현)는 판을 이끌어가는 2인의 재담꾼이다. 만약 이 작품이 계속 업그레이드 된다면, 장자와 마리도 약간의 캐릭터의 차별화도 생각해 볼 만한다. 장자는 ‘몰락한 장년’ 또는 ‘실속없는 양반’, 마리는 ‘건강한 청년’ 또는 ‘내실있는 머슴’으로 캐릭터를 살리는 거다. 이렇게 이분(二分)해서 본다면, 또 다른 측면의 재담적 재미가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단오지향>은 시각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하다. 탈춤을 모르고, 무용을 몰라도, 시각적인 매력 하나만으로 관객을 잡을 수 있다. 조명, 영상, 무대, 가면, 의상, 소품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시시딱딱이(김우진, 이정윤)는 가면부터 의상, 무대에서의 움직임까지 신선했다.
<단오지향>에서 시시딱딱이는 유일하게 성격이 바뀌는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역신의 들러리와 같은 존재였으나, 이후 사람들(관객)의 소원을 담은 신주를 먹고 소매각시 편이 된다. 전통탈춤에서 사자 캐릭터를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면, <단오지향>에선 시시딱딱이가 바로 사자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앞으로 시시딱딱이의 무대에서의 분량은 더 늘릴수록 좋다. 그렇게 될 때 ‘악에서 선으로 선회하게 되는’ 시시딱딱이가 더 확연하게 그려질 것이다.
OSMU(one source multi-use)의 가능성
<단오지향>은 비주얼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특히 무대 위에 등장하는 커다란 형태의 캐릭터가 그렇다. OSMU(one source multi-use)의 가능성을 미리 점치게 된다. 측신, 성주신, 터주신도 그러하지만, 특히 조왕신은 앞으로 유명 캐릭터로 크게 사랑을 받을 것이라 예감한다.
<단오지향>은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공연 전부터 무대에선 벌써 배우들의 움직임을 만날 수 있고, 그런 무대 위로 관객이 올라가서 각자의 소원지(素願地)를 커다란 술독 안에 집어넣는다. 관객들이 그저 공연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최지연 안무, 군무(群舞)가 살아있다!
<단오지향>은 군무(群舞)가 참 빛난다. 이 공연의 참여자는 각자 저마다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별성이 강한 참여자들이 <단오지향>처럼 ‘공동체적 요소’가 많은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군무 만큼은 대한민국 최정상의 직업무용단도 해내지 못한, 각자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의 조화가 돋보였다. 이 작품의 성공의 튼튼한 기반은 역시 안무 최지연에게 있지 않을까? 그가 이 작품의 ‘절반의 성공’의 주인공이며, 연출을 비롯한 여러 스텝이 ‘나머지 절반’을 채운 것으로 생각된다.
평론가에게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작품
여태까지 오랫동안 지역에서 만든 관광 브랜드와 연관된 작품들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들여지는 예산에 비해서 결과물이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프리뷰는 미사여구를 총동원해서 매우 성대한데, 리뷰를 쓰기조차 민망한 공연도 많았다. <단오지향>은 딱 반대였다. 작품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리뷰가 나올만한 공연이다. 앞으로 이 공연을 더욱 다듬는다면, 지역 브랜드가 아닌,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탈춤’을 매우 재밌게 풀어낸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을 했을까? <단오지향>을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작팀들이 작품을 잘 설계했고, 무대 위의 배우들이 이를 잘 구현했다. 이런 작품을 어찌 관객들이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화랭이의 전통성 x 신창렬의 동시대성
<단오지향>에는 5명의 화랭이(김진환, 박범태, 손정진, 전지환, 정연락)가 존재한다. 그들이 무대에 존재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 본공연 전, 객석을 통해서 등장한다. 공연의 앞과 중간에 제 역할을 다한다. 시작 부분에서의 전지환의 소리는 매우 건강하고 독특했다. 동해안 특유의 장단을 통해서,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살아있는 사운드는 신창렬이 만든 사운드와 만나 작품을 매우 입체감 있게 해준다.
<단오지향>의 작곡자 겸 음악감독인 신창렬은 강원도와 인연이 깊다.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참여했다. 창작국악그룹 그림에서 시작한 그는, 국악기를 통해서, 상상력을 통해서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북청사자놀음에 등장하는 퉁소가락을 잘 살려서 적당한 위치에서 새롭게 변형하면서 재현하고 있다.
‘부조화의 조화’라고 해야할까? <단오지향>의 음악적 사운드는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다. 이런 음악의 형태는 외국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곡이기에 그렇다.
이 작품은 이렇게 몇 번 공연하고 끝내기엔 너무도 아쉬운 작품이다. 역신은 앞으로 빌런 역할로 더욱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잘 살아있는 군무를 바탕으로 앞으로 캐릭터마다의 솔로춤을 보강하면서, 더없이 훌륭한 무용작품이 될 것이다.
<단오지향>은 관광 브랜드를 표방한 작품으로서, 한국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 무용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모두 그렇다. 몇 년 후 세계의 유명 극장에서 비싼 개런티를 받으면서 공연을 하기 위하여, 일단 강릉을 중심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계속 해야 한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주)인사이트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