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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한국 발레의 총제적 난국 여실히 드러낸 공연, 국립발레단 <교향곡 7번>, <봄의 제전>

 

 

 강수진 감독이 첫 항해부터 단원들에게 혹독한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일까? <교향곡 7번>과 <봄의 제전>(10월 18일, 예술의전당)은 상당한 기술을 요구하는 작품이고, 이에 대한 도전이 단원들을 한층 성숙시키기 위함이지만, 이번 공연은 단원들의 문제점을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안무, 무대와 의상까지 똑같이 재연했는데, 한국 무용수들의 신체적 결함들이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원작의 역동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함으로써 에너지의 한계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각자의 기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작품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극복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우베 숄츠(1958~2004)의 안무 <교향곡 7번>은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공연으로 고전도 아니고 모던 발레도 아니다. 동선이나 무대 그리고 의상은 현대적이지만 움직임은 정통 발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공연이었으나 2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작품의 형식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을 짚어본다면 음악을 배경 삼아 서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음악을 악기 대신 몸으로 연주하는 방식이다. 반복구가 나오면 동작도 반복되고, 단음일 때와 화성일 때 사람의 수를 달리해서 음의 겹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20세기 초반 청각의 시각화를 표방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칸딘스키. 이 공연은 그의 경구 ‘노란 소리’를 향한 부단한 실험들의 연장선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안무는 예술보다는 기술에 더 방점을 둔 것 같다. 장면들이 마치 리듬 체조 선수들의 매스게임처럼 구성되었고 의상도 단순하다 보니 신체적 결점뿐 아니라 조그마한 실수도 눈에 잘 들어왔다.


 글렌 테들리(1926~2007)의 <봄의 제전>은 예술과 기술이 팽팽하게 맞서며 작품성에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는 이교도의 원시제전이라는 원작의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대한 인류의 경외심을 관능적으로 보여준다. 청년 제물의 희생으로 봄의 생명과 희망이 거듭나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 원시적 신비성을 보편적 본능으로 현대화시키며 장르의 접합을 시도했다. 발레 작품이지만 현대무용에 가깝고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굵은 선의 움직임은 한국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선으로 극복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외연부터 적절한 그림이 나오기 어려웠다. 발레리노들의 움직임은 기대 이상이었는데 알렉산더 자이체프의 출연이 큰 몫을 했다.

 

 

 발레도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기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발레와 현대무용을 넘나들자면 아름다움과 힘을 모두 가진 발레리나의 양산이 절실하다. 강수진 감독이 던진 무리수는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명색이 국립발레단 공연인데, 안무가는 이미 작고한 유럽 사람들이고 트레이너도 음악도 모두 외국인, 강감독의 슈투트가르트 인맥이 옮겨온 상황이다. 한국의 인적 자원이 그토록 미약한지도 의문이다. 원작을 보존하겠다는 의도로 유럽 공연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장시간의 커튼콜은 한국 관객을 불편하게 했다.


 발레가 서양의 예술이긴 하지만 우리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무용수들에게 혹독한 훈련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체격 조건에 적합한 텍스트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그러한 시도들은 한국 고전을 공연하는 등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인의 체형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신체적 특성은 서구인들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발레리나의 기준은 작은 얼굴과 가늘고 긴 목, 고전 발레를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적합한 유형이 대세다. 내부에서는 세계화와 다양성을 대비한 변화의 움직임이 진작부터 있었겠지만 무대에 드러나는 변화는 근본적인 문제를 단계별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발레의 발전을 위해서는 장, 단기 계획을 동시에 가동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많은 문제점이 보였지만 단원들의 노고의 흔적을 역력히 볼 수 있었고 도전 그 자체가 큰 성과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한국의 발레 팬들에게 신작의 무대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기획이고 실천이었다.


 발레는 공연예술 중 전통을 가장 고수하고 있는 장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옛 궁정 예술의 경향을 보존이라도 하듯 한동안 높은 벽을 쌓고 있었다. 이제 한국 발레에 어떤 변화가 또 올지 궁금하다. 국립 발레단의 행보가 기대된다. 

 


글_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국립발레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