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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오율자 백남무용단 <영원과 하루(Eternity & A day)>




 한양대학교 생활무용예술학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오율자 백남무용단은 창작춤의 활성화를 이루던 1980년대 이후로 꾸준히 한국 창작무용을 선보여온 단체다. 매년 정기발표회를 통해 그간의 작업을 검증받았던 무용단은 이번에는 아날로그적 순수성을 담은 <영원과 하루(Eternity & A day)>라는 작품을 11월 23~2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급변하는 21세기 디지털 사회는 점차 아날로그적 감성을 상실하고 있는데, 안무자 오율자 교수는 순수하고 서정적인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 담백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강렬하고 스피디한 현대 창작춤의 경향에서 오히려 여백의 미를 담은 공연은 안정감과 느긋한 여유를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폴로스(Tgeo Angelopoulos)의 영화 <영원과 하루>와 작곡가 에레니 카렌드로우(Eleni Karaindrou)의 곡에 영감을 얻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인간 내면과 연결 지어 표현했다. 그리스와 한국의 유사한 민족성에 착안해 음악적 감성이 비슷한 에레니의 곡을 선정했는데 이점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기도 했다. 동서양, 서로 다른 두 예술의 만남이 무대 위에서 이뤄졌기에 한국전통무용에 클래식 음악이 가미돼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한 것은 장점으로, 그러나 작품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 점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작품의 재미를 주기 위해 재즈 바(Jazz Bar) 장면이 삽입되었고, 출연진 명단에 없던 오율자 교수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해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5장으로 구성된 가운데 막이 열리면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여성을 그리듯 한 여인이 등장해 무대 중앙 작은 단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때 하수에서는 두 여인이 느리면서 팔 사위가 주를 이루는 춤을 보여주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멜로디에 점차적으로 인원이 추가되며 한국적 정서를 담으면서도 여성미가 강조되는 고운 자태의 춤이 이어진다. 이후 음악이 바뀌면 남성 4인무 장면으로 연결되는데, 여성 4인무가 더해져 8인무로 조용하면서도 사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중반과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탐미적 성향은 계속적으로 유지되었고 한 여인의 영원과 하루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자기 탐색과 삶의 고찰로 귀착되었다. 미니멀하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과 춤사위의 조합은 한국전통무용과 전통음악 템포가 서양의 것보다 길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보충했고 비록 서양의 음악을 사용했을지라도 한국의 움직임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안무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로수 벤치에 위치하다가 감성적 춤을 추고 낙엽을 쓸어 모아 떨구는 오율자 교수의 모습과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낙엽시를 연상시켰고, 너무 조용하게 진행되어 클라이막스가 아쉬운 공연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창작춤의 다양한 경향 안에서 진지한 사색과 순정한 삶을 다루고자 했던 안무자의 의도는 심신의 긴장감을 풀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감정을 되새기도록 했다.

 

 

글_ 장지원 (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오율자 백남무용단 제공

 

*이 글은 월간 춤과 사람들의 평론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