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이란 사전 준비 없이 즉석에서 일어나는 흥취대로 창작하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음악·시·연설과 같은 이른바 뮤즈적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상례이다. 다시 말해 번뜩이는 영감을 담은 창조적 활동이다. 이러한 즉흥을 바탕으로 공연의 형태를 갖춘 행사가 어김없이 돌아왔다. 올해로 23주년을 맞은 2023 Simpro 서울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장광열)의 메인 공연 프로그램이 23일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28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열렸다.
이 축제는 매년 세계적인 즉흥 전문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활약하고 있는데, 매해 주제를 정해 그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커뮤니티 즉흥’으로 장애인, 즉흥 마니아, 서울시민, 관객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즉흥 공연 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됐다. 커뮤니티 댄스가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흐름에 잘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논문의 주제로 즉흥과 포스트모던댄스를 다룬 필자였기에 즉흥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번 축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주요 프로그램으로 ‘한불 국제협업 즉흥 프로젝트’를 시행한다는 점이다. 제주-서울-몽펠리에에서 차례로 공연되는데 한국과 프랑스 즉흥 아티스트들의 국제 협업 프로젝트를 통한 국제교류 활성화 및 네트워킹 확장을 위한 것이다. 한국 프랑스 일본의 즉흥 댄서와 뮤지션 등 12명이 참여하며 이들 12명의 즉흥 아티스트들이 라이브 연주를 곁들인 국제 협업 즉흥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필자가 본 공연은 23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이뤄진 개막공연이었다.
개막공연에서 유명 연주가와 무용수들로 구성된 출연자들은 다양한 유형의 즉흥 작업을 시도하는 즉흥 아티스트들로 협업 작업을 거쳐 그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그 타이틀은 ‘동서양 춤와 음악이 즉흥과 만나면(프랑스-한국-일본 국제 협업 즉흥공연)’이었다. 또한 앞으로 전문예술가들 뿐 아니라 청소년, 일반 성인들과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즉흥 워크숍과 공연도 지속적으로 마련, 즉흥을 통한 무용관객개발과 춤의 대중화에도 기여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보였다.
개막공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각국의 무용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춤추는가, 즉흥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본능에 충실하며 개념이나 사고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육체로 자신의 춤에 집중하는 모습이 진정성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 & 프랑스 & 일본 국제 협업 라이브 즉흥 공연으로 한국의 이름난 무용수들인 김원, 김윤정, 박호빈, 남영호, 보컬 김보라와 Emmanuel Grivet, Franck Delevallez, karl Paquemar, Laura Vilain, Nadia Larin, David Lavaysse, Tamura Ryo가 참여했다. 김보라의 구음과 즉흥연주로 비현실적인 공간을 구축한 연주자들의 역할도 무용수들의 즉흥작업에 크게 작용했는데, 재즈의 즉흥 잼처럼 서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구성하며 관객들은 이를 관람하는 재미가 컸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김원, 박호빈과 같은 한국의 무용수들과 해외에서 활동했기에 동서양의 감성을 경험한 남영호, 김윤정이 교량역할을 한 듯 하고, 프랑스와 일본의 무용수들은 각자의 개성을 담은 춤어휘를 펼쳤다. 이들 모두 다양한 즉흥작업을 진행해 온 무용수들로, 주로 접촉즉흥에 기반하며 서로의 신체를 탐구하고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이미지로 구현했다. 물론 개인적 차이를 감안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나라별로 특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몸에 각인된 고유한 감성과 내재된 몸짓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풀리듯 엮이고 다시금 공동체를 이루는 무용수들의 모습과 음악가들이 이질감 없이 즉흥적으로 시, 공간을 즐기는 상황상 성별, 연령, 국가, 피부색이나 기량의 차이는 의미가 없었다. 남산국악당 공간에서 자신들의 춤과 서로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무용수, 음악가들만이 있었다. 물론 즉흥공연이 장시간 지속되다보면 어떤 패턴이 생기고 그것이 때로는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관객이 공연자들과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각국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음악과 움직임으로 상호이해와 조화, 화합을 도모하는 축제의 성격이 오롯이 드러난 생동감 있는 공연이었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박상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