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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한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총 11개 단체의 공연으로 6월 9일부터 25일까지 3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초청공연으로는 오페라극장에 올려진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시작으로 광주시립발레단의 <돈키호테>가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며 축제의 개막과 폐막 무대를 장식했고, 기획공연으로는 낭만발레와 고전발레 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레의 역사를 훑는 갈라 공연 <발레 오디세이>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해설과 함께 올려졌다.
공모공연으로는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과 윤전일댄스이모션의 〈첫 번째 게임_Uno. Dos. Tres. Cuatro〉이 토월극장에서, 유회웅리버티홀의 <커튼콜>, NXXT FLOOR의 <그해 6월>,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의 〈COMBINATION 2.0〉, 유미크댄스의 〈Edge_New Dawn〉, 양영은비욘드발레의 <소나기>, 원혜인발레프로젝트의 〈Writer & Speaker II〉가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1년 만에 서울 관객들과 만나는 광주시립발레단의 전막 무대
광주시립발레단은 그동안 발레축제 외에는 서울 무용 무대와의 적극적인 교류가 없는 편이었다. 축제 초창기인 2011년과 12년(당시 명칭은 광주시립무용단) 창작발레 <명성황후>와 <성웅 이순신>을 각각 공연했고, 이후 2019년에는 <라 실피드>를, 2021년에는 <레이몬다>를 하이라이트 부분만 발췌해 무대에 올렸다. 이번 <돈키호테>는 광주시립발레단이 서울 관객들 앞에 11년 만에 선보이는 전막 발레이자 그동안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에 진력하던 단체가 클래식발레에서 거둔 성취의 정도를 확인하는 귀한 무대가 되었다.
이로써 올해 발레 무대에는 지난 4월에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에 이어 오는 10월 공연 예정인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까지, 발레 관객들에게는 프로덕션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광주시립발레단의 <돈키호테> 초연은 1990년으로, 국립발레단(1991년 초연)과 유니버설발레단(1997년 초연)에 비해 초연 시기는 일렀지만 단체의 레퍼토리로 안정화되진 못했다. 이는 국립발레단도 사정은 비슷하다. 볼쇼이극장 안무가 마리나 콘드라체바가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는 초연을 포함해 90년대에 세 차례 공연되었을 뿐 2000년대 들어서는 2006년이 되어서야 재공연될 수 있었고, 레퍼토리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2013년 문병남의 재안무 버전을 공연하면서부터다. 그마저도 2016년 이후에는 공연의 맥이 끊어졌다가 올해 단원인 송정빈의 재안무 버전을 올리며 레퍼토리화의 불씨를 되살렸다.
국내 무대에서 저작권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역사가 길지 않고, 클래식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며, 3막 7장으로 구성된 <돈키호테>는 공연의 규모도 크거니와 스페인 민속춤과 클래식 안무가 결합되어 무용수들이 소화해야 하는 안무의 난이도 역시 매우 높은 편이다.
광주시립발레단이 이번에 공연한 <돈키호테>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프로덕션 디렉터이자 발레마스터로 존 크랭코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관리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프 노보그로츠키가 재안무한 버전으로, 지난해 10월 광주 관객들 앞에 첫 선을 보인 뒤 올해 축제 무대에 초청되었다. 이틀간 3회차로 진행된 이번 공연에는 강은혜-보그단 M. 플로피뉴, 강민지-박관우, 조희원-이택영의 세 주역 커플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저마다 다른 주역들의 매력과 개성을 비교하며 공연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무대 세트를 줄이고 미디어아트를 강화해 다양한 배경을 선보이고, 군무가 줄어든 대신 주⸳조연의 매력을 부각시켜 개성 있는 무대가 되도록 했다. 신부나 배거(beggar), 가마슈네처럼 원 안무에는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이 버전만의 또 다른 특징이다.
주객이 전도된 발레, 조연이 된 돈키호테
발레 <돈키호테>는 전편과 후편을 합쳐 총 12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방대한 원작에서 2부의 ‘부자 카마초의 결혼식과 불쌍한 바실리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와 ‘카마초의 결혼식이 계속되며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다루어지다’에서 다뤄진 키트리(원작명 키테리아)와 바질(원작명 바실리오)의 결혼을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원작은 주인공 돈키호테가 종자인 산초 판자를 데리고 떠나는 편력기가 중심이 되는 버디물 형식을 띠고 있으며, 키트리와 바질의 이야기는 삽입된 여러 액자소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발레로 극화되며 주인공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주변으로 밀어내고 기둥 줄거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발레의 기본 골조라 할 ‘결혼각본’의 플롯에 걸맞은 스토리인 데다, 바질이 꾸민 자살 연극이 가져오는 반전 효과 또한 무대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비극 발레를 구상했다면 원작의 다른 에피소드인 도로테아의 이야기가 채택되었을지도 모른다. 도로테아의 이야기 속 루신다와 카르데니오, 돈 페르난도의 삼각관계는 ‘불쌍한 바질리오’의 이야기 속 삼각관계와 몹시도 닮은꼴이니까.
발레 <돈키호테>는 키트리와 바질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원작에서 가장 유명한 풍차 에피소드나 이상의 여인 둘시네아 같은, 정작 돈키호테와 관련된 이야기는 양념처럼 덧붙여지며 주객전도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객전도의 문제는 키트리와 둘시네아가 1인 2역으로 설정됨으로써 해결된다. 바르셀로나의 한 마을을 방문한 돈키호테는 여관집 딸 키트리가 자신이 연모하는 대상인 둘시네아와 똑같이 생긴 데 놀라며 춤을 청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할 위기에 처한 키트리의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설정은 2막의 하이라이트인 돈키호테의 꿈속 장면(Dream Scene)에서 키트리는 둘시네아가 되어 숲의 요정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키트리는 오데트와 오딜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발랄한 키트리와 기품 있는 둘시네아를 오가는, 나름의 연기 변신이 요구되는 어려운 역할이며, 3막 결혼식 그랑파드되에서 키트리가 보여주는 32회전 푸에테는 갈라 공연에서도 빠지는 법 없는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스페인 민속춤의 정취를 잠시 내려놓고 우아한 클래식으로 돌아가는 꿈속 장면에 등장하는 큐피트는 노인으로 설정되어 춤이 부여되지 않은 돈키호테와 아름다운 이상의 여인 둘시네아 사이의 심리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 없는 꽉 닫힌 커플엔딩
노보그로츠키 버전 <돈키호테>의 가장 큰 특징은 키트리와 둘시네아를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 안무에서는 키트리 역의 무용수가 둘시네아까지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기에 둘시네아는 키트리가 나오지 않는 돈키호테의 꿈속 장면에서만 등장한다. 하지만 노보그로츠키는 둘시네아를 돈키호테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의 여인으로 해석해 편력 기사의 여정을 공유하도록 한다.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의 등장과 함께 무대에 나타나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이 끝나고 돈키호테가 새로운 방랑길에 오를 때도 함께한다.
선녀의 날개옷 같은 드레스에 베일을 쓴 차림의 둘시네아가 부레부레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뛰고 돌며 생동감 넘치는 춤을 추는 다른 무용수들과 시각적으로 확연한 차별화를 이룬다. 꿈속 장면에서도 키트리가 둘시네아가 되어 춤을 추는 동안 이 베일을 쓴 둘시네아가 군무진 사이를 그림자처럼 지나가며 환상성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이처럼 둘시네아를 무용수의 신체성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늙은 남성의 성적 대상화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안무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라 하기는 어렵다. 둘시네아에게 주어진 발끝으로 걸어다니는 안무가 <백조의 호수>나 <지젤> 등과 같은 백색 발레 속 ‘인외 존재’를 연상시킨다 해도 이 점이 결말에서 보여주는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동반자적 관계까지 상쇄시켜주지는 않는다. 원 안무의 꿈속 장면에서 춤을 추는 둘시네아와 이를 관전하는 돈키호테의 관계가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큐피트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매우 거리감 있게 표현된다는 점 또한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는 반증이라 할 것이다.
원작에서 돈키호테는 기사가 아니라 기사도 문학에 심취하다 못해 자신이 기사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 시골 노인 알론소 키하노이며, 둘시네아 또한 그가 진짜로 연모하는 고귀한 여성이 아니라 기사라면 응당 갖춰야 하는 조건으로서의 귀부인으로, 실제로는 키하노의 이웃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이다. 키하노가 편력 기사 돈키호테가 되어 방랑길에 오른 것은 악당들에게 잡혀간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덧붙여지며, 이 여정에서 둘시네아는 마법에 걸려 못생겨진 시골아가씨로 몇 번 등장할 뿐 돈키호테가 꿈에서 그리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키하노가 기사명으로 지은 키호테(Quixote)라는 이름은 말을 탈 때 착용하는 허벅지 보호대 또는 말의 엉덩이 윗부분을 가리키는 단어 ‘quijote’에서 유래한 것으로, ‘quijote’는 남성의 정력을 의미하는 속어로도 사용된다. 둘시네아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다.
노보그로츠키는 이뿐 아니라 신부를 빼앗긴 가마슈(원작명 카마초)가 안쓰러웠는지, 그에게도 새로운 약혼녀를 만들어주며 해피엔딩의 결말을 선사한다. 주인공 키트리와 바질은 물론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가마슈와 가마슈네까지 짝짓기에 성공하며 누구도 커플 엔딩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심지어 단역인 선술집 주인조차 아내가 있다는 부부 설정이다). 이쯤 되면 ‘이성애주의’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판타지가 아닌지. 아무리 이 무대가 망상에 빠진 시골 노인 알론소 키하노의 판타지 속 모험담이라고 해도 말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대한민국발레축제 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