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향기란 어떤 것일까? 깊이와 넓이를 갖춘 춤을 통해 느껴지는 향기는 묵직하면서도 풍부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은 10월 12일부터 11월 17일까지 매주 목, 금요일 전통공연창작마루에서 ‘2023 광무대 전통상설공연’ 하반기 공연을 개최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12명의 중견 예술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상반기 공연 이후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전통무용부터 정가, 기악, 연희까지 순수 전통예술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필자는 10월 27일 공연을 관람했는데, 이 공연은 동대문의 옛 ‘광무대’ 터에 2020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개관한 ‘전통공연창작마루’ 내 소극장 ‘광무대’에서 펼쳐졌다. 1898년에 문을 연 광무대는 당대 명인·명창들의 공연을 볼 수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극장이었다. ‘광무대 전통상설공연’은 그 역사성과 예술성을 이어가는 상징적 무대라는 의도를 품었고, 이 장소에서 <김미선의 춤-삼무 비천도(三舞 飛天圖)>는 옹골차게 그려졌다. 김미선은 스승 김수악, 조갑녀, 장금도, 최선, 김경란의 가르침 아래 현재 자신의 춤 역사를 이어왔다.
첫 무대는 최선류 호남살풀이춤이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호남살풀이춤은 비감 어린 계면조의 호남류 이매방 살풀이와 달리 곧게 뻗은 대나무를 연상케 하는 직선적인 남성미가 돋보이는 춤이다. 그런 최선류 호남살풀이춤의 성격을 잘 살려 김미선은 교태미나 여성미를 강조하기보다는 강직함과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춤을 선보였다. 특히 살풀이장단에서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갈 때 손목에 수건을 휘감아 낚아채는 춤사위가 일품이며 공중에 날리는 살풀이 수건에 우아함과 간결함이 묻어있었다.
살풀이와 함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최선류 동초수건춤은 이사라와 김유진의 춤으로 이뤄졌다. 최선이 제작한 동초수건춤은 굿거리장단에 작은 수건을 들고 추며 간결하면서도 담백하고 넘치지 않는 화사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춤을 춘 두 사람은 차분하면서도 서로 위치와 높낮이를 조절해가며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갔다. 특히 여유 있는 태를 보이며 맵시 고운 춤을 선사했다.
김경란류 구음검무는 진주검무 예능 보유자인 김수악 명인의 구음에 진주검무 춤사위를 얹어 김경란이 독무로 만든 작품이다. 가장 춤사위의 다양함과 새로운 구성이 돋보여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 검무는 느린 듯 몰아치는 우아한 한삼사위, 화려하고 현란하며 절도 있는 칼 사위, 소박한듯하지만 독특하고 매혹적인 맨손사위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궁중정재의 형식미와 색채를 오롯이 담아냈다. 음악과의 섬세한 협업은 검무의 격과 가치를 드러내고 혼자 추는 검무가 기량을 돋보이게 하면서 더욱 절묘하며 아름다웠다.
춤의 중간에 분위기 전환과 춤꾼의 휴식을 위해 산조별곡이 삽입되었다. 추정현의 가야금과 윤호세의 장구가 어우러지는데, 장구의 굿 장단 위에 즉흥적인 가야금 연주가 만들어내는 현장성이 짙은 음악이다. 가야금의 깊이감과 초월적 기교가 장구의 삼도 굿 장단 위에서 빛을 발하면서 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별곡은 산조와는 결이 다르나 오히려 산조의 즉흥적 본질을 살려낸 음악이다. 재즈의 즉흥처럼 주고받는 악기와 인간과의 교감이 기분 좋은 무대였다.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김경란 作 승무였다. 한국춤을 대표하는 승무는 전통춤꾼이라면 필수라 할 만큼 많이 추어지지만 살풀이춤과 수건춤이 전국적으로 분포된 것에 비해 국가무형문화재 2종목, 시‧도문화재 3종목에 불과할 정도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김경란은 과거 당대 춤꾼들의 인기 종목이었던 자유춤 승무가 관객에게 각광을 받은 그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며 만들어진 작품이다. 복색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과거 기방의 복색에서 영감을 얻어 흰 장삼과 먹색 가사 그리고 은색 치마저고리의 무채색 배합이 감각적이었다. 고풍스러움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조화롭게 고안되었다. 장쾌한 장삼 뿌림과 권번 예맥의 한삼 놀음이 혼합된 듯한 섬세한 장삼놀음도 좋았지만 김미선이 치는 북의 가락과 리듬이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김미선의 <삼무 비천도(三舞 飛天圖)>는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씨줄과 날줄의 치열한 교차로 표현된 팸플릿의 내용들이 너무도 적절한 공연이었다. 과하지 않으면서 화려하고, 본인의 탄탄한 기본기와 섬세하고 풍성한 몸의 언어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개화기 전통예술을 지킨 광무대의 명성을 재현할 내공 있는 중견 예술인들의 무대였던 만큼 김미선은 한국의 미를 춤사위에 담아 무게감 있게 표현해내면서 세 가지 춤으로 하늘로 비상하는 그림을 완성해냈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