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SPAF / 사진 옥상훈
안무가 허성임의 신작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가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참가작으로 지난 10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50분 남짓의 길지 않은 과정 공유 공연으로 올려졌으나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나 무용수의 수행 측면에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공연은 여러 모로 전작 <넛크러셔>를 떠올리게 한다. 무용수 3인으로 구성된 것이나 여성 무용수들이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 격렬한 헤드뱅잉을 보여주는 무브먼트, 공연 후반부에 입는 반짝거리는 반바지 의상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넛크러셔>가 여성을 여성으로 인지하는 ‘기호’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신체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비슷한 요소들을 사용하면서도 신체가 미디어에 잠식되어 사라져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반대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공연이 시작되면 긴 금발 가발을 쓰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무용수(허성임, 마르타 파사코포울루, 이세준)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은 동명 웹툰 원작의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이 밤이 되면 인터넷방송에서 가발과 마스크를 쓴 ‘마스크걸’로 변신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서로 다른 자아상을 구현하는 모습과 겹쳐진다. 뮤지컬 <차미>나 <인사이드 미> 등에서도 이 같은 온라인 속 ‘또 다른 자아’와의 충돌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이 ‘또 다른 자아’는 2000년대 세이클럽이나 프리챌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실 그리 새롭다고는 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러나 SNS가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을 통한 관계 형성이 SNS 의존도를 더욱 가중시키면서 온라인으로 연결된 관계는 또 다른 고립을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의 플랫폼을 통해 숏폼 컨텐츠가 범람하면서 이 숏폼의 짧은 호흡이 일상을 재편하고 있다. 바야흐로 개인 미디어 속 편집된 일상이 진짜 일상을 압도하면서 ‘미디어적 인간’이 새로운 인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허성임은 미디어의 과잉을 통해 범람하는 정보들, 그 안에서 사고의 응축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신체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분절되고 반복되는 움직임은 서사를 쌓아가며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로 휘발되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는 어떠한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고 단절되어 끝내 흩어진다.
이렇듯 움직임이 휘발되고 흩어지는 것은 정보 혹은 의견이 일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현란하지만 이 현란한 움직임의 특징은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람하는 정보를 수신하기 바쁜 나머지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발신할 겨를이 없으며, 반대로 의견을 발신할 때에는 발신에 집중하느라 이 의견이 상대에게 제대로 수신되고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 이처럼 일방향으로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정보와 의견의 난사는 폭력과 닮아 있다.
공연이 후반부에 이르면 무용수들은 빨강, 연두, 검정의 ‘빤짝이’ 반바지를 입고 입술을 형광페인트로 칠한 채 등장한다. 이렇게 입술을 강조한 연출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최종적으로 신체는 사라지고 정보 혹은 의견을 발신하는 입만 남는다. 움직임으로 재현한 SNS의 이모지가 풍자하듯 입이 남아 있다고 해서 유의미한 정보나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아닌데, ‘인터넷 밈’이 대변하듯 응축된 사고는 자신의 언어를 창출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온라인에 유통되는 유형화된 몇 가지 밈적 표현에 의존하는 언어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SNS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점점 댓글 등으로 의견을 나누기보다는 게시물에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지를 클릭하는 반응이 대세가 되고 있는데, 이는 언어의 빈곤은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질적 저하를 낳게 된다.
앞서도 쓴 것처럼 허성임의 전작들이 신체를 회복하거나 신체에 대해 환기할 수 있는 질문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인데, ‘몸의 안무가’인 허성임이 공연시간 내내 혹사에 가깝게 움직인 신체를 지우고 입만 남겨두었다는 데에서 일말의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공연이 ‘과정 공유’로 올려졌다는 것으로, 그 남아 있는 입으로 다음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허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