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엘리자베스 기덕>이 지난 11월 2일부터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었다. 제목인 ‘엘리자베스 기덕’은 스코틀랜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00여 년 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한국의 문화와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내며 ‘기덕(奇德)’이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한 것에 착안했다. 지난해 초연작 <일무>의 호평으로 자신감이 더해진 것인지, 독특한 소재 선정과 공연 횟수의 증가가 눈에 띈다.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말 처음 한국을 방문한 키스는 같은 해 겨울 도쿄에서 서양화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전시했고, 1921년과 1934년에는 역시 서양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그린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관련된 그림은 80여 점에 달하며, 이 가운데 30점은 판화로도 만들었다. ‘기덕’은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디자인할 때 낙관으로 사용했다.
‘한국 춤으로 연결되는 100년 전 한국’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엘리자베스 기덕>은 키스의 작품 중에서 24점을 추려 1막 7장의 공연으로 재구성했다. 키스의 작품을 한 점 한 점 이어 붙이는 방식이라 특별한 기승전결이 없는 병렬식 구성이 지루할 만도 한데, 연출은 중간 중간 키스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삽입해 관객들이 한국을 여행 중인 키스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해 현장감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관객들 역시 키스의 그림이 걸려 있는 전시회장에 와 있는 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한국을 방문해 이국적인 문물을 감상하며 경이감에 빠져 있는 키스와 동기화된 채 동시성을 가지고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 ‘奇德’이라는 낙관이 보인다.
공연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키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듯하다.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던 이 푸른 눈의 이방인은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제작진은 키스의 그림 한 폭 한 폭을 무대로 공들여 옮겨놓는다. 훈장님 뒤를 따라 나온 아이들(관찰력이 뛰어났던 키스는 왜 훈장님이 가르치는 아이들 중 여자아이들은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 힘겨운 노동에 허리가 휘는 여성들, 장기를 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남성들… 무대 뒷벽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는 긴 두루마리에 키스의 그림들이 휙휙 지나가고 그림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무용수들이 생동감 넘치는 춤을 춘다.
그림과 그림을 연결하는 새로운 드라마
얼핏 보기엔 그림과 그림이 병렬적으로 연결된 것 같은 장면 전환에도 나름의 서사가 있다.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던 무대는 곧 결혼식의 신부 행차로, 다시 결혼식을 준비하는 잔치 한가운데의 신부를 보여주며 휙휙 바뀐다. 키스는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떠들썩한 잔치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는 모습을 처연하게 묘사하며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고 썼는데, 현실의 신랑은 별채에서 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노는 중이지만 공연에서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신랑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결혼식에 오지 못하는 것으로 새로운 서사를 얻었다.
엘리자베스 키스 作 <신부>
결혼식 장면은 독립운동가들이 사형을 언도받고 끌려가는 장면으로, 다시 무당이 이들을 위해 씻김굿을 올리는 장면으로 빠르게 전환되며 당대의 풍경과 역사를 조밀하게 엮는다. 무대 위에서 관찰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키스에게 춤의 분량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 대신 결혼식에서 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서글픈 독무와 이와 대구를 이루는 신랑의 비감(悲感) 어린 춤, 죽은 넋을 위로하는 무당의 춤 등이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수 있는 풍경의 연쇄에 깊은 드라마를 부여한다.
뒤이어 금강산의 위압적이고도 아름다운 산세에 감탄하는 키스와 연등놀이,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공연은 먼 풍경을 응시하는 키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로 프롤로그와 수미상관을 이루며 마무리된다. 영상과 춤의 어울림으로 무대에서 완성되는 키스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고 2차원의 그림을 3차원의 살아 움직이는 몸짓으로 구현해낸 무용수들의 수행도 빼어나다. 최근 몇 년간 레퍼토리 난조에 빠져 있는 듯 보이던 서울시무용단에 <일무>에 이어 기대되는 레퍼토리 작품이 하나 더 추가된 듯하다.
남은 질문 한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다. <엘리자베스 기덕>이라는 제목처럼 공연은 한국 풍경에 매료된 외국인 화가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회화 작품으로 남은 당대의 풍경을 무용 무대에서 재현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선의 주체가 ‘이방인’, 그것도 ‘유럽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은 혹시 그 정체성에 작품의 무게중심이 기우는가 하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제목이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무대에 올려질 일 없었을 이 공연은, 그렇다면 그의 시선을 경유해서 재현된 당대 풍경이라는 의의만을 가지는가?
국립발레단은 2007년 미하일 포킨이 한국 고전소설인 『춘향전』을 바탕으로 안무했다는 <사랑의 시련>을 복원해 올렸고 2014년에는 유럽 여러 극장에서 발레 레퍼토리로 인기를 끌었다는 <코레아의 신부>를 복원해 공연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원조 한류’나 ‘K발레의 원조’라며 제작 무산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엘리자베스 기덕>은 이와 달리 서울시무용단의 한국무용단체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컨템포러리 창작춤으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제작된 공연 작품이며 완성도에 있어서도 위 두 사례와의 비교는 맞지 않다. 다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그 시절 우리 풍경’이라는 콘셉트가 우리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기덕>이 단발성 공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용단의 장기 레퍼토리로 안착된다면 더욱 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서울시무용단
그림제공_ 송영달, 도서출판 책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