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란의 유이(有二)의 일탈(逸脫)
이애리의 무이(無二)의 경계(境界)
정명희의 불이(不二)의 이입(移入)
월간 <객석> 2023년 12월호는 ‘올해 주목받은 예술가 & 무대 선정’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춤비평가 장광열은 ‘전통춤 전용 공연장과 연계한 기획공연의 증가’를 올해 춤계의 바람직한 특징으로 보았다. 장광열 비평가는 이 글에서 여러 무대를 선정했는데, 가장 처음 거론한 게 ‘조선춤방’이었다. 전통춤의 맥 짚기(총 17개 프로그램) 작업이란 점에서 의미를 두었고, 특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에서 탈피한’ 무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춤의 지역성’을 통한 ‘춤의 지형도’ 그리기
2023년 최고의 춤기획이 ‘일이관지 조선춤방’이라고 생각하는 건, 대다수의 의견인 것 같다. 나는 ‘일이관지 조선춤방’을 “20세기에 시작해 21세기까지 이어진 '춤의 지역성'을 제대로 부각하면서, 대한민국 근현대를 이어온 ‘춤의 지형도’를 앞으로 확실히 그릴 수 있는 초석을 세운 성과‘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이관지 조선춤방’(이하 ‘조선춤방’)에 관한 두 번째 리뷰인 이 글에선, 첫째 주 무대를 중심으로 해서, ‘춤사범’에 초점을 맞추겠다. 이 무대에 오른 모든 춤사범의 역량은 모두 우수하다. 그런 것을 전제로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춤사범의 이상적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간 속에 담아둔 생각을 피력(披瀝)하려 한다.
‘일이관지 조선춤방’ 첫째 주(10.17.-19.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세 명의 춤꾼이 그러했다. 김수악춤방의 김경란, 심화영춤방의 이애리, 조갑녀춤방의 정명희가 내겐 춤사범을 주목하게 된다. 세 사람의 춤의 특성과 가치를 여기서 함께 풀어내보자.
일탈(逸脫)의 김경란
지난 수년간, 한국 전통춤계에서 ‘서울교방’을 중심으로 한 김경란의 기여와 김경란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무형문화재 중심의 춤 전승에서 벗어나고, 때론 억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사승(師承)관계에서 벗어나서. 춤꾼 각자가 갖는 개별적 존재감을 부각하는데, 김경란의 역할을 매우 컸다고 본다. 그 결과, ‘서울교방’을 비롯해서 많은 춤꾼을 보면 지난 시대와 다르게 ‘동인(同人)적 상보(相補)의식’와 ‘도반(道伴)적 상생(相生)의식’이 널리 퍼져있음을 확인한다.
김경란의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춤만 춰 온 춤꾼’에게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일탈감이 있다. 춤의 원칙은 있되, 결코 반칙을 하지 않으면서, 볼 때마다 관객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역량에 탄복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걸 좀 다르게 해석하고자 한다.
김경란 안에 공옥진 있다?!
김경란의 춤은 ‘정격(正格)과 탈격(脫格) 사이’에 존재한다. 처음에는 관객들에게 정통적인 법칙을 알려주다가, 후반에는 관객들에게 이탈심리를 심어주는 느낌이다. 나는, 김경란의 춤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옥진이 보인다. 이번 조선춤방에서도 그랬다. 그는 김수악에 충실하다가 후반에 가서는 관객들을 즐겁게 하겠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는지, 내가 알고 있는 김수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옥진이 들어와 앉았다. 이렇게 바뀌니 청중은 무척이나 좋아하면 박수를 쳤다.
때론 무녀(舞女)와 무녀(巫女) 사이를 ‘트랜스’할 줄 알고, 김수악을 추다가 어느 순간 공옥진이 될 수 있는 건, 이 춤꾼의 특장(特長)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조선춤방 이름을 내걸고 ‘김수악춤방’의 춤사범으로 등장한 무대였기에, 나는 이게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김경란은 결코 그 안에 공옥진을 설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다중성’이 충만한 춤꾼에게, 차라리 이제 공옥진춤을 감경란 스타일로 무대화시켜 달라고 권하고 싶다. 20세기의 공옥진 춤은, 춤의 제목이나 춤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21세기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공옥진 춤의 에센스 또는 엑기스라고 할 특징적 요소를 가져와서, 이를 바탕으로 김경란류를 만든다면 그건 매우 공감할 수 있는 춤이 될 수 있다. 단지 어떤 사람의 모습의 재연이나 어떤 동물의 흉내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휴머니즘을 전제로 한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 줄 거다. ‘공옥진제(制) 김경란 류(流)’라 할까?
사실 서울교방의 주요 레퍼토리를 보면, 거기서도 김경란류를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전 세대의 명무의 춤에 감동의 폭이 적거나 무대춤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김경란이란 춤꾼의 ’필터링‘을 거치면, 과거 춤꾼의 에센스 또는 엑기스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게 매우 세련되거나 정감이 있는 춤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김경란의 춤은, 유이(有二)의 일탈(逸脫)이다
거기에는 두 개의 다른 인물이 존재하고, 그것은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서로 벗어나기도 한다. 그의 춤에는 둘이 있는데, 이번 진주교방굿거리춤에 한정한다면, 김수악과 공옥진이다. 김경란의 춤에는 골계(滑稽, 익살)이 내재돼 있다.
경계(境界)의 이애리
심화영 춤방의 춤사범 이애리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이자 (사)중고제판소리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중고제 가무악단 ‘심’ 단장이기도 하다. 그가 판소리로 말하면 중고제(中高制), 시조로 따지면 내포제(內浦制)의 예술적 전통을 올곧게 잘 계승하고 있음을 전제로, 다음 글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조선팔도의 정서가 다름을 얘기할 때,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다. 이애리 또한 그렇다. 여기에 이애리는 경중미인(鏡中美人)같은 느낌이 합쳐져 있다. 그의 춤은 실제를 보는 것은 분명하지만, 거울 속의 미인처럼 뭔가 경계가 느껴진다. 경중미인은 서울 및 경기지방의 특징이다. 이애리에게서는 이렇듯 충청도적 정서와 경기도적 정서가 공존한다.
그런데 이건 이애리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심화영이나 이애리를 포함한, 이 대단한 집안의 계보가 그러하다. 경성부 청진동 120번지. 백 년 전 심정순의 주소다. 판소리의 심정순, 가야금산조의 심상건, 가야금병창의 심매향(대동권번 소속)이 일찍이 서울(경성)으로 진출을 해서 활동했다. 그들은 자신의 지역성을 잘 보유하고 있지만, 모두 그 시대에 도시인(경성사람)의 예술적 취향에 부응하는 활동을 일찍부터 시작한 셈이다.
이애리의 춤을 어떻게 평할 수 있을까? 흔히 중고제의 특징을 ’유식하고 점잖고‘, 여기에 더해서 ‘투박하고 고졸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애리의 춤에 한정한다면, 전자인 ‘유식하고 점잖고’는 딱 부합한다. 이애리의 승무는 고제(古制)의 격조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투박하고 고졸한’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이 충청도 혹은 중고제 혹은 이애리의 승무를 말한다고는 볼 수 없다.
이애리의 승무는 심상건의 가야금산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심상건의 가야금산조를 가리켜서 역시 앞과 같은 수식언을 부치기도 하지만, 이건 심상건의 가야금산조의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는 건 아니다. 심상건이 타는 가야금산조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능청스럽다’가 딱 맞다. 시원스러운 강세가 느껴지는 우조(羽調)도 아니고, 애잔하게 다가오는 계면조(界面調)가 특징이 아니다. 우조도 아니고 계면조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듯한 가락을 가지고 ‘죄었다 풀었다’ 하는 게 심상건의 특징이다. ‘기분이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듯’하게 만드는 게, 심상건이고 이애리란 생각이 든다. 감정을 의도적으로 절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생내적으로 감추려는 게, 심상건과 이애리의 모습이다.
남성에게는 ‘능청스러움’이란 말을 적용할 수 있지만, 여성 또는 이애리에게는 합당치 않는 말이다. 이애리의 승무는 ‘살가움’과는 정반대로 얘기하는 건 어떨까? 감정과 체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모호(模糊)한 기분과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다가가지 못하게 하거나, 다가오지 않게 하는’ 매력이다. 이런 면에서 이애리의 승무는 경중미인(鏡中美人)적 승무라는 게 가장 부합할 것 같다.
이애리의 승무에서, 장우성의 승무도를 보다
이애리의 춤을 보면서, 장우성의 승무도(僧舞圖)가 떠올랐다. 이당 김은호와 월전 장우성은 사제관계. 월전은 충북 청주 출생으로 경기도 여주에서 성장하다 서울로 진출해 김은호 문하에서 수학했다. 둘 다 승무를 그렸다. 이당의 승무 속 주인공은 관객에게 눈길을 주고 있지만, 월전의 승무도는 속 주인공은 관객의 눈길을 외면한다.
이당의 그림은 ‘승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월전은 ‘승무도’라고 하는 편이 맞다. 그림이다. 이당의 승무가 춤꾼의 움직임이라면, 월전의 승무도는 춤꾼의 자세라고나 할까? 이당의 승무가 한영숙을 떠올리게 한다면, 월전의 승무는 이애리와 닮았다. 나는 그간 월전의 승무도와 가장 비슷한 승무를 추는 인물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이애리라는 생각을 이번 조선춤방을 보면서 굳히게 된다.
이애리의 춤은, 무이(無二)의 경계(境界)이다
그의 춤에는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있다. 그건 충청도와 경기도일수 있고, 심화영과 이애리이기도 하다. 이애리는 마치 거울 속의 심화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둘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둘로 경계를 지운다는 것이 때론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그의 춤에는 ‘하나’가 아닌 분리된 ‘둘’이 있다는 점이다. 이애리의 춤에서는 관조(觀照)가 보인다.
이애리의 승무에는 ‘승무의 보편성’과 ‘심화영 승무의 특수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명희의 민살풀이춤은 어떤가? ‘살풀이의 보편성’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이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또한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좋고 그렇지 않고가 아닌, 오직 차이성을 얘기하고 있음을 확실히 해두려 한다.
정명희의 춤은, 불이(不二)의 이입(移入)이다
그의 춤을 둘로 나눌 수 없다. 조갑녀와 정명희는, 춤을 출 때 하나가 된다. 조갑녀의 춤에 정명희가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정명희가 춤을 출 때 조갑녀가 그의 몸 안으로 찾아드는 것일까? 정말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 조갑녀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적인 이입(移入)이 곧 정명희의 춤이다. 따라서 이 둘을 결코 나눌 수 없어 보인다.
이 리뷰에는 정명희의 춤에 관한 세세한 평은 생략하려 한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공연을 볼 때는 ‘평자(評者)의 모드’가 되는데, 오랜만에 정명희의 춤을 보면서 ‘관객의 모드’가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내가 일찍이 공연관람을 좋아해서 많은 공연을 봤다지만, 조갑녀–정명희 계보의 춤에는 아직 그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아서 그렇다.
앞의 세 명의 춤사범은 각기 스타일이 다르고, 선호하는 층위도 다르다. 춤을 추는 상황에 따라서, 춤을 보는 관객에 따라서, 각자의 선호도가 꽤 다를 수 있겠다. 그러함에도 내가 이렇게 특별히 세 사람을 특별히 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대한민국 춤계 사람들에게 다음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서 그렇다.
모양 形 vs. 모습 態
조선춤방의 춤사범의 춤을 보면서, 나는 ‘모양’과 ‘모습’의 차이를 확연하게 가를 수 있었다. 모양과 모습은 확실히 다르다. 모양(模樣)은 한자어다.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를 말한다. 모양은 그러기에 꾸밀 수 있다. ‘모양’은 의존명사의 형태로도 쓰인다. ‘그런 모양인가 보다’ 또는 ‘왜 저 모양인가’라는 쓰임새에서 알 수 있듯, 짐작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이 경우, 모양은 원래와는 조금 벗어난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습은 어떤가? 본질적인 생김새가 모습이다. 자연이나 사물의 겉으로 나타난 것을 뜻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자취나 흔적’까지를 아우른다. 모양은 ‘내다’란 말이 가능한 것처럼, 뭔가 치장이 가능하지만, 모습은 치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모습은 가변적이다. 당사자와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모양’과 ‘모습’을 보다 확연하게 구분하고자 한다면, 형태(形態)라는 한자어를 통해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形은 ‘모양 형’이요, 態는 ‘모습 태’이다.
형태(形態)를 한 단어로 취급하지만, 한자어를 통해 사고하면 그렇지 않다. 형과 태는 어떻게 다른가? 앞서 말했듯, 형은 모양이고, 태는 모습이다. 형태(形態)의 형(形)의 부수는 彡(터럭삼)이다. 형태의 태(態)의 부수는 心(마음 심)이다. 彡자는 ‘터럭’이다.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난 긴 털이다. ‘모양’은 보이는 것이다. 형(形)이기에 그렇다.
모습은 꼭 보이는 것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모습’을 뜻하는 태(態)에는 마음 심(心)이 존재한다. 전통춤을 이어간다는 건, 형(形)을 이어가기보다 태(態)를 이어간다는 게 맞다. 춘앵전과 연관된 용어 중에 화전태(花前態)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춤은 형(形)에 근본을 두지만, 궁극적으로 ‘형(形)을 넘어선 태(態)’를 지향해야 한다.
모양은 관찰(觀察)에서, 모습은 성찰(省察)에서
조선춤방은 기획 면에서는 매우 훌륭하다. 반면 공연 면에서는 때론 섭섭했다. 작고(作故)한 춤사범에서 현존(現存)의 춤사범으로 이어진 춤의 전달 과정을 떠올려 볼 때 그랬다. ‘형(形)의 충족’과 ‘태(態)의 부족’, 그 틈새가 내겐 보였다.
이건 조선춤방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공연에선 안타까운 모습이 더 많았다. 그런 춤꾼을 탓할 수만은 없다. 스승의 ‘이름’을 내걸고 겉으로 ‘모양’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그를 탓할 순 없겠다. 스승의 ‘정신’과 그 춤에 내재한 ‘모습’을 객석에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춤꾼 본인은 정작 모를 거다. 오직 수련과 단련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런 춤꾼은 어떤 측면에선 매우 안타까워 연민이 생기게도 된다. 이런 춤꾼은 어떻게 자기 극복이 가능할까?
전(前) 세대의 춤사범, 곧 명무의 춤을 재현하려고 할 땐, 늘 자기 물음과 자기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양과 모습을 구분하는 판단기준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매우 분명한 게 있다. 모양은 관찰(觀察)에서 나오고, 모습은 성찰(省察)에서 나온다. 모양은 보고 또 보면, 해보고 또 해보면서 가능할 수 있다. 성찰은 그렇지 않다.
관(觀)이 ‘보는 것’이라면, 성(省)은 ‘살피는 것’이다. 성(省)이란 한자는 少(적을 소)와 目(눈 목)의 결합이다. 관찰은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라면, 성찰은 눈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다. 춤사범의 이상적 모습은 ‘관찰을 뛰어넘은 성찰’이다. 말을 바꾸면 ‘모양을 넘어서서 모습을 찾아내는 과정’이 춤의 학습이다. 스승의 춤을 ‘성찰의 자세’로 출 줄 알아야, 그 춤의 맥을 잇는 것이고, 자신도 훗날 명실상부한 흘륭한 춤사범이 되지 않을까.
김경란, 이애리, 조갑녀의 춤에는, 그 안에서 생각하는 자세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다를지라도, 모두 세 사람에게는 김수악, 심화영, 조갑녀의 ‘자취와 흔적’이 존재했다. 그 춤을 대하는 풀어내는 자세가 무척 고귀했다. ‘관찰을 뛰어넘은 성찰’의 깊이가 객석에 전달되었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