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던 발레 <카르멘 조곡(Кармен-сюита; Carmen Suite)>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2015년 11월, 마야 플리세츠카야(Майя Плисецкая)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서였다. 안타깝게도 플리세츠카야는 그 해 5월에 세상을 떠났고, 그 축하공연은 그녀를 기리며 떠나보내는 고별공연 <아베 마야(Ave Maya)>로 꾸며졌다. 후배 발레리나들이 생전에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추었던 춤을 추며 그를 기리는 헌정 갈라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당시에 카르멘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Светлана Захарова)였다. 그리고 지난 2023년 11월 11일, 자하로바의 <카르멘>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1967년 4월 20일 초연된 <카르멘 조곡>은 당시에 전설적 프리마 발레리나로 불렸던 마야 플리세츠카야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쿠바국립발레단(Ballet Nacional de Cuba)이 소련에 공연을 왔을 때 안무가 알베르토 알론소(Alberto Alonso)에게 마야가 특별히 의뢰하여 만든 작품이다. 음악은 플리세츠카야의 남편인 로디온 셰드린(Родион Щедрин; Rodion Shchedrin)이 맡아,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곡을 편집하고 타악기 구성을 늘려 편곡하였다. 오페라 길이의 음악에서 엑기스만을 뽑아 50분 길이의 춤곡을 만들었다. 시놉시스 역시 잔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오로지 카르멘을 중심으로 컴팩트하게 재구성했다.
<카르멘 조곡>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했던 당대의 여느 러시아 발레 작품과도 달랐다. 구체적인 시공간적 배경을 최대한 배제하였고, 스토리를 드러내는 사실적인 묘사는 일체 없었다. 보리스 메세레르(Борис Мессерер)가 디자인한 미니멀한 무대 셋트와 의상은 알론소의 안무 연출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투우장의 황소가 프린트된 붉은 막, 그와 대비되는 의자 몇 개가 놓인 무대는 그 자체로 원형 투우장이었다. 2단으로 구성된 그 심플한 무대 아래 위에서 모든 사건과 춤이 이루어졌다. 군중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군무진을 제외하고는 카르멘과 돈 호세, 그의 상관인 주니가와 투우사인 에스까미오, 카르멘의 운명을 상징하는 투우장의 소 등 다섯 역할만이 등장했다. 돈 호세가 약혼녀가 있는지, 카르멘이 어떤 운명의 카드를 뽑았는지, 에스까미오는 어떤 사람인지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카르멘과 그녀에게 빠져 눈이 멀어버린 돈 호세 간의 순정적 열정, 그럼에도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는 카르멘과 에스까미오 사이의 치정(癡情), 그들의 에로틱한 관계성과 갈등이 상징적으로 펼쳐졌다. 작품의 지배적 색깔인 붉은색과 검정색은 카르멘의 정열과 파국적 운명을 나타내는 심플한 상징색이었다. 원작에서 카르멘이 뽑았던 ‘죽음’이라는 운명의 카드를 의미하는 듯 ‘운명’은 음습하게 등장하여 무대의 분위기를 지배하였는데, 결국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운명’은 투우장의 황소가 되어 에스까미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카르멘의 죽음을 시사하였다. 돈 호세에게 싫증을 느낀 ‘자유로운 영혼’ 카르멘 역시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카르멘의 비극적 숙명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원톱 캐릭터는 카르멘이다. 카르멘은 모든 시대적 배경과 구체성을 배제하고서 순수한 정열과 에로티시즘의 상징으로서 작품에 구현되었다. 그만큼 독보적인 히로인이었기에 처음부터 유일한 카르멘이었던 마야 플리세츠카야의 은퇴 이후에 이 작품은 공연이 중단되었다. 이후 2005년, 플리세츠카야의 주도 하에 자하로바를 필두로 하여 새로운 <카르멘 조곡>이 리바이벌되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자하로바의 카르멘은 플리세츠카야의 그것과는 다른 그녀만의 페르소나가 투영되어 있다. 플리세츠카야의 카르멘이 아무리 춤을 춰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힘 있는 움직임과 유일무이한 아우라로 무대를 사로잡았다면, 자하로바의 카르멘은 큰 키와 빼어난 피지컬, 과하다 싶을 정도의 유연함으로 카르멘의 요염한 매력과 관능미를 뿜어냈다. 어떠한 연기를 더하지 않아도, 팔을 돌리고 다리를 크로스로 꼬고, 발바닥을 쓸어 차고 180도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모든 움직임 자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인간미를 초월하여 초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모든 발레리나들이 자신만의 카르멘을 창조해내겠지만 자하로바의 카르멘은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카리스마가 있다. 정열적 퇴폐미를 내뿜으며 사랑하고 좌절하는 인간적 매력(魅力)보다는 마치 남자들의 한 수 위에 선 듯 그들을 조종하고 홀려버리는 마력(魔力)이 있다. 누구든지 그 마성(魔性)에 한번 갇히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적 매력으로 모두를 압도했다. 그 파멸적 끌림은 결국 상대방을 넘어 자신의 운명마저도 빼앗아버리지만 멈추지 못하는 어떤 것이었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에로티시즘 때문일까. 이 작품은 1967년 초연 이후, 당시 소련의 문화부장관에 의해 제재를 받고 사장될 위기에 처했었다. 문화부장관은 비제의 오페라를 모욕했다는 혹평을 하며 작품을 금지했다. 작품이 모더니즘적 경향을 띠고 과도하게 성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지어 허벅지가 드러나는 의상마저 제재를 당했다. (이듬해 만들어진 <스파르타쿠스> 역시 여성들이 허벅지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었는데, 그 작품은 사상적으로 훌륭하기에 허용이 되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일화도 있다.) 그 해 캐나다에서 열렸던 ‘엑스포67’에서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예정돼있던 <카르멘> 공연은 다른 클래식 작품으로 대체되었다. 다행히도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알아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소련 정부를 설득하여 1968년 이후 다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 순회공연을 하는 등 소련의 안팎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되었다.
<카르멘 조곡>은 20세기 중반의 소련에서 만들어졌고 공연되었을 것이라고 믿기 힘을 정도로 모던하고 세련된 작품이다. 2023년의 시선으로 보아도 시대에 뒤처짐이 없고 설득력이 있다. 이 작품의 탄생에는 고전 발레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던 마야 플리세츠카야의 공이 크다. 더군다나 소련과 러시아의 창작 감성과는 결이 다른 서사 방식이어서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플리세츠카야와 자하로바를 잇는 카르멘의 계보가 끊김 없이 계속 그려지기를 바란다.
글_ 이희나(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