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문화포럼(박명숙)이 선정한 안무가시리즈가 다섯 번째를 맞았다. 두리문화센터에서 소규모로 개최되던 지난 네 차례 행사와 달리 아르코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고 몸집을 키웠다. 최상철, 김승일, 김순정, 김형남, 조성희, 박해준 등 현대무용과 발레, 한국무용분야에서 선정된 9명의 중진무용가 들이 사흘 동안 무대를 꾸몄다. 초연작품인 김순정의 <10개의 막대를 위한 구성>과 신작으로 분류할 수 있는 김형남의 <나노 아티/NANO, 소녀 꿈을 꾸다>가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발레리나 김순정은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예원여중과 서울예고를 졸업한 후 서울사대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다. 발레는 물론이고 무용전공조차 없는 대학이지만 4학년 재학 때 그녀는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받았고 졸업 후 바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영국 라반센터에서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전임교수로 재직한 대학만도 청주대와 동덕여대를 포함해서 네 곳이나 된다. 동덕여대 재직 중 정통러시아발레를 배우고 싶은 욕심에 선뜻 사표를 던지고 러시아로 떠났다. 모스크바에서의 3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서울사이버대교수를 거쳐 성신여대 발레교수로 임용되었다. 실력이라면 실력, 운이라면 운이 뛰어나게 좋은 무용가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의 꽃, 오늘>(2008), <신비>(2012) 등 그녀의 안무작 몇 개를 보았지만 오히려 내가 김순정에 주목한 것은 2013년 공연된 현대무용작품인
안무가시리즈 공연(6.6~8, 아르코대극장) 마지막 날 보여준 신작 <10개의 막대를 위한 구성>은 두 파트로 구성된 20분 작품이다. 첫 10분은 김순정과 김석중의 듀엣이다. 기다란 두 개의 장대를 맞잡고 그들은 다양한 무브먼트를 창조해낸다. 온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살색 타이즈를 입은 김순정의 몸매는 자신감에 충만해있다. 탄탄한 근육질의 현대무용가 김석중과 조화를 이루며 보여주는 발레동작과 현대춤의 자연스러운 융합이 신선하다. 장대의 양쪽 끝을 놓치지 않고 평행을 이루거나 서로 교차시키는 동작이 계속될 때 장대는 몸의 자유를 위한 버팀목인 동시에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균형추로서의 역할도 한다. 두 번째 파트는 10명의 무용수들이 각각 하나씩의 장대를 들고 추는 군무였다. 검정색 수영복차림인 그들에게 장대는 키보다도 길고 무겁다. 이 장대를 양 손으로 잡고 무예동작을 훈련하는 듯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무대중심을 누빈다. 김순정에게 발레와 현대춤의 구별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재학생들로 구성된 무용수들은 아직 어리지만 정형적인 발레의 틀에서 벗어나 융합예술을 위한 자유로운 의식을 획득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형남의 <나노 아티/NANO, 소녀 꿈을 꾸다>는 춤추는 몸에 관한 의학적 리포트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다. 수술대 위에 소녀의 몸이 뉘어진다. 의사들이 그 몸을 대상으로 의학적 실험을 계속한다. 염기체가 분석되고 동작을 만들어내는 근육들이 선별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뒤 벽면 스크린에 표시된다. 내장기관, 혈관, 뼈 등 인체의 조직구조는 현대의 복잡한 도시구조와 닮은꼴이다. 인체의 신비스러움을 찾아내는데 나노기술이 응용된다. 나노는 10억분의1을 가리키는 과학용어다. 초미세기술을 사용하여 소녀의 몸이 분석되고 춤의 DNA가 추출되는 것이다. 춤추는 몸으로 새롭게 탄생한 소녀가 춤꾼으로서의 훈련과정을 거쳐 군무진에 섞여들면 살아난 그녀의 춤 DNA는 군무진의 중심에서 춤을 이끈다. 중견 안무가로서 김형남의 관심이 전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2008)>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과학세계로 확장되고 춤의 소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짜임새 있는 연극적 구성을 통해 관객전달력을 확보하고 35분의 공연시간을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끌어가는 안무의 저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무용문화포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