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끄는 윤상은의 공연이 1월 11-13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있었다. '두산아트랩'은 공연·미술 분야의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2010년부터 진행되었으니 15년의 역사를 지녔다. 그럼에도 무용계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신인들의 실험무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산아트랩 공연’은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로 발표 장소, 무대기술, 부대장비, 연습실 및 제작비를 지원하며 매년 정기 공모를 통해 서류 심사 및 개별 인터뷰로 선정한다. 여기에 선정된 윤상은은 드라마터그 손예운, 7명의 무용수들(김혜인, 신민, 이가경, 이민진, 임다운, 지혜경, 최윤희)과 함께 공연했고. 작곡과 연주는 한정원이 맡았다. 무료공연이라는 점도 많은 관객들을 오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윤상은은 발레 전공자로 다양한 연령, 평범한 신체에서 비롯된 '모든 몸을 위한 발레'에 주목해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을 완성했다. 그녀는 '발레를 즉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발레를 환상 동화가 아닌 현실의 몸을 직시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한다. 다소 삐딱한 시선에서 출발한 이 공연은 주제 면에서 명백하다. 유럽에서 발생한 클래식 발레의 기법은 외국무용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춤기본이다. 발레의 화려함과 인간의 한계를 넘는 듯한 고도의 테크닉은 매력적이지만 서구 문화의 맹목적인 선망과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발레 훈련, 특정 이미지로 대상화되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발레를 전공한 윤상은의 큰 벽이었을 것이다.
발레 작품 <코펠리아>는 19세기 클래식 발레 걸작 중 희극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괴짜 과학자 코펠리우스가 만든 인형 코펠리아를 마을 사람들이 실제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주인공과 인형 코펠리아가 등장하는데 이는 이중적 장치로, 어쩌면 윤상은은 코펠리아에 등장하는 인형과 발레리나를 동일시했을지 모른다. 과학자의 말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발레의 기법에 맞춰 움직이는 발레리나들을 이야기한건 아닐까? 그리고 정형화된 테크닉 메소드(바가노바, 체케티, RAD)를 통해 동일하게 배출되는 무용수들과 이들에게서 현대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일반 발레에 이르기까지 정통성을 강조하는 클래식에 대한 도전으로 ‘비(非)-코펠리아 선언’을 호기롭게 펼친다.
그녀는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이 발레 워크숍 <모든 몸을 위한 발레>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발레라는 점에서 어떤 '다른 발레'를 발견할 수 있을지 탐구하며 워크숍 퍼포먼스 형식을 통해 발레를 무비판적인 감상의 차원으로 두지 않고, 스스로 역동하는 발레를 목적으로 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용수들은 피아노 선율에 맞춰 발레 용어에 맞는 움직임과 발레와 가장 먼 형용사를 연결해 춤을 펼치기도 했다. ‘게으른 파세’, ‘움츠러드는 프로미나드’, ‘털난 앙호’, ‘짜증내는 피루엣’, ‘난폭한 아라베스크’ 등 단어가 주는 어감과 무용수들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통해 관객들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또한 저출생, 로봇에 의한 인명 사고, 테슬라 주식 매수 등 현재의 이슈들도 다루면서 현실을 반영한다.
이밖에도 <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야의 죽음 장면에 나오는 동일 동작들을 개개의 무용수들이 선보이기도 하고 군무로 보여주기도 했다. <목신의 오후>에서는 해당 작품의 특징을 대표하는 몸짓도 담았다. 춤을 춘 무용수들은 전공자들과 윤상은의 워크숍 때 참여했던 비전공자들 중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용수를 섭외해 무대에 올렸다. 색다른 모집방식과 구성이 그리고 다양한 외형을 가진 무용수들을 기반으로 워크숍에서 이뤄진 결과물들을 공연의 형식으로 만든 워크숍솝 퍼포먼스 혹은 일종의 커뮤니티댄스 형태의 공연이라 하겠다. 과정을 거듭하며 완성형으로 가는 윤상은의 공연에서 기존의 발레를 예상한 관객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왜 메타발레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윤상은은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기존의 관습을 탈피해 프로시니엄 무대나 발레리나의 전형적인 외모, 고도의 기교를 과시하는 발레리나가 아닌 평범한 신체가 소극장 무대에서 보여주는 현존의 춤이 관객에게 주는 교감과 공감은 순수했다. 그녀는 발레는 귀족들의 예술로 출발해 화려한 무대에서 스펙터클함을 전제로 한다면 오늘날의 발레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떤 신체도 구애받지 않으며 즐기는 예술형태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도 가능하다. 우리는 꼭 클래식 발레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어차피 모든 예술은 실험과 변형을 거듭하며 발전하지만 고전의 향기는 간직한 채 공존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정반합(正反合)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