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허성임의 신작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Where is the Rabbit?)〉가 3월 1일과 2일 양일간 올려졌다. 허성임은 2022년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으로 〈사라지는 모든 것은 극적이다〉를, 202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으로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를,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용 부문 선정작으로 신작을 선보이며 신작 창작에 진력하고 있다.
어둡고 단절된 세계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라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에서 이상한 나라로 주인공을 안내하는 토끼에서 모티브를 따왔음을 짐작케 한다. 토끼를 따라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여러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존재들을 만나며 세계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허성임은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인물들을 설정하고 토끼에게 이들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부여해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과 충돌을 그려내고 있다. 언어유희가 가져다주는 경쾌한 리듬감으로 가득 차 있는 캐럴의 세계와 달리 몸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구성된 허성임의 세계는 보다 묵직하고 둔중한 디스토피아로, 그의 작품 가운데 〈님프(Nymf)〉 이후 가장 어두운 세계를 묘사하고 있으며, <님프>에서 볼 수 있었던 블랙 유머마저 거세된 매우 그로테스크한 세계다.
공연은 무용수 한 명이 나와서 무대 앞쪽에 설치된 조명을 하나씩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등장한 토끼는 박스를 뒤집어쓴 기괴한 모습이다. 그러나 토끼가 입고 있는 박스를 보고 놀라기엔 이르다. 하지혜, 서동솔, 조현도, 허성임 등 네 명의 무용수들이 엉덩이를 객석을 향해 치켜든 채 네 발로 기어 등장한다. 반짝이는 은색 의상을 입고 게처럼 옆걸음으로 걷는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현실 세계의 인간은 아니다. 무대 상부의 배턴 역시 은색 포장지로 감싸여 있어 이곳이 이세계임을 짐작케 한다.
토끼를 따라온 인간인 그레이스 엘런 바키의 모습도 현실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그는 반짝이는 검은색 미니 원피스에 검은색 멜론모를 쓰고 있다. 서로 다른 세계의 존재들인 네 무용수들과 바키는 서로에게 다가가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다. 무용수들은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옆걸음으로 기어 사라지고 바키는 무대 뒤쪽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단절되어 있다.
토끼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작품에는 허성임이 전작들에서 즐겨 사용해 온 요소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반짝이 의상은 물론 소품인 동시에 움직임 요소로도 사용되는 긴 머리카락과 이를 이용한 헤드뱅잉, 관객을 등진 모습으로 하체를 강조하는 반복적인 무브먼트, 무용수들이 몸과 몸을 겹쳐 만들어내는 거대한 덩어리 등은 〈넛크러셔〉나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극적이다〉에서도 작품을 전개해가는 주요 요소들로 사용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들 외에 그림자와 목소리라는 요소가 더 추가된다. 도입부에서 조명을 켜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공연 내내 밝지 않은 조도를 유지하다 중반 이후가 되면 켜져 있는 조명을 하나씩 꺼 어둠 속으로 진입한다. 어두워진 무대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움직이는 무용수들이 아니라 그 신체의 움직임을 비추는 무대 뒤 커다란 그림자다. 당연하게도 그림자는 조명을 비추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달라지는 기괴한 것이며,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낯설다는 감각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허성임의 토끼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우리 자신의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단지 낯선 무언가를 봤을 때만 느끼는 감각은 아니기에 최종적으로는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어두운 욕망이나 감추고 싶어 하는 무언가,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내면에 도달하게 된다.
허성임이 목소리를 사용한 방식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공연 중반 이후 바키는 어둠 속에서 처연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후반에 이르면 무대 위에 허물어지듯 쓰러지고 그 노래 또한 차츰 잦아들어 들을 수 없게 된다. 앨리스와 달리 그는 토끼굴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명이 다한 것일까. 아니면 이 죽음은 공연에서 보여준 단절된 세계 혹은 세계의 단절이 종말을 맞았다는 은유일까. 그렇다면 이 세계는 결말에 이르러 부위별로 조각나고 흩어져 움직이는 몸뚱이의 죽음을 선언한 〈넛크러셔〉의 세계와도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작인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를 보고 나서 나는 리뷰에 “‘몸의 안무가’인 허성임이 공연시간 내내 혹사에 가깝게 움직인 신체를 지우고 입만 남겨두었다는 데에서 일말의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라고 평하며 “그 남아 있는 입으로 다음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 기다림의 응답은 전작에서 보여준 인간 사이의 단절에서 세계의 단절이라는 좀 더 거대한 섬뜩함으로 돌아왔는데, 이번 리뷰는 이 디스토피아의 노래가 다음 무대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라고 쓰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확장하는 창작자야말로 관객들을 늘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토끼일 테니까 말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허프로젝트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A strange and dark adventure following a rabbit: Her Project 〈Where Did the Rabbit Go?〉
Choreographer Heo Seong-im's new work, “Where is the Rabbit?” was uploaded on March 1 and 2. Heo Seong-im performed 〈Everything That Disappears Is Dramatic〉 as a special performance of the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 in 2022, 〈Tomorrow is Now and Today is Yesterday〉 as a participation in the 2023 Seoul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Festival, and this year as a performing arts creative center of the Korea Arts Council. We are working hard to create new works, presenting new works as selected in the New Dance category of the year.
A dark and disconnected world
The title ‘Where Did the Rabbit Go?’ suggests that the motif was taken from the rabbit that guides the main character to Wonderland in Lewis Carroll’s novel. Just as Alice, who follows the rabbit, rediscovers the world while meeting many strange people and strange beings in Wonderland, Seong-Im Heo sets up characters in different time and spaces and gives the rabbit the role of a medium to connect them, leading to the meeting of different worlds. It depicts a conflict. Unlike Carol's world, which is filled with the cheerful rhythm brought about by word play, Heo Seong-im's world, composed of repetitive movements of the body, is a more heavy and dull dystopia, depicting the darkest world among his works since 〈Nymf〉. It is a very grotesque world in which even the black humor seen in
The performance begins with one dancer coming out and lighting the lights installed in front of the stage one by one. The rabbit that appeared next had a bizarre appearance covered in a box. However, it is too early to be surprised by the box the rabbit is wearing. Four dancers, including Ha Ji-hye, Seo Dong-sol, Jo Hyun-do, and Heo Seong-im, appear crawling on all fours with their buttocks raised toward the audience. No matter how you look at them, these people wearing shiny silver costumes and walking sideways like crabs are not humans in the real world. The baton at the top of the stage is also wrapped in silver wrapping paper, suggesting that this is a different world.
The appearance of Grace Ellen Barkey, the human who followed the rabbit, is not like a human being commonly encountered in reality. She is wearing a shiny black mini dress and a black melon hat. The four dancers and Baki, who are beings from different worlds, do not approach or talk to each other. The dancers disappear sideways just as they appeared, leaving Baki standing at the back of the stage and just watching them. Although they are in the same space, they are disconnected from each other.
Where the rabbit took us
The work contains many elements that Heo Seong-im has enjoyed using in his previous works. 〈Nutcrusher 〉, 〈Tomorrow is Now and Today is Yesterday〉, and 〈Everything That Disappears is Dramatic〉 were also used as major elements in developing the work.
In this work, additional elements such as shadows and voices are added. It started by turning on the lights at the beginning, but the illumination level was kept low throughout the performance, and after the middle, the lights were turned off one by one, entering darkness. What catches the audience's attention on a darkened stage is not the moving dancers, but the large shadow behind the stage that reflects the movements of their bodies. Naturally, the shadow is a bizarre thing whose size and shape changes depending on the distance and angle at which it is illuminated, and the audience looking at it feels fear beyond the sense of unfamiliarity. Where Heo Seong-im's rabbit takes us is to our own fears. This fear is not just a feeling we feel when we see something unfamiliar, so it ultimately reaches deep within ourselves, such as a dark desire that cannot be brought out or something that we want to hide.
The way Heo Seong-im uses his voice is even more meaningful. After the middle of the performance, Baki begins to sing in a sad voice in the dark, but by the end, he collapses on the stage and the song gradually fades and becomes unlistenable. Unlike Alice, he was unable to return from the rabbit hole and did his life end there? Or is this death a metaphor for the end of the disconnected world or the disconnection of the world shown in the performance? If so, this world can be seen as connected to the world of 〈Nutcrusher 〉 in which the death of the moving body is announced by being broken into pieces and scattered by parts at the end.
After watching the previous work, 〈Tomorrow is Now and Today is Yesterday〉 I wrote in my review, “The fact that Heo Seong-im, the ‘body choreographer’, erased the body that was moving almost to the point of overuse throughout the performance and left only the mouth behind makes me feel a bit of eerieness.” He commented, “We will have to wait and see what kind of story he will tell on the next stage with his remaining mouth.” The response to this wait has come back from the disconnection between humans shown in the previous work to a larger and more frightening feeling of disconnection between the world, and I will end this review by writing that I think we will have to wait and see how this dystopian song will continue on the next stage. A creator who destroys and expands a world is the rabbit who always takes the audience to a new world.
Written by Danwoo Yun (Dance columnist)
Photo provided by Her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