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세실풍류〉가 잘 끝났다. ‘법고창신–근현대춤 백년의 여정’이라는 부제와 함께, 근현대춤 100년의 역사를 8회차의 공연으로 정리했다. 신무용(2회), 한국창작춤(4회), 컨템포러리 한국춤(2회)이란 용어를 통해서, 각 시대마다의 춤의 특징과 대표적 인물을 만나게 한 훌륭한 기획이었다.
신무용은 2회차 공연으로, 신무용의 개척자 3인 배구자 최승희 조택원의 춤(2024.4.4.)을 시작으로, 송범(1926-2007), 김진걸(1926-2008), 김백봉(1927-2023), 최현(1929-2002), 최희선(1929-2010), 황무봉(1930-1995) 등 신무용 2세대의 춤(4.9)까지 두루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컨템포러리 한국춤을 먼저 얘기하자면 2회차에 걸친 공연으로, 한국춤과 현대춤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에서 한국춤의 기본기를 장착한 후 동시대성의 작품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젊은 춤꾼의 무대였다. 여성춤꾼(4.25.)과 남성춤꾼(4.30.)으로 나누어 무대에 올랐다.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한국창작춤’
내 주된 관심사는 4회에 걸친 한국창작춤이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창작춤의 등장’(4.11.)에선 김매자(1943년생), 배정혜(1944년생), 문일지(1945년생), 국수호(1948년생)의 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춤의 역사에서 변곡점을 만들어낸 4인의 춤의 매력과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매자의 춤은 최지연과 김성의, 배정혜의 춤은 이고운과 김세령이 무대에 올랐는데, 두 명의 대가의 춤이 어떻게 현재에 잘 이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일지의 명작 〈멀리있는 무덤〉은 오랜만에 계현순의 춤으로 볼 수 있었고, 국수호의 명작 〈비천〉은 이윤경의 춤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윤경의 완성도 높은 춤은 감동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이후: 한국창작춤 2’는 그간 대학을 중심으로 무용교육을 펼친 인물이 중심이 되었다. 정은혜, 태혜신, 백현순, 이애현, 윤덕경, 남수정이 한국창작춤을 위해서 그간 교육기관을 통해서 했던 역할을 회고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춤이란 것은 결국 날마다 지속해서 수련을 계속해야 무대에서 최상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평범한 진리임을 일깨워준 자리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창작춤 3’은 그간 공공단체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의 무대였다. 손인영, 박시종, 김수현, 윤명화, 홍경희, 윤성주의 춤은 각각 하나의 레퍼토리로서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춤꾼은 역시 무대의 경험에 따라서 표출하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편 개인의 예술적 만족도가 높을지언정, 그것이 곧 관객과의 소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2000년대 이후: 한국창작춤 4’(4.23.)를 집중 조명하겠다. 6명의 남성 춤꾼이 무대에 올랐다. 김평호, 김용철, 황재섭, 이정윤, 안덕기, 조재혁은 연배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2000년대 이후 한국 창작춤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김평호의 현장성, 김용철의 소통성, 황재섭의 존재성
6인 중에서 연배가 있는 김평호, 김용철, 황재섭은 춤의 성장배경이 각각 다르다. 김평호는 농악을 기반으로, 김용철은 발레를 기반으로 출발했고, 황재섭은 경희대에서 한국춤을 익혔다.
세 사람은 모두 한국춤의 본질적인 면을 일찍이 깨우쳤고 직업무용수로서 발판을 굳혔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시립단체의 예술감독으로서 역할을 잘 해냈거나 해내고 있는 인물이다. 세 사람의 그간의 예술적 성과를 각각 논해보자.
한국민속촌 농악단 출신의 김평호의 춤에서는 흙내음, 땀내음, 살내음이 배어있는 토착(土着)적인 사위가 돋보였었다. 김평호 춤을 포크로어 댄스(folklore dance)라 부르겠다.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적 시각에 기본을 둔 현장성(現場性, ambiance)이 강조된다.
김용철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춤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관객들은 그런 아이디어에 끌려서 춤을 보게 된다. 둘째는 관객과의 소통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대개 김용철은 춤의 후반부에서 객석에 시선을 둔다. 아이 콘택트(eye contact)가 확실하다. 김용철의 안무작이나 출연작에선 거의 모두 큰 박수를 받는다. 김용철 춤은 커뮤니케이션 댄스(communication dance)이다.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적 시각에 기본을 둔 소통성(疏通性, accessibility)이 강조된다.
황재섭은 고전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해서 진지하게 작품을 풀어낸다는 게 장점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연옥 등 서양의 고전은 물론, 한국문학의 문제작에 속하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김훈의 『현의 노래』 등 문제작을 황재섭 스타일의 안무로 풀어내고자 하는 열정과 성과를 인정한다. 황재섭춤을 드라마터크 댄스(dramatug dance)라 부르겠다. 미학(美學, aesthetics)적 시각에 기본을 둔 존재성(存在性, existence)이 강조된다.
세 사람의 이번 작품은 과거의 이와 같은 특성이 있으면서도, 다소 변이(變異)된 느낌이다.
족장이 된 김평호, 민속적 외침
김평호의 작품은 〈정글-봉우리〉였다. 그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김평호 스타일의 컨템포리리(Contemporary)를 지향한 듯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비주얼은 매우 다를지라도, 이번 〈정글-봉우리〉도 포크로어 댄스(folklore dance)다.
그의 춤 배경은 늘 한국의 농촌과 같은 토속성이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아프리카의 밀림과 같은 인상을 준다. 과거의 농촌이 공동체적인 기반의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지향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이와는 상반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고 해도 좋을까. 그건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춤판의 실제를 반영한 것인지 모른다.
그 안에서 그가 바라본 것은 ‘봉우리’였다. 김민기의 ‘봉우리’를 아주 잘 가져오고 있다. 그 봉우리가 아주 높은 봉우리가 아니고, 그저 고갯마루 정도일지라도, 자신이 설정한 봉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왔던 ‘김평호라는 사람의 이면’이 느껴졌다. 김평호가 어설프고 엉뚱하지만, 매우 인간적인 아프리카 어느 종족의 부족장(a tribal chief) 같은 인상을 받았다.
박수가 된 김용철, 무속적 희열
김용철의 작품은 〈붉디 붉은〉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김용철류 살풀이’라고 부르고 싶다. 결국 기다란 흰 천이 몇 개의 의미로 변주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용철은 이번 작품에선 마치 토속적인 박수무당(a possessed shaman)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가 사용한 음악은 한국의 전형적인 민속적 시나위이다. 그런데 국악기만이 아니라, 서양악기가 합쳐진 형태다. 김덕수를 중심으로 해서 볼푸강 푸시닉이 이끄는 재즈그룹 레드선이 만들어낸 음악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매우 에그조틱(exotic)하면서도 재지(jazzy)하게 들리게 했다. 김용철은 이런 음악적인 질감(質感)을 바탕으로 양감(量感)이 느껴지는 춤을 창조해 내갔다.
김용철을 보면서, 제주심방 안사인을 떠올린 사람은 어쩌면 나 혼자일지 모른다. 실제 음악도 다르고, 실제 모습도 다르지만, 김용철이라는 춤꾼의 캐릭터에서 제주칠머리당굿으로 유명했던 안사인(安仕仁, 1928-1990)이 떠올랐다. 무인(舞人)이건 무인(巫人)이건, 안사인을 보다 더 파고들었으면 좋겠는데, 김용철에게서 그런 가능성이 보인다.
이렇듯 훌륭한 김용철이나, 내게 불만이 없을 순 없다. 워낙 아이디어가 많아서일까? 하나의 분위기를 좀 더 파고들었으면 더 좋겠는데, 김용철은 다시 급히 다음 단계로 춤을 변형시키고 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재미의 점증(漸增)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의 반감(半減)이 된다는 걸 의식해주길 바란다.
김용철의 시작에선 늘 거장(巨匠)적 추구(追求)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작품이 막바지를 향해 치달을수록 장인(匠人)적 욕구(慾求)가 노출되는 느낌이다. 수를 들켜버린다고나 할까. 춤의 엔딩은 감동이어야 하는데, 춤의 엔딩이 부연 설명하듯 사족처럼 끝나기도 한다.
고사가 된 황재섭, 탈속적 구도
황재섭의 작품은 〈금시(琴詩)〉였다. 먼저 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단 확실하게 해둘 사실이 있다. 황재섭 본인이 얘기했듯이, ‘명무 국수호의 선굵은 호흡과 연기를 차용, 황재섭의 춤으로 확장’시키려는 작품이었다.
‘한국창작춤 4’의 타이틀이 ‘거침없는 창작의 불길’인데, 이에 준해서 평가한다면, 이 작품에서 ‘안무가로서의 황재섭’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반면 ‘춤꾼으로서의 황재섭’은 매우 인정할 만하다.
황재섭은 그의 스승 국수호는 물론이거니와, 그간 한국남성춤 백년사의 여러 남성 명무의 모습이 겹친다. 조택원을 비롯해서 송범, 국수호, 정재만이 그의 춤 속에 존재했다. 그러니까 그는 한국 남성춤의 역사 속에서, 앞선 명무의 춤사위의 메소드를 자신의 춤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확실히 인정할 순 있다. 그러나 이번 춤의 타이틀에 ‘창작’이 들어가 있고, 더욱이 ‘창작의 불길’이란 단어와 연결한다면, 황재섭의 춤은 높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황재섭의 이번 무대를 보면서 연상하게 되는 건, 황재섭은 전략가이진 못하나 전술가라는 점이다. 전략(Strategy)이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주제적 성격이라면, 전술(Tactics)은 수단과 방법에 대한 소재적 성격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전략적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 누구보다도 전술을 잘 짤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그가 이런 전술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만의 전략을 짜게 될지는 의문이다.
그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중용(中庸)』 23장의 곡능유성(曲能有誠) 정신을 자신의 춤 속에 들여와서 ‘사소함을 세심하게 채우는 춤의 장인’이라는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황재섭은 금무(琴舞)에서 그랬던 것처럼, 금시(琴詩)에서도 동양화의 고사(高士, philosopher of orient)와도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세 사람의 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김평호에게선 민속(民俗)적 외침, 김용철에게선 무속(巫俗)적 희열, 황재섭에게선 탈속(脫俗)적 구도가 전달되었다.
이정윤, 이야기 댄서인가? 이미지 댄서인가?
이정윤의 작품은 〈백송(白松)〉이다. 내면의 근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크게 인정할 만하다. 그가 중점에 두고 있는 호흡, 곡선, 명상 등의 춤 기법도 전달되는 게 사실이다. 프로그램북에 실린 것처럼 “전통춤 안에는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 부분을 꺼내어 재미있게 보여드리는 걸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임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정윤 춤의 결과물을 보면, 그의 춤은 ‘이야기’보다 ‘이미지’가 훨씬 앞선다. 백송을 보면서도 대다수 관객은 그리 생각할 거다. 이정윤의 백송은 이야기로 성공한 작품이 아니라, 이미지로 성공한 작품이다. 의상(김지원)과 음악(이아람, 정재일)을 통해서 이정윤이라는 춤꾼의 몸이 마치 흰 소나무처럼 보이게 함에 성공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의 춤동작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받는 관객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미지의 과잉은 오히려 이야기의 결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이야기도,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 구조와 같은 스토리텔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느끼게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느껴지지 않거나, 덜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정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이정윤 춤은 자기화(personalizing)가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반면 그걸 체계화(categorizing)하는 측면이 약해 보인다. 전자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단편소설은 잘 쓰지만, 장편소설엔 약하다. 소설가로 치면, 이정윤은 단편소설의 대가다. 언어를 절제하면서 강한 인상을 줄 줄 안다. 이게 이정윤의 특성이자 한계이다. 이정윤 자신이 정말 ‘이야기꾼’이 되고자 한다면, 춤꾼과 안무가로서의 다른 영역을 더 탐구해야 한다. 더 본질적인 것에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꾼이 된다.
장편소설과 같은 춤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역사와 역사성, 민족과 민족성에 대한 춤적인 이해 또는 변이(變移)에 대해서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결국은 전통춤의 본질적인 형태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이정윤이 음악가로 치면 바흐와 같은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그렇다면 어떠한가. 바흐는 토카타와 푸가의 대가인데, 비유컨대 이정윤은 토카타(toccata)에 능한데, 푸가(fuga)에 약한 사람이다. 토카타의 즉흥적인 요소는 발달해 있는데, 푸가와 같은 구조적인 학습이 덜 되어 있다고나 할까? 고전주의를 알고 낭만주의를 익혔어야 하는데, 낭만주의에 빠졌고 고전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머무는 형상이다.
이정윤의 춤에 ‘서구인들이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매력’ 혹은 특정 민족을 떠나서 ‘범(凡) 아시아적인 정서’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에 상반되게 ‘한국남성춤의 맥락’ 속에서 이정윤이라는 춤꾼의 특장(特長)은 상대적으로 덜 발견된다. 춤을 잘 추고, 춤을 잘 짜는 건 인정하지만, 그 춤에서 한국춤의 본질적 골갱이 또는 심지 같은 게 아주 확연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이정윤이 이를 보충하거나 해결한다면, 이정윤은 21세기 한국춤사에서 가장 선두에 존재하는 춤꾼이자 안무가로 자리매김하게 되리라.
안덕기, 21세기 한국춤의 메소드(형태소)는 춤의 경계에서 발견된다
예술의 대가들을 보면, 그 배경이 좀 다르다. 좋은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이 가장 많다. 그러나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좋은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 있다. 또 좋은 교재(학습법)로 배운 사람이 있다. 좋은 학교 또는 좋은 교재로 학습했으되, 반면 거기에 뭔지 모를 ‘자기 주도’ 트레이닝이 있음을 짐작케 하기도 한다. 안덕기가 바로 그렇다.
안덕기의 춤에서는 좋은 스승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남성명무의 계보를 확실하게 잇고 있는 느낌이 크지 않다. 대신 좋은 학교와 좋은 교재로 배운 것은 틀림없이 전달된다. 여기서 점차 안덕기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 안에 내재한 뭔지 모를 ‘자기주도’의 트레이닝이다. 그가 과거 이런 방식으로 뭔가를 추구해 왔는데, 그것을 내부적으로 숨기거나 외부적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교육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지금, 그가 가장 추구하는 건 지금까지의 ‘자기주도 학습법’을 이제 여러 후학에게 공히 나눠주면서 뭔가 체계를 갖추려고 하는 인상을 받는다. ‘21세기의 한국춤의 메소드’라고 해야 하나? 한국춤의 본질적인 ‘형태소’를 21세기적 시각으로 정리해 나가면서, 그를 통해서 한국춤의 新체계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따라서 이번에 출연한 6인 중에서 ‘한국창작춤’ 전통을 바탕으로 한 한국춤의 ‘新전통’, 또는 ‘21세기적 한국춤의 메소드’는 안덕기가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분명 한국춤의 교육자로서의 안덕기는 믿음직한 면이 참 많다는 걸 느낀다.
안덕기의 〈허튼가락춤〉은 진도씻김굿 보유자 박병천의 ‘구음시나위’를 바탕으로 만든 춤이다. 흔히 박병천하면 전라도적인 정서, 진도적인 정서를 생각하게 하는데, 안덕기가 만들어낸 춤은 꼭 그런 정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당춤’과 ‘기방춤’의 중용이라고나 할까? 혹은 ‘마당춤’과 ‘무대춤’의 공통분모 찾기라고나 할까? 전통사회에서는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춤(사위)을 자신의 춤 안에서 하나로 용해(溶解)하려는 의지와 의도가 잘 전달되었다.
안덕기 춤의 가장 큰 매력은 춤 안에 여성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해서, 그가 특정한 남성춤꾼의 확실한 사사관계에 연연하기 보다는, 여성을 포함한 여러 스승을 사사하면서 그만의 남성춤을 조금씩 굳혀갔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허튼가락춤〉에선 세 사람의 남성춤꾼이 보였다. 실제 안덕기가 이 세 명무를 의식해서 춤을 짰는지는 모르나, 내 눈엔 그랬다. 밀양백중놀이의 하보경(1906-1997), 동래학춤의 문장원(1917-2012), 진도북춤의 박병천(1933-2007)이다. 위의 세 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제자 또는 연관된 보존회 회원이 있고, 그들이 이 춤에 익숙하겠지만, 안덕기처럼 이 춤을 ‘양식화’ 내지 ‘혼종화’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안덕기가 앞으로 지향하는 바가 이런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20세기에 존재하는 한국춤의 파편을 모아서, 21세기의 하나의 명작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안덕기의 〈허튼가락춤〉을 보면서, 조각보 혹은 퀼트(quilt)를 떠올렸다. 그간 서로 어울리기를 주저했던 것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춤에서 상보상생(相補相生)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든 춤이 잘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결국 ‘이음새’다. 퀼트도 그렇고 조각보도 그렇고, 안덕기의 춤도 결국은 ‘이음새’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조각보에서 ‘박음질’이 중요하듯이, 서로 이질적인 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박음질해야 할 것인가는, 앞으로 안덕기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고 정서가 쌓여가면서, 보다 의미망(semantic network, semantic mapping)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안덕기가 한국전통춤의 ‘21세기적 新전통’을 만들어내고, 그의 작품이 ‘안덕기류 명작무’로서 널리 퍼지길 응원한다.
크게 기대하는 그에게, 한 가지 더 주문하고 싶다. 춤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시점이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해서 그것이 내 관점이요, 내 시점은 아니다. 관객과 다수가 그런 걸 인정해야 한다. 아직은 아쉽게도 안덕기의 춤에는 어떤 춤을 바라보는 ‘제3자적 관찰자적 시점’이 존재한다. 앞으로 ‘1인칭 주체자(안덕기)적 관점’으로 계속 치환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조재혁, ‘의식하는 사유’는 사유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조재혁의 〈현 一〉 이다. 아주 단언하겠다. 이번에 출연한 6명의 남성무용가 중에서 조재혁이 가장 춤을 잘 춘다. 한국춤을 토양으로 해서 여러 춤을 두루 섭렵한 댄서가 표현해낼 수 있는 최대치를 본 듯한 충족감이 있다. 몸이 가장 잘 훈련된 사람의 춤을 보는 기쁨과 부러움이 충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조재혁의 춤은 딱 거기서 머물렀다. 춤의 평가에도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로 나뉜다면, 조재혁은 기술적 평가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거다. 그러나 예술점수도 그만큼 받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의 춤은, 미술로 치면 구상과 비구상(추상)의 난삽한 섞임과 같다. 무대에서의 춤이 마임과도 같은 ‘구체성’과 현대춤과 같은 ‘추상성’이 너무도 많이 혼재되어 있다. 그의 춤에는 생각과 느낌이 너무 많다. 따라서 일반관객에게는 생각의 여지가 적은 편이다. 그의 춤의 여러 장면은 관객에 따라서 너무 쉽게 읽히거나, 너무 상황이 많아서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작가로서의 조재혁은 사유 또는 의식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데, 그 방법이 일차적이거나 작위적이다. 명심해야 할 건, 사유는 ‘사유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점이다.
조재혁이 남의 충고를 듣는 사람이라면, 이 명석하고 민첩한 춤꾼에게 해줄 말은 딱 하나다. 이간어번(以簡御繁)이다. ‘간편한 방법으로 번잡함을 다스린다’는 뜻인데, 그의 춤은 너무 번잡하다. 무언가 선택과 집중이 확실하게 필요하다. 이런 춤은 콩쿠르에서는 주목받고, 댄스 페스티벌에서는 큰 상을 받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의 감상용 작품으로선, 너무 날이 선 느낌으로 뒤섞여 있다. 의도(意圖)가 작품을 만들지만, 의미(意味)가 작품을 살찌운다. 이 작품은 너무도 자주 작품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의도가 의미가 되면서 쭈욱 하나의 의미망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이번 작품은 내 시각으로 보면 뭔가 에피소드가 참 과하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면서, 관객에게 명상적 심취를 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조재혁의 춤을 좋아하는 많은 21세기의 춤 애호가가 있으니 말이다.
여섯 남성춤꾼에게 거는 기대 또는 덕담
이번 여섯 명의 춤은 ‘이미지’와 ‘이야기’로 갈린다. 이정윤, 황재섭, 안덕기가 이미지가 우세했고, 조재혁, 김평호, 김용철은 이야기가 우세했다. 21세기 한국 홀춤의 계보에서, 이야기성(性)과 이미지성(性)은 앞으로 더욱 선명하게 두 줄기로 나뉘면서, 21세기의 한국창작춤의 큰 줄기를 형성하면서 더욱 심화,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6인의 춤이 충분히 그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이정윤의 작품에선 범아시아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확연했으면 좋겠다. 비교컨대 황병기 작곡의 〈침향무〉와 〈비단길〉은 범아시아적 정서를 담고 있지만, 가야금이란 악기를 매개로 해서 한국악기의 특성이 확실하게 살아있다. 이정윤의 작품도 그러길 희망한다.
황재섭의 이번 작품은 자기주도적인 창작성이 아쉽긴 하나, 앞으로 그가 나무와 숲을 오가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한국남성명무의 계보를 이어가길 희망한다. 전술의 강점을 전술의 특성으로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그야말로 20세기 남성명무의 대를 잇는 21세기 남성명무로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전통과 창작, 교육과 무대의 사이에 존재하는 안덕기는 한국춤의 경계에 서서, 그 경계를 허물고 경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새로운 新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수년 내에 정착되지 않을까 싶다. 무대에서 끼를 부리기보다는, 언제나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고 ‘학습된 몸’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몸 하나로 여러 춤을 포용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김평호의 춤은 퍼포먼스적인 장점을 잘 살려내면서, 한국춤의 내면화된 동작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길 희망한다. 그가 앞으로 만들어낼 여러 작품이 내용과 형식면에서 한국춤의 외연을 넓혀줄 것이라 기대한다.
조재혁은 분명 언젠가 대가가 될 날이 올 것이다. 언제나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조재혁이기에 언젠가 그만의 독특한 한국춤이 생겨나리라고 본다. 그만큼 춤을 잘 추는 사람도 또한 드물기에.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정동극장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Korean male creative dance, heading towards the story, towards the image: 2024 Cecil Pungryu, the unstoppable flame of creation–Korean creative dance since the 2000s, 4
〈2024 Cecil Pungryu〉 ended well. With the subtitle ‘Beopgo Changsin – A 100-year journey of modern and contemporary dance’ the 100-year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dance was summarized in 8 performances. It was an excellent project that allowed people to meet the characteristics of dance and representative figures of each era through the terms Shinmuyong(2 times), Hankuk Changjakchum (4 times), and contemporary Korean dance(2 times).
The new dance is the second performance, starting with the dance of the three pioneers of new dance, volleyball players Choi Seung-hee and Cho Taek-won (April 4, 2024), followed by Song Beom (1926-2007), Kim Jin-geol (1926-2008), Kim Baek-bong (1927-2023), and Choi Hyeon (1929-2002) It was an opportunity to see the dance (April.9) of the second generation of new dance, including Choi Hee-seon (1929-2010) and Hwang Mubong (1930-1995).
Let's talk about contemporary Korean dance first. It was a two times performance, and it was the stage of a young dancer who was equipped with the basic skills of Korean dance and was trying to create a work of contemporaneity in a state where the boundary between Korean dance and modern dance was disappearing. They went on stage divided into female dancers (April 25) and male dancers (April 30).
‘Hankuk Changjakchum’ receiving special attention
My main interest was the four Hankuk Changjakchum. In ‘After the 1970s: The Emergence of Hankuk Changjakchum’ (April 11), you could see the dances of Kim Mae-ja (born in 1943), Bae Jeong-hye (1944), Moon Il-ji (1945), and Kuk Su-ho (1948). We were able to confirm the charm and value of the dance of four people who created an inflection point in the history of Korean dance.
Kim Mae-ja's dance was performed by Choi Ji-yeon and Kim Seong-eui, and Bae Jeong-hye's dance was performed by Lee Go-un and Kim Se-ryeong, and it was possible to see how the two masters' dances have continued well into the present. Moon Il-ji's masterpiece 〈A Distant Grave〉 could be seen in Gye Hyun-sun's dance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and Guk Soo-ho's masterpiece 〈Bicheon〉 could be seen in Lee Yun-kyung's dance, and Lee Yun-kyung's highly accomplished dance was truly moving.
‘After the 1970s: Hankuk Changjakchum 2’ focuses on people who have promoted dance education at universities. The significance is that Eun-hye Jeong, Hye-sin Tae, Hyun-soon Baek, Ae-hyeon Lee, Deok-kyung Yoon, and Su-jeong Nam looked back on the role they played through educational institutions for Korean creative dance. It was also an opportunity to realize that it is a common truth that dancing requires continuous training every day to show the best skills on stage.
‘After the 1970s: Hankuk Changjakchum 3’ was a stage for people who had previously worked as artistic directors of public organizations. The dances of Son In-young, Park Si-jong, Kim Su-hyun, Yoon Myeong-hwa, Hong Kyung-hee, and Yoon Seong-ju each had a clear identity as a piece of repertoire. It was confirmed that dancers express different energy depending on their stage experience. Meanwhile, it was also confirmed that although an individual's artistic satisfaction may be high, it is not directly connected to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Now, we will focus on ‘After the 2000s: Hankuk Changjakchum 4’ (April 23). Six male dancers came on stage. Kim Pyeong-ho, Kim Yong-cheol, Hwang Jae-seop, Lee Jeong-yoon, Ahn Deok-gi, and Jo Jae-hyuk have different ages, but they are all figures who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low of Korean creative dance since the 2000s.
Kim Pyeong-ho's presence, Kim Yong-cheol's communication, Hwang Jae-seop's presence
Among the six, the older ones, Kim Pyeong-ho, Kim Yong-cheol, and Hwang Jae-seop, each have different dance backgrounds. Kim Pyeong-ho started with Nongak, Kim Yong-cheol started with ballet, and Hwang Jae-seop learned Korean dance at Kyung Hee University.
All three learned the essential aspects of Korean dance early on and solidified their footing as professional dancers. Based on this, he is a person who has fulfilled or is performing well in his role as an artistic director of a municipal organization. Let’s discuss each of the three’s artistic achievements so far.
In the dance of Kim Pyeong-ho, a member of the Korean Folk Village Nongak Troupe, the indigenous son-in-law with the smell of earth, sweat, and flesh stood out. I will call Kim Pyeong-ho’s dance a folklore dance. Ambience based on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is emphasized.
Kim Yong-cheol's strengths are twofold. The first is that the dance idea is specific. The audience is drawn to the idea and comes to see the dance. Second,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is clear. Usually, Kim Yong-cheol focuses his attention on the audience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dance. Eye contact is clear. Almost all of Kim Yong-cheol's choreography and appearances receive great applause. Kim Yong-cheol's dance is a communication dance. Accessibility based on a phenomenological perspective is emphasized.
Hwang Jae-seop's strength is that he presents his work seriously, based on literary works based on classics. In addition to Western classics such as Sophocles' Oedipus and Dante's Divine Comedy of Hell and Purgatorio, we aim to present controversial works such as Park Sang-ryung's 『A Study in Death』 and Kim Hoon's 『Song of the Strings』, which are problematic works of Korean literature, with Hwang Jae-seop style choreography. Recognize passion and achievements. I will call Hwang Jae-seop's dance a dramatug dance. Existence based on aesthetics perspective is emphasized.
This work by the three people has the same characteristics as the past, but feels somewhat transformed.
Kim Pyeong-ho, who became the chief, a folk cry
Kim Pyeong-ho's work was 〈Jungle-Peak〉. Starting with this work, he seems to have aimed for Kim Pyeong-ho's contemporary style. Although the outward visuals are very different, 〈Jungle-Peaks〉 is also a folklore dance.
The background of his dance has always been indigenous, such as the rural areas of Korea, but in this work, it gives the impression of an African jungle. If rural areas in the past aimed for community-based coexistence, would it be okay to say that this work is the opposite of this, a diet of the fittest? That may be a reflection of the reality of the dance scene he has lived in so far.
What he saw inside was a ‘peak’. He is bringing out Kim Min-ki’s ‘peak’ very well. Even though the peak was not a very high peak and was just the crest of a hill, I could feel ‘the other side of the person named Kim Pyeong-ho’ who had constantly worked towards the peak he had set. I got the impression that Kim Pyeong-ho was a clumsy and eccentric, but very human tribal chief of some African tribe.
Kim Yong-cheol becomes an applause, a shamanistic joy
Kim Yong-cheol’s work was 〈Ruddy Red〉. I want to call this work ‘Kim Yong-cheol-style Salpuri.’ In the end, the long white cloth has several variations of meaning. Kim Yong-cheol felt as if he had met a possessed shaman in this work.
The music he used is typical Korean folk song Sinawi. However, it is not just a Korean instrument, but a combination of Western instruments. The music created by the jazz group Red Sun, centered on Kim Deok-su and led by Bolpugang Pushnik, made traditional Korean music sound very exotic and jazzy. Kim Yong-cheol created a dance with a sense of volume based on this musical texture.
While watching Kim Yong-cheol, I may be the only person who thought of Jeju Simbang Ahn sain. Although the actual music is different and the actual appearance is different, the character of the dancer named Kim Yong-cheol reminds me of Ahn Sa-in (安仕仁, 1928-1990), who was famous for the Jeju Chilmeoridanggut. I would like to dig deeper into Ansain, whether it is a martial artist or a martial artist, and I see such potential in Kim Yong-cheol.
Even though Kim Yong-cheol is such a great guy, I can't have any complaints. Is it because there are so many ideas? It would have been better to delve into Hana's mood a little more, but Kim Yong-cheol is once again quickly transforming the dance to the next level. Please be aware that while this may be an increase in fun for some, it may be a halving of meaning for others.
At the beginning of Kim Yong-cheol, one always expects virtuoso pursuit, but as the work approaches its end, it feels like the craftsman's desire is exposed. It could be said that the number is revealed. The ending of a dance should be touching, but as explained further, the ending of the dance sometimes ends in a sad ending.
Hwang Jae-seop, who became a deceased, has a non-secular composition
Hwang Jae-seop's work was 〈Geumsi (琴詩)〉. First of all, in order to properly evaluate this work, there are some facts that must be made clear. As Hwang Jae-seop himself said, it was a work that attempted to ‘borrow the bold chemistry and acting of the famous dancer Kuk Soo-ho and expand it into Hwang Jae-seop’s dance.’
The title of ‘Korean Creative Dance 4’ is ‘Unstoppable Flame of Creation’, and if evaluated based on this, the presence of ‘Hwang Jae-seop as a choreographer’ in this work was weak. On the other hand, ‘Hwang Jae-seop as a dancer’ is very acceptable.
Hwang Jae-seop resembles not only his teacher Kuk Su-ho, but also many famous male dancers from the 100-year history of Korean male dance. In addition to Jo Taek-won, Song Beom, Kook Su-ho, and Jeong Jae-man were present in his dance. So, in the history of Korean male dance, he can certainly be recognized for his ability to incorporate the methods of dance movements of previous famous dancers into his own dance. However, if the title of this dance includes ‘creation’ and further connects it with the word ‘flame of creation’, it is difficult for Hwang Jae-seop’s dance to be highly evaluated.
What comes to mind while watching Hwang Jae-seop's performance this time is that Hwang Jae-seop may not be a strategist, but he is a tactician. While strategy is the thematic nature of purpose and direction, tactics is the material nature of means and methods. When a strategic order is given by someone, the ability to plan tactics better than anyone else is outstanding. However, it is questionable whether he will be able to devise his own strategy through this tactical experience.
If we were to evaluate him very positively, I think it would be possible to evaluate him as a ‘master of dance who carefully fills in trivialities’ by incorporating the spirit of Gokneungyuseong (曲能有誠) from chapter 23 of 『Jungyong (中庸)』 into his dance. Just as he did in Geummu (琴舞), Hwang Jae-seop imprinted the same image as a philosopher of orient in Geumsi (琴詩).
If I were to sum up the three people's dance in one word, for Kim Pyeong-ho it would be a folk shout, and for Kim Yong-cheol. From him, shamanistic joy was conveyed, and from Hwang Jae-seop, a non-secular structure was conveyed.
Jeongyoon Lee, is he a story dancer? Are you an image dancer?
Lee Jeong-yoon’s work is 〈White Pine〉. It deserves great recognition for focusing on the source within. It is true that the dance techniques he focuses on, such as breathing, curves, and meditation, are also conveyed. As stated in the program book, there is no doubt that it is true that “there are many colorful and rich stories in traditional dance, and it is our mission to bring out these parts and show them in an interesting way.”
However, if you look at the results of Lee Jeong-yoon’s dance, his dance is much more about ‘image’ than ‘story’. Most audiences will think that way while watching Baeksong. Lee Jeong-yoon's White Pine is not a work that succeeds as a story, but as a work that succeeds as an image. Through costumes (Kim Ji-won) and music (Lee A-ram, Jeong Jae-il), they succeeded in making the body of a dancer named Lee Jeong-yoon look like a white pine tree. But how many viewers will actually receive the story through his dance movements?
An excess of images can actually lead to a lack of story. Of course, the story I am talking about is not about storytelling like the commonly used structure. Just as we make people feel images, we need to make people feel stories, but the problem is that we don't feel the story, or we feel it to a lesser extent.
If we were to evaluate Lee Jeong-yoon positively, it would be that Lee Jeong-yoon's dance has a very strong sense of personalizing. On the other hand, the aspect of categorizing it seems weak. People with the former ability are good at writing short stories, but weak at writing full-length novels. As a novelist, Lee Jeong-yoon is a master of short stories. He knows how to make a strong impression while restraining his language. This is Lee Jeong-yoon’s characteristic and limitation. If Lee Jeong-yoon himself truly wants to become a ‘storyteller’, he must further explore other areas as a dancer and choreographer. He must delve into more essential things. Only then does he become a storyteller.
In order to create a dance that resembles a full-length novel, we must ultimately focus on history and historicity, a dance-like understanding of nation and nationality, or variation, and in order to do so, isn't it ultimately a search for the essential form of traditional dance?
If Lee Jeong-yoon is a musician, he hopes to become like Bach. So what about it? Bach is a master of the toccata and fugue, but by analogy, Lee Jeong-yoon is good at the toccata, but weak at the fugue. The improvisational elements of the Toccata are well developed, but is there less structural learning like the Fugue? He should have known classicism and learned romanticism, but he fell into romanticism and remained in a superficial understanding of classicism.
It is true that Lee Jeong-yoon's dance has 'the charm of Orientalism seen by Westerners' or 'pan-Asian sentiment' regardless of a specific ethnic group, but contrary to this, in the 'context of Korean male dance', the dancer named Lee Jeong-yoon's special characteristics are present. (特長) is found relatively less often. It is acknowledged that he dances well and that he choreographs the dance well, but the essential point or core of Korean dance is clearly absent from the dance. If Lee Jeong-yoon supplements or solves this problem, Lee Jeong-yoon will establish himself as the leading dancer and choreographer in 21st century Korean dance history.
Ahn Deok-gi, The method (morpheme) of 21st century Korean dance is found at the border of dance
If you look at the masters of art, their backgrounds are a bit different. Most people learned from good teachers. But not all are like that. There are people who learned from good schools. There are also people who learned from good textbooks (learning methods). They may have studied at a good school or with good textbooks, but on the other hand, it can also be assumed that there is ‘self-directed’ training that you don’t know what it is. Ahn Deok-gi is exactly like that.
There is no good teacher in Ahn Deok-gi's dance. I don't have a strong feeling of definitely continuing the lineage of a certain famous male dancer. Instead, what is learned through good schools and good textbooks will surely be passed on. What I gradually feel from Ahn Deok-gi here is the training of ‘self-direction’ that I don’t know what is inherent within it. He has pursued something in this way in the past, but he neither hid it internally nor revealed it out loud. Now that he is pursuing his path as an educator, one gets the impression that what he pursues most is to establish some sort of system by sharing the ‘self-directed learning method’ he has developed so far with many younger students. Should we call it ‘the method of Korean dance in the 21st century’? By organizing the essential ‘morphemes’ of Korean dance from a 21st century perspective, one can read the intention to achieve a new systematization of Korean dance.
Therefore, among the six people who appeared this time, I think Ahn Deok-gi is the one who can best create the ‘new tradition’ of Korean dance based on the tradition of ‘Korean creative dance’, or the ‘method of 21st century Korean dance’. I definitely feel that Ahn Deok-gi as an educator of Korean dance has many trustworthy aspects.
Ahn Deok-gi’s 〈Heoteun Garak Chum〉 is a dance created based on Jindo Ssitgimgut holder Park Byeong-cheon’s ‘Gueumsinawi’. When we think of Park Byeong-cheon, we often think of Jeolla-do or Jindo-style emotions, but the dance created by Ahn Deok-gi was not limited to those emotions. Could it be said to be the middle ground between ‘Madangchum’ and ‘Gibangchum’? Or should we say that it is about finding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yard dance’ and ‘stage dance’? In traditional society, the will and intention to dissolve the dances (son-in-law) that exist heterogeneously into one within one's dance were well conveyed.
The biggest charm of Ahn Deok-gi's dance is that femininity is completely excluded from the dance. Paradoxically speaking, this may have been possible because he gradually solidified his own male dance while studying with various teachers, including women, rather than dwelling on the definite person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of a specific male dancer.
In 〈Heoteun Garak Chum〉, three male dancers were seen. I don't know whether Deok-gi Ahn actually danced with these three famous dances in mind, but in my eyes, he did. These are Ha Bo-gyeong (1906-1997) of Miryang Baekjung Nori, Mun Won (1917-2012) of Dongnae Crane Dance, and Park Byeong-cheon (1933-2007) of Jindo Drum Dance. There are disciples or members of the related conservation association who are directly connected to the three people above, and they may be familiar with this dance, but it seems difficult to ‘stylize’ or ‘hybridize’ this dance like Ahn Deok-gi did. I don't know specifically what Ahn Deok-gi's future goals are, but he has the potential to create a masterpiece of dance for the 21st century by collecting fragments of Korean dance that exists in the 20th century.
While watching Ahn Deok-gi's 〈Heoteun Garak Chum〉, he thought of a patchwork or quilt. It is meaningful that the people who had previously hesitated to get along with each other are now breaking down their boundaries and coexisting in one dance.
So what are the conditions for a dance like this to be made well? Ultimately, it is a ‘seam’. In the end, the ‘seams’ of quilts, patchwork, and Ahn Deok-gi's dance must be natural. Just as ‘stitching’ is important in chogakbo, how to stitch together disparate dances naturally will be Ahn Deok-gi’s future homework. As time passes and emotions accumulate, a more semantic network (semantic mapping) will be acquired. We hope that Ahn Deok-gi creates a ‘21st century new tradition’ of Korean traditional dance and that his work spreads widely as a ‘masterpiece of Andeok-gi’s dance.’
To him who has great expectations, I would like to order one more thing. It is a point of view or point of view from which dance is viewed. Just because I dance doesn't mean it's my point of view. The audience and the majority must acknowledge that. Unfortunately, there is still a ‘third-person observer point of view’ in Ahn Deok-gi’s dance that looks at a certain dance. In the future, it seems that time will be needed to continue replacing it with the ‘first-person subject (Ahn Deok-gi) perspective.’
Cho Jae-hyuk, ‘conscious thought’ is not thought
Lastly, there is Cho Jae-hyuk’s 〈Hyeon 一〉. I will say this very clearly. Among the six male dancers who appeared this time, Cho Jae-hyuk dances the best. There is a sense of satisfaction as if you have seen the maximum that a dancer who has mastered a variety of dances based on Korean dance can express. It was a moment filled with joy and envy watching the person with the most well-trained body dance. But Cho Jae-hyuk’s dance stayed right there. If the dance evaluation is divided into technical and artistic scores, Cho Jae-hyuk will receive the highest score in the technical evaluation. However, there is no guarantee that you will receive the same number of art points.
In terms of art, his dance is like a messy mixture of figurative and non-figurative (abstract) elements. The dance on stage is too much of a mixture of ‘concreteness’ like mime and ‘abstractness’ like modern dance. There are so many thoughts and feelings in his dancing. Therefore, there is little room for thought for the general audience. Depending on the audience, several scenes of his dance may be too easy to read or too full of situations, making it easy to give up. As a writer, Cho Jae-hyuk uses thought or consciousness as a keyword, and his method is primary or artificial. What you need to keep in mind is that thinking does not come from ‘thinking’.
If Cho Jae-hyuk is a person who listens to others' advice, he has only one thing to say to this brilliant and agile dancer. He is 以簡御繁. It means ‘controlling the hustle and bustle in a simple way,’ but his dance is too clutter. There is a clear need for selection and concentration. This type of dance is sure to attract attention at competitions and win big prizes at dance festivals. However, as a piece for appreciation, it feels too sharp and mixed together. Intention creates a work of art, but meaning nourishes the work. Don't you think that this work too often reveals its intentions blatantly?
As intention becomes meaning, one must gradually create a network of meaning, but from my perspective, this work is a bit too episodic. It is far from delving deeply into a single topic and giving the audience a meditative immersion. But this may be my personal opinion. There are many 21st century dance lovers who like Cho Jae-hyuk's dance.
Expectations or well-wishes for the six male dancers
The dance of these six people is divided into ‘image’ and ‘story’. Lee Jeong-yoon, Hwang Jae-seop, and Ahn Deok-gi were superior in image, while Cho Jae-hyuk, Kim Pyeong-ho, and Kim Yong-cheol were superior in story. In the genealogy of Korean hall dance in the 21st century, storytelling (sexuality) and imageness (sexuality) will be more clearly divided into two streams, forming a major stream of Korean creative dance in the 21st century, further deepening and developing.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And the dance of these six people will serve as a solid foundation for that.
Lee Jeong-yoon's work is based on pan-Asian sentiment, but I hope that Korean sentiment is evident in it as well. In comparison, 〈Chimhyangmu〉 and 〈Silk Road〉 composed by Hwang Byeong-ki contain pan-Asian sentiments, but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instruments are clearly alive through the instrument called gayageum. I hope that Jeongyoon Lee’s work does the same.
Although Hwang Jae-seop's work lacks self-directed creativity, I hope that in the future, he will continue the lineage of Korean male master dancers in a more three-dimensional way by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trees and forests. If the strength of the tactic is upgraded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tactic, it will truly be in the spotlight as a 21st century masculine master dance that continues the lineage of the 20th century masculine master dancers.
Ahn Deok-gi, which exists between tradition and creation, education and stage, stands at the border of Korean dance and plays a role in breaking down and bridging the border. I think this will become established in the next few years under the name of a new tradition. Rather than showing off talent on stage, I highly value the attitude of always keeping the center of gravity below and seriously embracing various dances with one's own body based on the 'learned body'.
We hope that Kim Pyeong-ho's dance will make good use of its performance strengths and make the internalized movements of Korean dance more attractive. It is expected that the various works he will create in the future will expand the scope of Korean dance in terms of content and form.
Cho Jae-hyuk will definitely become a master someday. Because Cho Jae-hyuk always pursues something without stopping, I believe that one day his own unique Korean dance will emerge. There are also very few people who dance that well.
Written by Yoon Jung Kang (Critic of Performing Arts)
Photo provided by National Jeongdong The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