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수는 내가 좋아하는 안무가다. 2010년 『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란 책을 내면서 우리시대 무용가 30인에 포함된 그를 "뛰어난 음악성과 세련된 도시미의 안무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고요한 견제>(2005), <볼레로>(2006), <시점>(2001) 등에서 캐논, 볼레로 등 클래식 음악에 맞춰 극도로 세련된 춤 동작을 자로 잰 듯 정교하게 직조하여 관객들의 두뇌와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춤 메서드에서 춤 보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기대가 의문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작년 봄, 국립무용단의 안무초청을 받아 의상디자이너 정구호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단>(4.10~14 해오름극장)에서부터였다. 무대미학을 위해 패션디자이너를 영입한 시도는 좋았다. 검정과 흰색, 검정과 녹색 의상의 색채 대비, 붉은 색과 녹색조명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무대미술의 효과 등 개별적 요소만을 볼 때 안성수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무용수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개성과 표정을 최대한 지워낸 그의 안무는 자연스러운 춤을 위축시키고 조명기술의 현란한 효과만을 기억에 남긴 채 관객과의 소통 점을 상실한 아쉬움이 컸었다. 정구호와 국립무용단과의 후속작업인 <묵향>(12.6, 해오름극장)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은 반복되었다. 무대의상을 강조하다보니 무용수들의 화려한 의상이 거추장스러워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춤 공연 아닌 패션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안성수와 정구호의 새로운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2 in Two>(3.6~7, 자유소극장)를 기다리면서 안성수 본래의 춤 캐릭터가 찾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2 in Two>는 두 사람이 각각 안무와 연출을 분담하고 김주원, 김지영, 김보람, 장경민 등 4명의 무용수가 출연했다. 2000년 공동 작업으로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프로그램에 포함된 <초현>의 2014년 판이라고 했다. 당시 국립발레단의 신예무용수였던 김주원, 김지영이 이제 최고의 발레리나로 성장하여 남성무용수 두 명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음악은 탱고, 타란텔라, 플라멩코 등 스패니쉬 풍의 댄스음악이다. 김지영과 김주원은 러시아 명문발레스쿨을 졸업한 후 1990년대 말부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한 발레계의 쌍벽이고 김보람, 장경민은 방송 댄서 출신으로 5~6년의 일천한 현대무용경력을 가졌다. 안무가와 미술가, 집시음악과 현대무용, 숙련된 발레리나와 신예 현대무용가,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이 작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지가 궁금했다.
김주원과 장경민, 김지영과 김보람, 두 쌍의 듀엣이 벤치에 앉아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쌍은 흑색 벤치 위에 밀착되어있고 흰 옷의 한 쌍은 거리를 두고 백색 벤치의 양 끝에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차례로 남녀4인무와 듀엣(김주원, 장경민), 남자 2인무, 4인무, 3인무 순서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초현 공연에서의 김지영, 김주원의 2인무는 보이지 않고 50분 공연은 남녀4인무로 마무리된다.
춤의 구성과 조명을 단순화하고 의상을 절제함으로써 무용수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춤 위주 공연을 만들겠다고 안무자는 말한다. 춤이 미술에 눌렸다는 전작들에 대한 비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주원과 장경민이 타란텔라 음악에 맞춰 춘 첫 번째 듀엣에서는 김주원의 요염함과 발랄함이 돋보였다. 탱고를 네 개의 발과 한 개의 심장을 가진 춤이라고 극찬한 그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질적 요소들과의 부조화란 우려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발레리나와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고 집시음악과 춤과의 접점도 찾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관한 남성파트너들의 연약함이 들어나고 이러한 영향인지 춤 자체가 위축되어버린 발레리나들의 어색함도 느껴졌다. 최고의 끼를 갖춘 김주원과 최고의 체형을 가진 김지영이란 두 발레리나를 한 무대에 세웠으면서도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2000년 공연을 보지 못한 필자로서는 이 작품의 원형이라는 <초현>공연도 궁금했다. 영상이나 사진 혹은 기록으로라도 2000년 공연모습을 실연무대의 배경으로 보여주는 것이 관객에 대한 배려이고 스토리텔링이란 면에서도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스타마케팅의 효력으로 이틀간의 좌석이 사흘 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은 예술가들의 엘리트의식이 아니라 관객 앞에선 그들의 두려움과 겸허함일 것이다. 빛이 바래버린 안성수의 음악성과 춤의 열정이 식어버린 심심한 무대가 아니라 마사 그라함과 노무치에 비견할만한 예술적 융합을 통해 완성되어나가는 앞으로의 작품을 보고 싶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안성수 픽업그룹 제공